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페미니즘? 일단 배우기나 하자

'페미니즘'과 '포켓몬' 관심도 비교해 보니... 젠더 교육의 상향평준화 필요

등록 2016.08.01 14:56수정 2016.08.0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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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메갈리아>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표방하는 <오마이뉴스>는 이 문제와 관련해 다양한 주장성 기사를 싣고 있습니다. 이 글에 대한 반론이나 기타 의견을 보내주신다면 가감없이 싣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한 달 동안 티셔츠 한 장이 불을 지핀 '메갈' 논란이 한 풀 꺾였다. 폐허에 남겨진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됐다. '진정한 페미니즘 감별사'들이 과연 '진정한 페미니즘'을 설파하는데 성공했는지 따지는 건 차치해두자. 이미 고민됐어야 할 것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구글 트렌드는 구글 사용자들의 검색을 바탕으로 일정 기간 동안 이슈의 트렌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이를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몇 가지 검색어를 입력하면 사용자들의 관심도 추이를 그래프의 상대적인 높낮이로 보여준다. 아래는 지난 10년(2006년 1월~2016년 7월) 동안 '페미니즘'과 '포켓몬'에 대한 관심도를 비교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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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시점: 2016년 7월 31일 22:20) ⓒ 하지율


7월에 게임 회사 나이앤틱의 구글맵 기반 AR(증강현실) 모바일 게임인 '포켓몬 고'가 속초에서 플레이 가능하다는 소식이 있었고 구글에서도 '포켓몬'이 이용자들의 관심사였던 걸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포켓몬이 페미니즘보다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번 '진정한 페미니즘' 논란은 메갈 논란에 동반했다. 그리고 어떤 남성 누리꾼은 기자에게 네이버에 올라온 '베스트 댓글'이라며 메갈과 IS를 비교했다. 결정적 유사성이 없는 두 사례를 기계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유비 추론의 오류'이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핵심은 메갈이 정말 IS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심각한 문제라면 사람들은 왜 한가롭게 메갈보다 포켓몬에 관심을 보이냐는 거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이 누리꾼은 정말 진지하게 메갈을 IS와 비교한 걸까. 참고로 지난 7월 '포켓몬'의 관심도가 100일 때 '메갈리아'는 12에 그쳤다. 한편 메갈 논란에 동반하는 '진정한 페미니즘' 논란의 주인공인 '페미니즘'은 1에 불과했다. 페미니즘은 원래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포켓몬을 이겨본 적이 없다.

페미니즘을 접해 본 사람, 과연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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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일부터 2016년 7월 31일까지. ⓒ 하지율


구글에서 다음, 네이버로 넘어가 보자. 한국 교육은 중·고등학교에서 성인지 교육을 비중 있게 반영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교양, 전공으로 페미니즘 이론을 접한 경우도 일반적인 경험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페미니즘 이론을 접하는 경로는 스스로 독서를 하거나, 인터넷(포털, 커뮤니티 등), 대중 매체를 통해서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6'에 따르면, 사람들이 뉴스를 소비하는 시작점은 포털 및 검색 서비스라는 응답의 비율은 60%에 달했다. 지난 7월 한 달 동안 '포켓몬'에 대한 뉴스는 네이버에는 7551건, 다음에는 6760건에 달했다. 반면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페미니즘은 각각 1338건, 1130건에 그쳤다(2016.7.31. 22시 35분 기준). 페미니즘이 급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2015년에 메갈리아가 부상하면서부터다.


사람들이 페미니즘 이론을 독서를 통해 제대로 접했을 가능성은 높다고 보기 힘들다.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광부)는 지난 1월 전국 19세 이상 성인 5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5 국민 독서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년간 1권 이상의 일반도서를 읽은 성인은 65.3%였고 독서량은 연평균 9.1권이었다. 그런데 문광부 조사에서 책을 읽었다고 답한 성인들의 도서 선호 분야 중 '철학·사상·종교'와 '정치·사회·시사'는 각각 9.9%, 3.9%에 그쳤다.

이들이 모두 페미니즘 도서를 최소한 1권 이상 읽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물론 이 분야를 선호하지 않아도 드물게나마 페미니즘 도서를 읽었을 수는 있지만 말이다. 한편 문광부는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연령대가 낮을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책을 더 많이 읽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했다. 페미니즘 이론을 접한 사람들도 중산층 이상의 젊은 식자층, 그것도 인문·사회를 선호하는 취향을 가진 이들에 가깝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폐허 위에 남겨진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여기서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페미니즘 이론을 접한 적이 없다고, 혹은 반대로 페미니즘 이론을 접한다고 '진정한 페미니즘'을 못 찾거나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또한 꼭 그것을 찾아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다. 어쨌든 사람들이 서로 '말이 통하려면' 무언가 최소한의 맥락 정도는 공유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다.

그게 없다면 '진정한 페미니즘'을 따지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중은 식자층이 교조적이라고 생각할 거고, 식자층은 자기들끼리 답답해하며 술만 늘어갈 것이다. 술을 못 마시면 더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중주의도 계몽주의도 아닌 '상향 평준화'를 지향해야 한다. 모두에게 페미니즘 이론부터 평등하게 '분배'하고, 제대로 고민할 '기회'를 주고, 실제로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 지켜보는 것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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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2일 오전 서울 청운동 경복고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책을 펴놓고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권우성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전국 20~50대 성인남녀 1039명(남성 49.3%, 여성 50.7%)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학교에서 남성들이 여성을 존중하도록 '젠더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라는 문항에 남성 60.2%, 여성 82.7%가 동의했다. 남녀 간에 정도 차이는 있지만 과반 이상이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수요는 충분하다.

하지만 한국 중·고등학교는 공급을 거의 하지 못 한다. 아이들은 물리적으로는 모여있지만 토론과 연대를 이루지 못 한다. 외면적으로 어떤 스파크를 만들어내는 것 같지만, 최종적으로는 입시 경쟁 체제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예정 조화'될 뿐이다. 세상을 인식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울 기회는 드물고 그것이 '젠더' 문제라면 더더욱 그렇다.

포켓몬이 현 20대에게 남녀 모두에 '킬러 콘텐츠'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공통 지반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공통 지반이 되려면 제도적인 측면, 특히 교육 제도 개선은 피할 수 없는 선결 과제다.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포켓몬 #메갈리아 #메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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