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20년 취재수첩에 담긴 김광석 죽음 미스터리

[inter:view] 영화 <일어나, 김광석> 만든 이상호 기자

16.07.28 10:08최종업데이트16.07.28 10:37
원고료로 응원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극중 북한군 중사 오중필(송강호 분)은 남한군 병장 이수혁(이병헌 분)에게 묻는다. "근데 광석이는 왜 죽었대냐?"

영화 <다이빙벨>로 영화계에 파란을 일으킨 이상호 기자(49)가 두 번째 영화를 만들었다. 가수 김광석 사망 사건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일어나, 김광석>이다. 지난 23일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영화에는 김광석이 사망한 1996년부터 현재까지, 그의 죽음을 취재한 이 기자의 취재수첩이 영상으로 담겼다. 첫 상영을 마친 이상호 기자를 만나 영화에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한 그의 취재기를 물었다.

영화에 담긴 20년 취재수첩

지난 23일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영화 <일어나, 김광석>에는 그가 사망한 1996년부터 현재까지, 그의 죽음을 취재한 이상호 기자의 취재수첩이 영상으로 담겼다. ⓒ 고발뉴스


김광석의 죽음을 추적한 취재 기록들. ⓒ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MBC 사회부 소속이었던 20년 전. 가수 김광석의 사망 직후, 취재를 위해 영안실을 찾은 그가 만난 사람은 김광석의 장모였다. "목격자가 누구냐", "당시 상황이 어땠다더냐" 기자로서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고, 장모는 딸에게 들은 대로 털어놨다. 하지만 조사가 시작된 후, 아내 서씨의 진술은 달랐다. 어머니에게 '거실에서 쿵 소리가 들려 나갔다'고 말했다던 서씨는 첫 경찰 조사에서 '자다가 남편이 추울까봐 이불을 가지고 나갔다'고 말했고, 두 번째 조사에서는 '비디오를 보다 나갔다'고 진술을 바꿨다. 이상호 기자가 의심을 품기 시작한 이유다.

이 기자는 영화를 통해 김광석의 아내 서아무개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사망 즈음 아내의 남자 문제로 이혼을 결심했었다는 주변의 증언, 일관되지 못한 서씨의 진술, 그리고 김광석 사후 아내에게 돌아간 10억짜리 건물과 100억대에 이르는 저작권 수입까지. 이 모든 의혹이 가능한 이유는 당시 초동 수사가 미흡했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영화에서 국내 1호 프로파일러 배상훈 교수(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학과장)도 당시 정황과 김광석의 발견 당시 모습, 아내 서씨의 여러 인터뷰 등을 확인한 후 단순 자살로 보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유명 가수의 죽음. 제대로 수사되지 못했던 이유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죽은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아요. 한해 변사자가 3만 명에 이릅니다. 그 중 검사가 현장에 나가 확인하는 사건은 1/10도 안 되죠. 20년 전에는 그나마도 거의 없었어요. 때문에 초동 수사 단계에서 제대로 수사되는 경우가 없었어요. 게다가 유명인일수록 타살 혐의를 두고 조사했다가 미제로 남으면 불이익이 크죠."

연이은 보도 좌절, 포기할까도 했지만…

이상호 기자의 취재 기록을 살펴 보는 한국 1호 프로파일러 배상훈 교수. ⓒ 고발뉴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고 김광석의 형 김광복씨와 이상호 기자. ⓒ 고발뉴스


이 기자는 지난 20년 동안 끊임없이 보도를 통한 재수사를 추진했지만, 번번이 벽에 가로막혔다. 사건 직후에는 사건부 초년 기자라 역할이 제한적이었다. 검찰 출입 기자가 된 이후에는 검찰 라인을 통해 재수사를 촉구했다. 이후 서울 중앙지검 강력부에서 재수사가 진행됐고 아내 서씨 인터뷰 내용을 거짓말 탐지기를 통해 조사해 '거짓말'이라는 결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제대로 진상 조사가 이뤄지나 싶었던 그때, 해당 수사팀에서 다른 건으로 조사받던 피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팀은 해체됐고, 재수사를 약속했던 담당 검사도 구속돼 버렸다. 김광석 재수사가 무위에 그쳤음은 물론이다.

MBC <사실은>을 통해 보도 계획도 세웠지만, 삼성 엑스파일 보도 이후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다시 무산됐다. 이상호 기자는 "마라톤을 하려던 생각은 없었다, 100m를 달리려고 했는데 종착지가 계속 뒤로 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마라톤을 완주해 버린 셈"이라고 말했다. 2016년은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 꼭 20년이 되는 해다. 20주기에 맞출 생각은 없었지만 "더 늦어져서는 문제 제기 자체가 곤란하겠다는 다급한 생각이 들었다"고.

