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서 피하고 싶었던 권정생의 책들

[서평] 정지아의 <천국의 이야기꾼 권정생>

등록 2016.08.11 09:38수정 2016.08.1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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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의 <천국의 이야기꾼 권정생>은 가장 보잘 것 없는 것을 통해 삶의 아픔과 따뜻함을 담담하게 비춰내던 아이들의 친구 권정생 선생의 생애를 그의 시각으로 풀어놓은 자서전과도 같은 책이다.

그가 1937년 가난한 청소부의 아들로 태어나 2007년 70여 년간의 나그네 생을 마치던 날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결핵으로 이미 10대의 끝자락에 사형선고를 받은 그이기에 많은 인생을 덤으로 받은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권정생.

그래서 그는 주어진 삶을 감사함으로 그리고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의 힘듦을 나누어야만 했던 이들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평생을 살아야했다. 그에겐 업이었을지 모를 삶이었겠지만 그는 덤으로 주어진 삶을 이야기꾼으로 살아가며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여러 권의 저서를 남긴다.

처음 우리 아이가 3~4살 무렵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유명한 책쯤으로 생각하고 <강아지똥>을 집어 들었다. 첫 장을 넘기고 끝장을 닫으며 먹먹하고 아련하고 뭔지 모를 애잔함 뒤에 삶에 대한 따스한 작가의 시각이 느껴졌던 책.

며칠을 그 후유증에 생각이 깊어지면서 그의 저서를 살펴봤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내 어린 날의 추억이 담긴 <몽실언니>. 초등학생이었던 당시의 내 눈에 <몽실언니>라는 전 국민의 드라마는 눈물, 콧물 다 짜면서 봤던 이야기였다.

전쟁은 슬픈 거구나, 가난은 힘든 거구나, 그렇지만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는 구나를 느꼈던 이야기. 그 이야기의 저자가 권정생이었다.

그렇게 그의 저서를 몇 편 읽었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엄마까투리>란 책을 우연히 들었다. '저자 권정생'이란 다섯 글자 앞에 망설이길 여러 달이 지났다. 사실 나는 권정생 선생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적절할진 모르겠지만 내겐 그의 작품이 굉장히 불편하다.

그의 작품을 접하고 나면 며칠간을 열병을 앓는 것 마냥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그 책을 읽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반년이 흘러 용기를 내어 <엄마까투리>를 들고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역시나 짧은 책은 긴 여운을 남긴 채 내 눈물주머니를 터트려버렸다.

엄마가 되기 전에 읽었으면 덜 했을까? 엄마까투리의 절절한 사랑에 책을 부여잡고 서럽게도 울었던 기억이 난다. 모든 걸 내어주고도 더 주지 못함에 미안해하는 어미의 사랑은 아마도 사람이든 동물이든 매한가지가 아닐까 싶다. 어느 어린이 독자가 권 선생에게 보낸 엽서내용이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선생님이 쓰신 <점득이네>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점득이가 눈이 멀었을 때 저도 하도 울어서 눈이 머는 줄 알았어요. <몽실언니>도 읽었는데 몽실언니도 너무 불쌍해요. 부탁이 있는데요. 너무 슬픈 이야기만 쓰지 마세요. 재미있는 이야기도 써주세요. 부탁드려요." - <천국의 이야기꾼 권정생> 중

그 엽서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 한 권의 책으로 얻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세상이 너무 슬퍼 그러질 못한다는 그의 삶은 참 기구하다. 소쩍새마냥 구슬픈 노래를 읊조리던 그의 눈에는 슬프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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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의 '천국의 이야기꾼 권정생' 표지 ⓒ 실천문학사

<천국의 이야기꾼 권정생>은 그가 왜 자식 같은 저서의 대부분에서 슬픔을 토해낼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준다. 일제시대, 6.25전쟁, 보릿고개 그리고 결핵까지 그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피할 수도 없는 삶의 구렁텅이에서 그는 영문도 모른 채 형들과의 생이별을 경험했고 배고픔에 지쳐 굶어 죽은 목생이 형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바라봐야했다.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던 어느 날 그의 눈앞에서 희망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걸 목도했고 그 와중에 결핵이라는 몹쓸 병에 걸려 같은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려야했다.

그렇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 속에서 형편은 더 곤두박질치고 자신의 병으로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에 그는 집을 나와 거지로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동네에서 유일한 결핵 생존자라는 것은 힘든 시절을 살아가던 이들에게 환영받을 일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평생을 홀로 결핵과 여러 합병증으로 망가진 몸을 가녀린 생명 줄에 기대어 살았던 그. 그런 선생에게 친구는 그의 품으로 뛰어든 생쥐 한 마리, 방문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던 개구리 녀석, 또 그의 집을 나누어쓰던 지네와 개미들이었다.

작은 모기 한 마리에게도 기꺼이 맨살을 건네주고, 추위를 피해 뛰어든 생쥐에게 자신의 품을 나눠주던 그에게 모든 생명은 소중했다. 하다못해 길 가다 마주치면 피하거나 걷어차임을 당하는 강아지똥도 그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에 태어날 이유가 있는 그 무엇이었다. 가장 낮은 것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 그것들은 권정생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권 선생의 삶이 녹아있는 책들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그의 책들이 투명한 거울이 되어 세상에 닳고 달아 가슴이 차가워진 내 자신과 정면으로 부딪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쥐덫에 걸려 죽어있는 생쥐 한 마리에 마음이 아파 수업이 마치기 무섭게 무덤을 만들어주었던 12살의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이 되어있는가.

어디서 날아 들어왔는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낸 못난이 잡초가 기특해 화단을 온통 잡초 밭으로 만들었던 나는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있는가. 세월과 함께 남의 일에 무관심해지고 때론 불편한 진실에 귀를 막기도 하고 적당히 비겁한 듯 무심하게 삶을 살아온 내 모습.

그래서 한 그루 나무가 베어지는 것이 마음이 아파 작은 나무를 부둥켜안고 꺼이꺼이 울던 중년의 권정생 모습이 슬프다.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엔 그의 삶이 너무 무겁다. 어쩜 그는 자신의 삶의 무게를 내려놓듯 책을 펴내고 슬픔의 짐 하나를 덜어냈을지도 모른다.

권정생 선생의 저서보다 더 슬프고 아름다운 그의 삶이 담긴 <천국의 이야기꾼 권정생> 이 한 권의 책이 또 얼마만큼의 후유증을 안겨줄진 모르겠지만 이젠 그의 저서를 한 권 한 권 읽어가며 그의 삶의 여운에 탑승할 용기를 가져볼까 한다.

그리고 동화책 속의 아름다운 비현실로 세상을 배운 내가 이 황량한 현실과 처음 맞닥뜨렸을 때의 절망감 대신 삶에 대해 차분히 바라보고 그 삶 속에서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권정생의 책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안겨주려 한다.

천국의 이야기꾼 권정생

정지아 지음,
실천문학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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