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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듯 말 듯한 진심, 누구도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뼘리뷰] 욕망과 질투가 뒤엉킨 네 남녀의 이야기... 영화 <비거 스플래쉬>

16.08.04 11:17최종업데이트17.02.1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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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거 스플래쉬> 속 한 장면. (왼쪽부터 순서대로) 폴과 마리안, 페넬로페와 해리의 관계는 점점 얼키고설키며 욕망과 질투의 민낯을 드러낸다. ⓒ 찬란


목소리를 잃은 록스타 마리안(틸다 스윈튼)은 연인 폴(마티아스 쇼에나에츠)과 함께 자그마한 섬에서 휴양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안의 지나간 연인이자 폴의 친구 해리(랄프 파인즈)가 자신의 딸 페넬로페(다코다 존슨)와 함께 섬을 찾아 이들의 집에 묵게 된다. 네 사람은 함께 섬을 여행하고 파티를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과거의 기억과 불편한 욕망이 수면 위에 떠오르면서 이들 사이에 조금씩 균열이 발생한다.

영화 <비거 스플래쉬>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연인으로 보이던 마리안과 폴 앞에 해리와 페넬로페를 등장시키면서 관계 속 미묘한 감정들을 세심하게 다룬다. 두 남자와 두 여자의 관계는 모든 경우의 수를 아우르며 폴-마리안-해리, 마리안-폴-페넬로페, 폴-페넬로페-해리, 마리안-해리-페넬로페의 네 가지 삼각 구도로 얽힌다. 이 와중에 보일 듯 말 듯 한 이들의 진심을 추적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과거의 추억에 빠져 내심 마리안에 대한 미련을 품고 있는 해리와 천방지축의 매력으로 폴에게 관심을 보이는 페넬로페. 이들이 마리안과 폴의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고 둘의 관계를 시험대에 들게 한다. 그렇게 영화는 누구도 욕망과 질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관객에게 상기시킨다.

영화 <비거 스플래쉬>의 한 장면. 연인 사이인 폴(왼쪽)과 마리안(오른쪽) ⓒ 찬란


<비거 스플래쉬>는 자크 드레이 감독, 알랭 등롱 주연의 <수영장>(1969)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수영장>은 개봉 후 '서스펜스 로맨스'라는 신선한 설정으로 프랑스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고, 지난 2003년에는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이 작품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스위밍 풀>을 선보이기도 했다. <비거 스플래쉬>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원작의 마리안과 폴, 해리 캐릭터에 각각 록스타와 영화감독, 음반제작자라는 설정을 더해 영화를 현재의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특히 극 중 마리안이 목소리를 잃었다는 설정은 배우 틸다 스윈튼이 직접 감독에게 제안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유행이 지나버린 로큰롤 시대와 롤링 스톤즈의 기억을 자랑스레 떠벌리고 과거의 연인 앞에서 지난 추억을 늘어놓는 해리는 단연 영화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는 화려한 록스타의 삶을 내려놓은 채 침묵하는 마리안에게 "목소리가 나지 않는 게 진짜냐"며 재기를 종용하고, 폴이 자살을 시도했던 일을 끄집어내며 그의 상처를 건드린다. 다 커서야 처음 만났다는 딸 페넬로페와는 가라오케에서 함께 노래하면서 연인 못지않은 다정한 모습으로 다른 두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그렇게 해리가 영화 속 네 주인공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시발점이 되었다가, 결말에 이르면서 다른 인물들을 성장(변화)시키는 전개는 커다란 시사점을 남긴다.

영화 <비거 스플래쉬> 속 한장면. 마리안과 폴 앞에 어느날 해리(왼쪽)와 그의 딸 페넬로페(오른쪽)가 불쑥 찾아온다. ⓒ 찬란


영화의 로케이션인 이탈리아 판텔레리아 섬 또한 아슬아슬하고 이질적인 영화의 분위기를 더하는 데 한몫한다. 지중해에 있는 이 섬은 아프리카와 유럽이 뒤섞인 듯한 독특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유명한 관광지도, 바캉스를 즐길 백사장도 없어 어딘가 휴양지라 하기엔 부족해 보이고, 카메라 또한 섬의 풍광을 담는 데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도시에서 온 '잘 나가는'마리안 일행에게 이곳은 그저 현실에서 벗어나 멋대로 놀기 좋은 무대인 셈이다. 내내 쨍쨍하던 섬에 태풍이 불어오고 비가 쏟아지는 장면들은 그렇게 극과 극을 오가는 인물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다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들의 이야기가 이질적이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3일 개봉.

비거스플래쉬 수영장 틸다스윈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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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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