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하면서 미래의 봉준호 찾기, 어떠세요?"

[인터뷰] 크라우드 펀딩 영화제 기획 1인 기업 <리키노> 손지현 대표

등록 2016.08.09 15:24수정 2016.08.0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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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얼마나 좋으면 이런 사업을 벌일까 궁금해지는 1인 기업이 있다. 영화 크라우드펀딩 업체인 리키노 손지현 대표를 만나러 강릉 정동진 독립영화제(8.5-7)가 열리는 정동초등학교를 찾았다.

밤 10시 37분, 꽤 늦은 시각에도 행사장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스마트폰에 저장해둔 사진을 여러 번 확인하며 운동장을 돌아다녔다. 인터뷰이를 못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대학생처럼 보이는 20대 여성이 눈에 띄었다. 리키노 손지현 대표였다.


그녀는 춘천 단편영화관 일시정지 시네마 유재균 대표와 대화 중이었다. 가볍게 인사 나누고, 대화가 끝날 때까지 잠깐 기다렸다. 한 여름밤의 영화제는 자유로웠다. 사람들은 돗자리를 깔거나 계단에 걸터앉아 모기를 쫓으며 스크린을 바라봤다.

옆에서 생수를 들이키며 얘기하는 젊은 남자 둘은 놀랍게도 배우와 제작자였다. 남색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다. 권위 있고 어렵게만 여겨지던 존재가 바로 어깨가 닿을 거리에 있었다.

독립, 단편 영화를 찍는 사람은 아무래도 연령이 낮고 신인인 경우가 많다. 후끈거리는 한 여름밤의 영화제에서 꿈 많은 이들의 두근거림을 감지했다. 이런 느낌 때문에 돈 안 되는 독립영화 후원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봉준호와 박찬욱을 찾아내고 싶은 것인가? 인터뷰에 앞서 열정 넘치는 영화인들을 관찰하고 그들이 뿜어내는 분위기를 경험한 건 행운이었다.

마침 손지현 대표가 볼 일을 마치고 왔다. 좋은 영화가 있는 곳이라면 열대야와 한파를 뚫고서도 찾아간다는 그녀에게 물어볼 게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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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 펀딩 영화제를 진행하는 손지현 대표 ⓒ 리키노


"연못에 큰 물고기만 있으면 작은 물고기는 살아남기 힘들잖아요."

- 회사 이름이 리키노(Rekino)인데 어떤 의미인가요.
"1995년에 창간된 키노라는 영화잡지가 있었어요. 영화 평론을 중심으로 하는 잡지였는데 한국에는 잘 소개되지 않았던 예술 영화나 개성 강한 외국 감독들 작품도 다뤘어요. 너무 전문적인 내용에 어려운 단어도 많아 대중성이 좀 떨어졌지만 마니아층의 지지는 뜨거웠어요. 결국 2003년 폐간했는데 수익보다는 영화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용기 있게 찍어낸 잡지가 멋있더라구요(웃음). 그래서 다시란 의미의 'Re'와 키노 'kino'를 붙여 리키노입니다."

- 다시 한 번 키노를 꿈꾸나 봅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를 찍는 영세한 제작자들을 돕는다고 들었어요. 좀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나요.
"크라우드 펀딩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소규모 후원이나 투자를 받는 방식을 말해요. 아이디어는 좋은데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마땅한 투자자를 찾기 어려운 벤처 기업이나 영화 제작자들이 이용하는 방식이에요. 최근에는 음반, 도서, 공연 등 다양한 분야로까지 확대되었어요. 리키노는 영화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회사이구요. 현재 영화 쪽 크라우드 펀딩의 문제점들이 보여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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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키노는 관객을 감독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 리키노


"도움이 필요한 제작자들에게 꼭 필요한 만큼 도움을 주고 싶어요"

