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엄마 생각이 나서 울었다

<레이저광선수업> 창의교육과 인성 교육을 한 바구니에 담아보자

등록 2016.08.05 11:11수정 2016.08.0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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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엄마 생각이 나서 울었다. 여태까지 엄마를 피해 다니는 삶이었는데, 몹시 그립고 또 미안했다. 난 엄마에 대한 애정과 친근감이 없다. 엄마를 만나도 서먹서먹하고, 친구들을 만나서 어쩌다 가족 얘기가 나오면 난 엄마를 욕하는 편이었다.

어렸을 때 맨날 구박하고, 욕하고, 무시하고, 멍청하다고 하고, 빠릿빠릿하지 않다고 했다. 말과 억센 행동이 떠올라 항상 씩씩거렸다. 내안에 얼마나 많은 증오와 분노가 차 있었는지, 깨어도 깨지지 않는 벽이었다. 상담을 받고 책을 읽고 영화를 봐도 다른 엄마들을 보면서는 엉엉 울어도 우리 엄마한테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 그게 깨졌다.

'니 애미 없다.'
초등학교 아이들끼리 서로 화날 때 하는 욕이다. 그런데 그 욕을 내가 들었다.

'김광선 NO M'
내가 어렸을 때는, '니 ○ 굵다'하면서 상대방을 약 올리듯 요즘 아이들은 소중한 '엄마'를 건다.

방학식날이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통지표를 정리했다. 전날 색 A4 표지에 스테이플러를 찍는 일만 남겨두었던 일을 마무리하고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잠깐 복도에 나갔다 온 사이에 가지런히 번호대로 올려놓았던 통지표를 뒤적뒤적 거리며 자기 번호의 자기 이름이 쓰여진 것을 파헤쳐 교과 평가를 쭉 읽는 아이가 있었다. 몇 시간만 있으면 나눠 줄 건데 그걸 못 참아 뒤적거리는 게 싫었다.

"아! 이런 식이면 방학 숙제 많이 내고 싶어지네"라고 했다. 이미 프린트해 두었던 방학숙제를 다시 고치는 일은 없다. 속상해서 그냥 해 본 소리에 "앙~ 안돼요." 절규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교실 화분을 밖에 내놓으러 한 10명 정도의 아이들과 교실 밖을 나갔다가 약 10분 정도 지나서 들어왔다.

한 달 방학을 거뜬히 이겨낼 공간을 찾아서 식물을 키우기 위해서다. 나간 사이에 철이(가명)가 자기 국어책에 내 욕을 했고 동조하는 한 명이 키득거리면서 맞장구를 쳤나보다. 3교시 방송으로 나오는 방학식을 마칠 때까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일렀다. "철이가 선생님 욕했어요"하니까, "아닌데요....야, 너도 했잖아"한다.


궁금했다. 아이를 복도로 나오게 해서 살살 물었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한참 물어보았다. 그냥 '바보'나 '왜 저래..'이런 식이었다면 피식 웃고 말았을 거다. 그런데, 엄마 얘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무너지며 울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걷잡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나를 낳아준 사람인데, 엄마가 없으면 나도 없는 거고 존재의 이유가 없는 거다. '죽어라'보다 더 심한 모욕이 느껴졌다. 철이는 뜻을 모르고 썼고 그냥 장난으로 했다며 살짝 놀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땐 정말 대책이 없다. 가해자는 별 생각이 없는 장난인데, 피해자는 울며불며 억울해 하니 말이다.

철이를 보내고 생각해 보니까 철이에게 이런 식으로 인격적인 모욕을 당한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냥 가볍게 넘어 갔던 일들이 떠올랐다.

"선생님, 얘가 저보고 장애인이래요."
"공부 못한다고 놀려요. '곱하기도 못하는 주제에' 라고 했어요."
"'우리 편에 저런 쓰레기는 안 받아' 하면서 피구도 자기편에 끼워주지 않으려 해요" 말할 때, "철이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고 몇 번 말하고 말았던 게 생각났다.

남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욕부터 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 욕을 듣는 무고한 아이들. 좀 더 적극적으로 처음 욕이 나오던 그 순간부터 충분히 지도 했어야 했다. 이렇게 심한 패배감, '나 이번 학기 망했다'라고 느낀 적은 처음이다.

창의 교육만 했지, 인성 교육을 못했다. 정직하고 용감하게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살아야 한다는 얘기만 했지, 남을 헤아리고 배려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는 것을 행동하라는 얘기는 했지만 욕으로 남을 해칠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교과 수업만 잘 가르치려 했지 쉬는 시간 행동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반성한다. 이렇게 욕을 얻어먹고 나서야 비로소.

도덕적 가르침은 기준과 기대치를 높이 세우고 학생이 이를 달성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많은 학생이 도전을 거부하고 싫어하며, 때로는 부모와 지역 사회도 학생에게 요구되는 자기극복 기준을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지식과 이해의 폭을 넓히도록 학생을 자극하는 일이 교사의 책임이 아니던가? 아니면 교사가 명령이라면서 "대수롭지 않은 성공을 거두느니 아예 큰 실패를 선택하라"고 날마다 칠판에 적어야 옳겠는가?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마찬가지로 교사는 학생이 충고를 거부한다 해도 학생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 스스로가 높은 기대치를 세우고, 무엇을 성취할지 상상하며, 그것을 성취하겠다는 포부를 키우도록 학생을 이끌어야 한다.  -제임스 M. 배너 주니어, 해럴드 C. 캐넌 지음 <훌륭한 교사는 이렇게 가르친다> 68쪽.
#인성교육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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