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한 사회의 '아이어른', 어찌하오리까

[서평] 미하엘 빈터호프의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

등록 2016.08.13 13:20수정 2016.08.1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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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독일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은 업무용 스마트폰 서버를 오후 6시 17분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철저하게 다운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직원들은 주말과 휴일에 업무 관련 메일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독일의 또 다른 자동차 회사 베엠베(BMW)는 직원들이 근무 외 시간에 수행한 업무를 계산할 수 있는 협정을 만들었다. 토요일 오후 업무로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 통화를 한 사람은 월요일에 일찍 퇴근할 수 있다. 근무 외 시간에 처리한 업무의 처리와 정산을 상사의 결재없이 직원들 손에서 이루어지게 한 규정도 만들었다.


폭스바겐과 베엠베가 이런 조치들을 취한 이유가 무엇일까. 독일 정신과 의사이자 청소년 심리치료 권위자인 미하일 빈터호프는 책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에서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업무의 유동성'을 '양날의 검'에 빗댔다.

사람들이 일을 전천후로 할 수 있다는 이점 이면에 충전을 위한 휴식과 여유를 취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져 장기적으로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직원 '보호'(폭스바겐)와 '신뢰'(베엠베) 조치들이 나온 배경이다.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는 세상 모든 일이 버거운 '아이어른'(미성숙한 어른)와 미성숙한 사회를 향한 통렬하고 거친 경고장이다. 책 첫 장에 실린 제사(題詞)가 저자의 주제의식을 압축해 보여준다.

현실도피자, 무사안일주의 은둔자, 영원한 아이어른… 나는 이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다. "여보세요, 제발 성인이 되세요." (5쪽)


저자의 문제의식은 '피로사회'에서 '번아웃증후군'의 삶을 살아가는 대다수 현대인들의 '상식'과 거리가 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치료의 권위자여서일까. 사람들의 내면과 태도를 문제삼는다.


많은 현대인이 "일과 가정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멀티태스킹과 상시 연락 가능한 상태와 끝없는 분주함"(8쪽)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현실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세상이 나한테 요구하는 게 너무 많아. 그래서 제대로 되는 게 없어!"(8쪽)라고 말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를 "과도한 요구 신화"라며 일축한다.

'피로'와 '번아웃'의 원인을 시스템(세상)의 '과도한 요구'에서 찾는 일반적인 관점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무 유동성과 과도한 요구로 굴러가는 현실을 개인이 만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시스템 탓이 커 보인다. 체제보다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보수적으로 보일 만하다.

노조 파업을 경제적 손실 차원에서 규정하거나 개인이 '대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에 반감을 품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교육과정 완료-물질적 독립-자신만의 최초 주거지로 이사-결혼-첫 아이 출산"의 5단계를 거쳐야 '성인'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꼰대' 이미지마저 어른거른다.

그런데도 마지막 쪽을 읽을 때까지 책장을 쉽게 덮지 못했다. 왜일까. 아이에 대한 부모의 '투사(자기 자신이 납득하기 어려운 생각이나 감정 등을 인정하지 않고 남에게 돌림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와 '공생(부모와 아이의 심리가 완전히 혼합되어 부모가 아이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는 것)'을 중심으로 갈등을 회피하는 부모들의 양육 방식을 꼬집는 대목을 보자.

오직 아이들에 의해 부모들 자신의 신분이나 됨됨이 따위가 정해지는 것이다. 부모가 삶을 얼마나 잘 일궈나가느냐를 보여주는 척도가 바로 아이들이다. (중략) 투사 상태에서는 권력관계가 근본적으로 뒤집힌다. 즉 위계질서에서 부모가 아이의 하위에 있으면서 아이에게 의존하게 된다. 아이가 부모의 구애를 받는다. 그럼으로써 부모는 성공했고 사랑을 받는다는 기분을 가질 수 있다. (139쪽)

'권력관계'와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듯하는 뉘앙스가 엄격한 통제 위주의 양육(교육)을 강조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이 "권위적 교육을 지지하는 게 아니"(141쪽)라고 분명히 말한다.

대신 "아이가 안심하고 성장할 수 있는 범위가 뚜렷한 활동 공간이 주어진 교육"(142쪽), 저자의 다른 표현을 빌리면 "엄격함이 아니라 분명함이 필요"(307쪽)한 태도를 강조한다. '아니요'라고 말해야 할 때 '아니요'를 분명히 말하면 경계를 세워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나는 이 대목을 자녀와 학생의 '성장'을 바라는 '성숙한 어른'의 권위가 중요하다는 것으로 읽었다. 진정한 권위는 상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려와 평화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갈등을 회피하고 책임을 미루게 하는 방식으로는 더욱 힘들다.

미성숙한 직원이 꼼꼼히 청결하게 치우는 임무를 해결할 수 없다면 그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즉 상사는 직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시 한 번 해봐. 다시 해도 안 되면 내가 너와 같이 일한다. (중략) 직원이 임무를 하면서 한 단계씩 계속 발전하기를 바라는 소망은 사욕이 아니다. 직원에게는 세계가 넓어진다. 마침내 그는 성취하는 것,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 완수해내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게 된다. (307쪽)

"관리 감독의 광기"(320쪽) 사회에서 규정과 매뉴얼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책임감을 갖는 게 중요하지만 그것을 기르기 위한 '진짜' 경험을 하기가 어렵다. 모두가 경쟁과 불신과 과도한 요구의 늪 속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내세우는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신뢰와, "나는 정확히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직관이다. 저자는 성인이어야 신뢰할 수 있고, 신뢰할 때만 성인이라고 단언한다. 신뢰를 주는 것이 성인이 지닌 최고의 규율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저기 불신을 조장하는 사건과 사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신뢰 운운하는 목소리가 순진하게 들릴 수 있겠다. 그렇다고 세상을 한탄하고 다른 사람만 탓하고 있기에는 우리의 삶과 현실이 너무나도 엄혹하다.

자녀와 학생의 진정한 성장을 바라지 않을 부모나 교사가 있을까. 그러려면 그들 먼저 진정으로 '성숙한 어른'이 돼야 할 것이다. 중대한 결정을 회피하고, 남에게 책임을 미루며,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인지하는 못한 채 불안에 떨며 살아가는 '아이어른'과 그런 사람들의 무리가 넘쳐나는 사회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자신을 믿어야 타인도 믿을 수 있다"라는 말을 다시 곱씹어본다.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미하엘 빈터호프 지음, 송소민 옮김 / 추수밭 / 335쪽 / 1,5000원)
덧붙이는 글 정은균 시민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 - 그들은 왜 세상 모든 게 버거운 어른이 되었나

미하엘 빈터호프 지음, 송소민 옮김,
추수밭(청림출판), 2016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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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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