윤동주 '서시'가 흐르는 K7 광고가 불편한 이유

'서시'가 탄생한 시대적 배경, 기아차가 알았다면...

등록 2016.07.26 11:52수정 2016.07.2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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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서시'가 나온 기아자동차 광고 ⓒ 유튜브 갈무리


기아자동차에서 시를 인용해서 고맙다. 누구든 자유롭게 한 편의 시를 해석하고 인용할 수 있다. 시는 누구라도 즐길 수 있으며 윤동주 시도 부자나 가난한 자나 상관없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는 당혹스럽다. 왜 불편할까. 저 영상 하나를 만들기 위해 기아자동차는 작가와 감독, 스태프들이 토론하고 노력했을 텐데 시청자로서 왜 이렇게 불편할까.

윤동주 시를 있는 왜곡시켜서 그것도 상품 팔이에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거북하고 불편한가 보다. 혹시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이 광고를 만드신 분들은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며칠 지나 몇 자 남긴다.


나한테 주어진 길


이 광고에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서시>)라는 구절에서 신형 준대형차(중형차가 아니다)가 나타난다. 이 광고를 만든 사람의 해석에 따르면, 식민지 거리를 준대형차를 타고 달리는 풍경은 윤동주가 걷고자 했던 "주어진 길"과 겹쳐진다.

식민지 당시에 중형차가 있었다. 일제의 검사나 친일부호 쯤 되어야 중형차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윤동주가 지금 살아있다면 물론 중형차를 탈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식민지 거리와 분리시켜야 했을 것이다.

저 광고만을 보면, 식민지 현실과 상관없이 중형차를 타고 달리는 윤동주가 연상된다. 윤동주가 <서시>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썼는지, 기아자동차 저들이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이런 광고를 만들 수 있었을까.

윤동주가 "준대형 최대 휠베이스 2855mm를 중심으로 한 내부 공간 활용과 앞좌석 뿐 아니라 뒷좌석까지 거주 공간을 확보한 K7의 동급 최대 휠베이스는, 세단에 어울리는 내장 인테리어와 더불어 탑승자의 공간도 확보했다"는 고급 세단차를 선전할 인물로 보이는가.


윤동주는 부자가 되고 싶어하거나 유명해지고 싶어 안달했던 인물이 아니다. 윤동주는 자신의 이름 동주(東柱)의 한자를 '童舟'라는 필명으로 시를 발표했던 인물이다. 넉넉하게 살던 것이 부끄러워 "보내주신 학비 봉투가 부끄럽다"(<쉽게 쓰여진 시>)고도 했었다.

지금 살아 있다면 이 격차 사회에서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별 헤는 밤>)을 불렀을 것이다. 좋은 학교를 못 다니는 사람들이 상처 받을까봐 연희전문 모자도 잘 쓰지 않았던 사람이다. 명동마을에 돌아오면 얼른 교복을 벗고 한복 입은 채 농사 짓는 이웃을 거들기도 했다.

경성에서도 구루마 끄는 아줌마를 도와주고, 농부들과 대화하기 좋아하던 인물이었다. 엄마 아빠 없이 오줌 싼 동생을 달래는 결핍가족(<오줌싸개 지도>)을 주목하던 그가 살아있다면 "모든 죽어가는"(<서시>) 존재들을 찾아갔을 것이다(http://go9.co/H6L).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소설과 달리, 독자는 시인과 시가 일치될 것을 바란다. 윤동주 시의 완성은 죽음에 있으며 <서시>도 죽음과 함께 완성되었다. 한편의 시가 완성되려면 때로는 시인의 전 생애가 투입되어야 한다. <서시>는 윤동주 삶의 전체를 응축하고 있다. 혹시 '<서시>=자기성찰'이라고 외워 답을 쓰는 사지선다(四枝選多)형 암기 방식이 이런 영상을 만드는 배경이 된 것은 아닐까. 혹시 이 영상을 본 사람들이 윤동주를 댄디보이쯤으로 생각할까 염려된다.

<서시>에는 자기성찰을 넘어,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 하겠다는 실천의 다짐이 있으며, "나에게 주어진 길"은 성찰하고 사랑한 이후 맨 마지막에 하겠다는 희생의 다짐이 있다. 그런데 저 영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지.

<서시>의 본뜻을 많은 이들이 만나면 좋겠다. 함께 다짐하고 실천하면 좋겠다. 정치가나 종교인이나 부자들이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본질과 만난다면, 그것이 여민동락이요, 그 순간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부패한 정치가가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를 혼자 좋아할 수도 있고, 재벌이 윤동주의 <서시>를 혼자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국민들에게 마케팅 한다면 황당하다. 마케팅을 위해 시를 이용한 여러 긍정적인 방법이 있겠으나, 이 경우는 어떤가. 시와 홍보대상이 썩 잘 어울리는가.

우려되는 윤동주 백주년

예술작품을 이용한 홍보는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 그렇지만 "자본주의는 배설물까지 돈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소비의 시대>에 경고했듯이, 자본주의 마케팅은 자칫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윤동주 우상화를 넘어 윤동주 상업화까지, 윤동주의 상업화가 우려된다(http://go9.co/Hj5). 얼마 전 윤동주가 하숙했던 '종로구 누상동 9번지' 집 앞에서 '윤동주 하숙집 뻔데기'라는 '윤하뻔'을 팔고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일본에 있을 때 저작권 기간과 관계없이 문화재청에서 작가들의 이름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엄격히 단속하는 것을 보았다.

내년이면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다. 별 해괴한 일이 다 벌어질까 염려된다. 시를 이용한 마케팅이라는 기아자동차 홍보팀의 새로운 노력에 감사하면서도, 좋은 선물을 받았는데도 능욕 당하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홍보영상을 발표하기 전 시사회나 여타 반응을 살펴보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든다. 새로운 시도를 해주신 분들, 또 앞으로 예술작품을 이용한 마케팅을 실험하실 분들이 참조해주시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 저자 김응교 기자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입니다. https://www.facebook.com/eunggyo/posts/1078512532203024
#윤동주 #기아자동차 #김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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