영화에 담은 팩트, 다 담지 못한 의혹

지난 16일부터 서울 동대문 DDP에서 김광석 20주기 기념 전시회 '내 안의 김광석, wkf tkfwl?(잘 살지?)'가 열리고 있다. 20년이 지났지만 팬들의 마음 속에 김광석은 그의 음악과 함께 여전하다. ⓒ DDP


하지만 영화는 김광석의 죽음에 대해 속 시원한 해답도, 명확한 증거도 내놓지 않는다. 김광석의 가족들은 김광석이 사망한 날, 같은 건물에 있었던 서씨 오빠에게 위험한 전과가 있는데도 수사과정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이상호 기자는 "가족들은 경찰 라인을 통해 사건을 덮기 위한 로비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계속 취재 중이지만 확인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서씨 가족에게 과연 경찰 수사 라인을 흩트릴만한 힘이 있었을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었다. 사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만큼, 그 원인을 며느리에게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광석이 아버지에게 넘긴 저작권을 소송을 통해 모두 가져간 서씨에 대한 원망이 더해진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변사 사건은 다양한 의혹과 역학관계에서 나오는 감정들이 있어요. 이 사건도 유족들의 주장을 전적으로 강변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다만 단순한 자살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화에는 뉴스처럼 강조하거나 보고서처럼 밑줄 쳐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논리적으로 타살을 주장할 수 있는 팩트는 담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내 서씨의 반론권이 확보된 내용만 담았기 때문에 모든 의혹을 넣을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충분한 근거가 제 안에 있어요."

20년. 이미 공소시효도 끝난 사건이다. 김광석의 죽음 말고도 취재해야 할 내용이 많았던 그는 이따금 "그만해야겠다"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김광석의 음악이었다. 생전에는 일면식도 없던 김광석이지만, 그의 죽음을 취재하고 주변인들과 만나며 친밀감도 들었고, 취재가 연거푸 좌절되며 부채의식도 생겼다고. "음악을 들을 때마다 야단맞는 느낌이었다"는 그는 "이렇게 훌륭한 음악을 하시던 분인데, 살아계셨다면 더 좋은 음악을 얼마나 더 만들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공소시효가 끝나버려 이제 더 이상 저 혼자는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인터넷도 SNS도 없던 시절에 저로서는 몸부림 쳤지만 실패했죠. 이제 남은 건 시민들밖에 없어요. 영화 곳곳에 퍼트려 놓은 의구심들, 눈 밝은 네티즌들은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의문을 제기한다면 언젠가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마이크 대신 메가폰 쥔 기자

지난 23일 영화 <일어나, 김광석>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첫 상영됐다. 첫 상영을 마치고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이상호 기자.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다이빙벨> 그리고 <일어나, 김광석>. 영화를 통해 진실을 추적하는 취재기를 담아내는 그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마이크를 빼앗긴 상태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 기자는 "만약 MBC에 남아있었다면, <다이빙벨>도 <시사매거진 2580> 등을 통해 방송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에서 다루지 못하는 주제를 다루다 보니, 그의 영화는 영화계에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작 <다이빙벨> 상영 문제로 혼돈에 빠진 부산국제영화제가 대표적이다. <다이빙벨>은 세월호의 희생자 구조 과정에서 해난구조장비인 '다이빙벨' 투입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공방을 기록한 영화. 당시 새누리당 소속 서병수 부산시장과 세월호 일반인 유족회는 부산국제영화제 측에 상영 철회를 요구했지만, 영화제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부산시 측은 예산삭감과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 요구 등 여러 압박을 해왔고, 2년째 파행을 겪고 있다. 이상호 기자는 "아직도 고초를 겪고 계신 이용관 위원장님께는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착잡해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어나, 김광석>의 상영을 결정하기 까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고심이 컸을 법하다. 이상호 기자는 영화 상영 직후 열린 GV(관객과의 대화)에서 "어려운 결정 내려주신 부천영화제와 영화인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인사한 뒤 관객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의 영화는 계속된다

이상호 기자에게 영화는 저널리즘의 새로운 창구다. 그의 다음 작품은 대통령의 7시간, 삼성 엑스파일 등을 다룰 예정이다. ⓒ 고발뉴스


"영화가 새로운 미디어로서 효용성이 있다는 생각을 전부터 해왔어요. 최승호 선배도 <자백>이라는 영화를 통해 언론의 기능을 수행하셨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공적 언론의 기능이 붕괴된 상태기 때문에 다른 영상 매체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그에게 영화는 예술의 영역이라기보다 저널리즘의 새로운 창구다. "영화적으로는 많이 부족해 배우면서 해야 한다"면서도 차기작을 계속 준비 중인 이유다. 다음 주제는 대통령의 7시간, 삼성 엑스파일, 조선 시대 무당에 대한 이야기 등이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면 편하게 소파에서 시청하실 수 있는 내용을 극장까지 나와 보시게 됐어요. 게다가 유통이 쉽지 않아 극장에서도 쉽게 보실 수 없는 현실이죠. 언론 지형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가 희망하는 일들은 이뤄지지 않을 겁니다. <뉴스타파> 등 대안 언론들이 열심히 노력하고는 있지만 쉽지 않아요. 불편하고 수고스러우시겠지만, SNS를 통해 많이 알리고 소문내주세요."

이상호 일어나 김광석 다이빙벨
댓글1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3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