- 기존 체제의 문제점이라니 흥미롭네요. 안 그래도 인터뷰하기 전 텀블벅이나 와디즈, 해피빈 공감펀딩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 봤어요. 리키노는 어느 부분을 손대고 싶은 건가요.
"영화 제작자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 싶어요. 쉽게 설명하면  만일 기자님이 A라는 영화를 밀어준다고 해봐요. 후원할 수 있는 금액은 소액부터 다양한데 액수에 따라 차등적인 선물이 지급돼요. 만 원 이상이면 엔딩 크레디트 기재, 오만 원 이상이면 엔딩 크레디트 기재 + 특별시사회 초대권 + 영화 포스터 제공 그 다음은 책이나 한정판 DVD을 제공하는 식이죠. 후원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제공되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엔 가난한 독립, 단편 영화 제작자들 뿐 아니라 자금력이 되는 상업영화들도 크라우드 펀딩에 꽤 참여하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애초에 돈이 궁해서라기보다 홍보 목적이거나, 펀딩 결과를 보고 관객들의 기대 정도를 점검하는 용도로 해요. 당연히 후원에 따른 선물(보상)도 많은 편이죠. 후원자 입장에서는 기왕 후원할 거 서비스 잘 받으면 기분 좋으니까 인지도 있고 규모가 되는 데를 선택하죠.

돈 없고 어린 영화 제작자들은 럭셔리한 보상을 준비하기 힘들거든요. 또 몇 명 되지 않는 스태프들이랑 후원자들 명단 확인해서 연락하고, 보상품 보내고 바빠지죠. 말 그대로 대중들을 상대로 하는 작업이라 금액은 적은데 참여 인원은 많으니 손이 가는 작업들이에요. 이때 들어가는 시간, 노동,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후원을 진행하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들 있죠? 그 사이트에다가 전체 펀딩 금액 중 일정 비율을 서비스 이용료로 지불해야 돼요. 적게는 5%(VAT 별도) 많게는 10%까지 있구요. 더불어 결제대행사인 카드사에서 결제액의 2.8%를 떼 가고, 계좌 이체를 하면 은행 이체 수수료 650원이 붙어요. 결제대행사 수수료는 어쩔 수 없으니 최대한 서비스 이용료를 낮추고자 해요. 최대 2~3%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후원에 따른 선물 제공이나 연락 등을 대행해서 일손을 덜어드리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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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 펀딩 영화제에서 진행된 와인파티 ⓒ 리키노


"크라우드 펀딩 영화제, 작은 축제의 매력이 물씬"

- 오! 굉장하네요. 그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많은 혜택을 보겠네요. 리키노를 통해 영화를 후원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12월 중순 제2회 크라우드 펀딩 영화제를 기획하고 있어요. 현장에 오셔서 직접 감독과 배우들도 만나고 대표작들을 관람하면서 후원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요. 오천 원부터 가능하구요 영화제에서 걷힌 후원금은 수수료 없이 전액 감독들에게 전달돼요. 1회 영화제가 끝나고 많은 분들이 온라인 후원 방법을 문의해 주셨어요. 일 년에 3일 하는 영화제로는 접근성이 떨어지니까 온라인을 통해 상시적으로 후원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 중에 있어요.

리키노의 철학을 꾸준히 실행하면서 실력 있고, 미래가 기대되는  감독님들을 모실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수수료 없이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요. 대신 좋은 영화의 배급권을 확보해 다양한 경로로 관객들이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 해요. 관객들은 시중에서 만나기 힘든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고, 리키노는 수익을 낼 수 있으니 윈윈이라 생각해요."

- 1회 영화제에 참여한 <사일런트 보이>를 봤어요. 올해 전주 국제영화제 단편 경쟁으로 상영되었더라고요. 크라우드 펀딩 영화제만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직접 얼굴 맞대고 교류한다는 점이요. 온라인에서는 서로 만날 수가 없잖아요. 크라우드 펀딩 영화제가 좋은 건 관객들이 직접 영화 창작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뒤풀이 때 관객분들도 참여해요. 끝까지 달리신 분들이 꽤 계셨어요(웃음). 영화 하는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솔직하게 터놓고 그랬어요. 작은 영화제의 묘미죠."

- 영화배우와 술자리라니 정말 두근거리네요. 와인 파티 때문에라도 영화제에 가고 싶어지네요. 마지막으로 영화 팬 분들께 한 말씀 부탁합니다.
"봉준호, 박찬욱 감독도 처음에는 단편 영화로 시작했어요. 한 잔 하면서 미래의 봉준호, 박찬욱을 만나고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려보세요. 리키노는 창작자들의 꿈을 후원합니다."

#독립영화 #크라우드펀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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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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