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시험 준비하는데 3억이 들었다고?

[서평] 미야자키 이치사다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

등록 2016.07.25 15:24수정 2016.07.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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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인생을 바꿔주는 시험이 있다. 전에 어떤 사람이었든, 뭘 했든지 간에 시험에 잘 붙기만 하면 높은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시험이 있는 것이다. 이런 시험에 합격하면 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기 때문에 시험 자체가 등용문의 고사에 비유되곤 한다. 현행 제도 중에서는 합격하면 관료로 임용되어 사무관으로 근무하게 되는 행정고시(5급 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가 바로 이런 시험이다.

고시와 같은 선발 제도는 시험 성적에 따라 사람을 선발한다. 따라서 면접 과정에서 청탁이나 편견이 개입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고시는 공정한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평등한 시험이라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수험생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어 실질적으로는 돈과 시간을 많이 투입할 수 있는 사람만 붙는 불평등한 시험이며, 젊은이들 대다수를 고시 폐인으로 만들고 대다수의 불합격자가 고시 낭인이 되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손해인 제도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와 같이 시험으로 사람을 뽑는 제도의 원조는 중국의 과거 험일 것이다. 과거와 고시는 높은 난이도, 오랜 준비기간과 많은 불합격자, 관료 임용 및 등용문으로서의 신화 등 공통점이 많다. 옛 중국의 과거시험을 면밀히 살피면서 시험과 임용은 무엇을 중시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 있으니, 바로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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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국의 시험지옥 ⓒ 미야자키 이치사다, 역사비평사

저자인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교토 대학 교수를 지내면서 구품관인법, 과거제도 등의 중국사 연구에 심혈을 기울인 학자다. 또한 대중 역사서를 저술하여 중국사를 보급하는 데 노력하기도 했다. 이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은 중국, 특히 청나라 시대의 과거제도를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책에 따르면, 최초의 과거시험은 587년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수나라 문제가 수재, 명경, 진사 과목을 두어 시험 성적에 따라 관리가 되도록 한 것이다. 이후 과거는 한인의 왕조인 송, 명나라와 이민족 왕조인 청나라에 모두 관리 임용 제도로 쓰였다. 마지막 과거는 1904년에 치러졌으니 6세기의 제도가 20세기까지 지속된 셈이다.

유럽과 다른 문명의 임용 제도는 귀족제나 엽관제 수준이었음을 고려할 때, 과거제도를 통해 관료제를 구축한 중국 사회는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이었다. 과거를 합격한 문인 관료들이 권력, 특히 병권을 장악했기에 군인이 정치에 간섭하는 일도 막을 수 있었다. 귀족이 아닌 이들도 공부를 통해 출세할 기회가 열려 있었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과거제도와 관련한 병폐가 쌓이기 시작했다. 저자는 과거제도가 매우 어렵고 복잡한 시험이었음을 말한다. 왕조가 만들어지고 처음 사람을 뽑을 때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항상 과거를 보고 입신양명하려는 사람이 몰려들어서 합격자는 전체의 1%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시험 범위도 엄청나서, 사서오경의 431,286자를 모두 암송하고 시를 짓는데도 능숙해야 했다.


또한 과거제도에 따라 관리가 되려면 과시, 향시, 거인복시, 회시, 회시복시, 전시라는 복잡다단한 시험을 모두 합격해야 했다. 잘 사는 집안에서 어릴 때부터 준비해도 20대에 붙는 경우는 드물었으며, 30대에 붙어도 늦다고 할 수 없었다. 늙어서 합격한 사람은 50년 전에는 미소년이었다고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책에는 과거를 보기 위한 여비, 숙박비와 사례비를 합치면 총 은 600냥이 든다고 언급하는 부분이 있는데, 현행 화폐로 환산하면 약 3억 원이라고 한다. 사실상 과거는 상류층 계급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또한 아무리 법을 엄히 하여도 수험을 준비하는 학생 중에서 목숨을 걸고 부정을 행하는 이들이 항상 있었다.

책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글자를 적어 놓은 종잇조각도 지니고 들어가는 것이 엄하게 금지되었다. 그런 것을 발견한 병졸에게는 은 3냥을 상으로 주었기 때문에 조사는 매우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심지어 만두를 갈라 그 안의 만두소까지 조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웬일인지 부정행위용 참고서 등이 걸핏하면 엄중한 담당관의 눈을 피해 장내로 반입되곤 했다. 심할 때는 책방 하나를 차릴 만큼의 많은 책이 반입되었을 정도라고 한다. - 87p

오늘날의 고시낭인에 해당하는 과거 낙제자들의 문제도 언급된다. 열정과 능력을 모두 가지고도 낙방하여 인생이 망하게 된 이들은 반란 주도자로 변신했다. 황소의 난을 일으킨 황소,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 모두 과거를 준비하던 이들이었다. 특히 홍수전은 청나라에 큰 균열을 가하여 마침내 중국 왕조는 멸망하게 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진보적이었던 과거제도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고성쇠를 겪어 쇠락한 것이라고 한다. 민간에서 과거를 준비하는 것이 교육의 전부였던 탓에 사회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책의 후기에서 일본의 시험제도에 대해 말한다. 일본의 시험지옥은 중국의 과거제도와 유사하다. 인생 초기의 시험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도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와 달리 입학보다 졸업이 어려운 대학이 많고, 젊었을 때 얻은 직업이 평생 가는 일도 적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의 시험을 위해 노력하는 학부모들이 오히려 시험 지옥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저자는 묻고 있다.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은 한 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보편적인 논의를 이끌어 낸다. 중국의 과거제도를 다루면서 간접적으로 인재는 어떻게 선발해야 하는가, 제도는 무엇을 우선순위로 하여 구성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정확한 묘사와 다양한 일화가 독자의 흥미를 돋구고, 폐해를 마주하고 병폐에 신음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독자로 하여금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한국에는 참 중요한 시험이 많다. 때문에 사람들은 중요한 시험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곤 한다. 시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제도가 정말 옳은 것인지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시험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에는 복잡한 사회다.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전혜선 옮김,
역사비평사, 2016


#과거 #중국 #시험 #고시 #고시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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