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그림, 대작이라 밝혔으면 안 팔렸을 것"

"이거 작가가 직접 그린 건가요?" 묻는 컬렉터 많아져

등록 2016.08.05 11:09수정 2016.08.0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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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고민? 무엇을 그릴까요? <출처=pixabay> ⓒ 조창현


'조영남 그림 대작사건'에 천경자·이우환 화백 위작사건까지 겹치면서 우리나라 미술계가 큰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고(故) 김환기 화백의 대형 점화(點畵)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작품들이 모처럼 세계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시기에 터진 사건이라 너무 안타깝습니다. 얼른 사건이 마무리돼 미술계가 빨리 안정되길 바랄 뿐입니다.


필자는 조영남 사건을 쭉 지켜보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사건에 대한 미술계 현장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소식들이 전해졌지만, 정작 미술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물론 미술인협회 등에서 단체로 조영남을 고소하고, 평론가나 비평가 등 주변 목소리는 적잖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직접 당사자로 보이는 화가나 큐레이터들의 솔직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미술에 일생을 걸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해가는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이에 현직에서 활동하는 화가 2명과 큐레이터 1명에게 똑 같은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질문의 핵심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와 '조영남이 구체적으로 미술계에 어떤 피해를 입혔나?' 등 크게 두 가지입니다.

직접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실명이 부담스럽다고 해서 익명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들의 말을 거르지 않고 가감 없이 전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다소 거친 표현이 있어도 이해를 바랍니다. 

#2. 1편 50대 여류화가 J의 인터뷰 "조영남, 깝죽거리다가 큰코다친 거지", 2편 30대 젊은 화가 K의 인터뷰 '예술이란 무엇인가? 조영남이 던진 화두'에 이어 약속한대로 세 번째 큐레이터 C의 인터뷰를 내보냅니다. C는 유럽에서 미술을 공부했으며, 현재는 갤러리를 운영하며 유망한 작가들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기사는 인터뷰이가 장기간 해외 출장 중이라 늦어졌습니다.


- 조영남의 작품을 예술로 보는가?
"예술로 보지 않는다. 이유는 조영남은 전업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중요한 문제다. 아무래도 전업 작가와 취미로 하는 작가는 작품부터 다르다. 이 사람이 얼마만큼 작품에 몰입하고 일생을 걸고 작품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조영남은 취미생활이고,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다. 판매하는 것은 본인 마음이지만, 예술품은 아니라고 본다."

- 이번 사건이 우리나라 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너무도 추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잘 모르는 대중들은 조영남을 작가로 인식을 해서 '아 미술품은 저렇게도 만들어지는구나'라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 작가도 아닌 사람이 미술계를 이상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 
"넓게 보면 작가들이다. 최근 만난 한 컬렉터는 딴 그림을 소개하는데 '이거 작가가 직접 그린 거냐'라고 묻더라. 주변 지인들도 '그림을 작가가 그리지 않는 경우도 있느냐'고 농담처럼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결국 믿지 못하기 때문에 묻는 거 아니겠나."

- 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보는가?
"조영남 개인의 욕심 때문이 아닐까. 능력도 없는 사람이 유명세 때문에 그림이 잘 팔리니까 욕심을 더 부리다가 결국 무리수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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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되는 온갖 페인트들. <출처=pixabay> ⓒ 조창현


- 앤디 워홀, 다미엔 허스트, 제프 쿤스 등 세계적인 작가들도 타인에게 물리적인 작업을 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조영남과 뭐가 다른가?
"일단 그 작가들은 기본적인 능력을 갖췄고, 또한 '내 작품은 이런 것이고, 이렇게 만든다'라고 작업방식을 당당하게 밝히고 작업을 한다. 그래서 작품을 구입하는 사람도 알고 사는 것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조영남처럼 능력도 없는 사람이 속이면서 작업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 만약 조영남이 대작이라고 밝히고 그림을 팔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작품이 안 팔렸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가들 중에도 조수들이 그림을 도와주는 화가들이 있다. 그런 것은 미술계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영남의 그림은 그럴 가치가 있는 것들은 아니다. 만약 대중들 특히 조영남 작품을 산 사람들이 이런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당연히 사지 않았을 것이다."

- 동료 예술가들과 이번 사건에 대해 얘기해본 적은 있는가? 있다면 뭐라고들 하던가?
"도덕적으로 나빴다는 얘기를 주로 했다. 범죄 성립 여부는 작가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외국에서는 '과거 어느 작가의 조수였다'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경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영남의 경우는 조수를 숨겼고 대우도 형편없었다. 미술계에서 가장 많이 욕하는 부분이다."  

- 외국 작가의 조수에 대해 보충설명을 한다면?
"외국의 경우 좋은 화가의 조수를 하면서 배우는 작가들도 많다. 작가나 조수나 서로를 인정하고 대접하고 윈윈하는 경우가 많다. 조영남의 상황은 굉장히 잘못된 경우다."

- 혹시 지금 이 시점에서 조영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른 것은 다 떠나서 타인에게 인간적으로 잘 해야 할 것 같다. 조수에게 잘 해줬다면 이렇게까지는 안됐을 것이다. 만약에 앞으로도 그림을 계속 그릴 거라면 조금 더 공부하고 조금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에 돈을 받고 팔고 싶다면 조금 더 진지하게 작품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 사건의 영향으로 미술계에 못 믿는 풍조가 생겼다고 보는가?
"미술에 대해 나쁜 선입견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고 본다. 화가도 아닌 사람이 가뜩이나 어려운 미술 시장을 더럽혀 놨다. 미술과 작가에 대한 순수함을 망가뜨려 놓은 것이다. 예술에 대해 사법기관에서 판단하게 만든 행위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 (법이 판단할 일이지만) 큐레이터의 눈으로 봤을 때 이번 사건은 사기죄로 보는가?
"범죄의 성립여부는 모르겠지만, 사기성은 있다고 본다. 자기가 그리지 않은 것을 숨겨서 판매한 순간 문제가 됐다. 하지만 조영남이기 때문에 사건이 확대된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사기죄 여부는 법에서 판단할 문제다."

- 왜 사기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조영남은 그동안 자신이 작업하는 장면들을 언론에 공개해왔다.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대작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대중으로 하여금 조영남이 그린 그림이라고 믿게 만든 것이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다면?
"조영남 사건은 나쁜 것도 많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를 미술계에 던졌다고 본다. 작가는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도 우리나라 현대미술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상으로 '조영남 대작사건을 바라보는 미술계의 시선'과 관련한 세 편의 인터뷰를 끝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세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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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작업대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들 <출처=pixabay> ⓒ 조창현


덧붙이는 글 기사는 바우콘텐츠공작소(www.bowmedia.co.kr)에도 실렸습니다.
#조영남 #대작사건 #큐레이터 #화가 #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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