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이 밥벌어주냐고? 남은 50년 위한 플랜B"

[1인기업시대⑮] 디자인스튜디오·건담작업실 운영 김대영 대표

등록 2016.08.27 11:40수정 2016.08.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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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사라진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기술의 발달은 우리 모두를 일자리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오래 전 끝났고, 100세시대 누구나 2~3번의 일(業)을 해야 생존한다. 국가도 사회도 답해줄 수 없는 문제, 결국 개인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내 일은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다. 직장을 다니면서, 또는 홀로서기를 통해 '1인기업'을 운영해온 이들에게서 답을 찾고자 한다. '직장 다닌다고 직업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한 '1인기업가'들의 경험담을 통해 해법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편집자말]

마포구 동교동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1인기업가 김대영씨는 5년 전부터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을 함께 운영중이다. '건담작업실'은 전국에서 마니아들이 찾아올 정도로 키덜트족들의 커뮤니티로 떠올랐다. ⓒ 김대영


2008년 15년간의 직장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지만 그의 일터는 건설회사나 설계사무소가 아니었다.

1995년부터 컴퓨터 그래픽 회사 '블루라인'에서 TV광고, 게임,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아트디렉터로 일했고, 쿠폰 매거진 '코코펀' 디자인 실장으로 일하며 잔뼈가 굵은 아티스트이며, 디자인 스튜디오 '자작나무'와 건담 프라모델 숍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이하 건담작업실)' 운영자 김대영(48)씨 이야기다.

"건축은 상대를 이해해야 하는 종합예술입니다. 예를 들어 음악가로부터 집을 지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그의 삶 전체를 이해해야 상대가 만족할 만한 설계가 가능하죠. 건축을 공부하면서 그런 훈련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 속에 답이 있습니다. 건축을 공부할 때 가졌던 마음가짐은 그 동안 제가 해온 모든 일에 적용됐던 것 같습니다. "

'김대영 고양이' '김대영 건담' 독립 후 새 타이틀 생겨

특이한 점은 15년의 직장생활 동안 한 번도 이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1995년 입사한 첫 직장이 잠시 휴업을 하거나 다른 회사와 합작하거나 또는 인수되면서 이름이 바뀌었을 뿐 김씨 스스로 회사를 떠난 적이 없었다.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분야 특성상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하는 일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다. 매 프로젝트마다 실전을 통한 배움의 연속이었다. 2008년 퇴사 후 9년간 자신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동안 몇 가지 새로운 타이틀이 더 생겼다.

"포털에서 제 이름을 검색해보면 '김대영 고양이, 김대영 건담' 같은 연관 검색어가 떠오릅니다. 직장 다닐 때는 사진도 낙서도 프라모델도 그저 취미생활이었죠. 그러다 독립한 이후 고양이 사진작가, 캘리그래피 작가, 건담 마니아 같은 타이틀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고 지금은 제 직업을 하나의 단어로 규정할 수 없게 됐죠."

그를 일컫는 타이틀은 다양하지만 김씨는 자신이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도구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 혹은 나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고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배워야 한다. 하지만 기술을 이용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우선이라는 신념은 건축을 공부하며 그가 몸으로 익힌 습관이다.


"사람들이 뭔가를 시작할 때 당장 중요한 것이 기술이라 생각하고 그것부터 먼저 배우려 하죠. 그런데 기술을 먼저 배우고 나면 '이제 뭘 하지?' 이렇게 돼요. 순서가 거꾸로 된 거죠. 입시나 취업을 준비하는 10대 20대들도 당장 대학생 또는 직장인이 되기 위해 기술을 배우거나 시험점수를 올리려 애쓰는 경우가 많죠. 기술이든 공부든 그것으로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목적이 명확하면 방법은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어요. 기술이나 기교는 목적을 따라가는 거니까요."

본질은 '상대와 나를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

건담작업실에 전시된 건담 프라모델. ⓒ 김대영


9년차 1인기업가 김씨의 사업영역은 디자인 스튜디오와 '건담작업실' 운영 2가지다. 기업의 브랜드 로고나 카탈로그, 제품 디자인 패키지 제작 등 디자인 작업은 그가 20년간 해온 생업이자 수입의 원천이다. 이에 비해 '건담작업실'은 취미생활 또는 미래를 위한 투자의 성격이 짙다.

"2011년 디자인 스튜디오 근처 건프라(건담 프라모델) 매장을 인수했어요. 처음엔 저질러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점점 작업실을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죠. 한동안 '키덜트족'이 이슈로 뜨면서 인터뷰 기사가 몇 번 나가고 난 후로 유명세까지 더해졌죠. 지금은 디자인보다 건담에 쏟는 에너지 비중이 훨씬 커진 것 같아요. 5년 전엔 디자인 대 건담의 비중이 8:2 정도였다면 지금은 6:4 또는 5:5까지 된 것 같아요."

김씨의 '건담작업실'은 단순히 건프라 킷을 판매하는 매장이 아니다. '건프라 제작의 꽃'이라 불리는 도색작업은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 도색과정 강좌도 진행한다. 이 강좌는 지방의 건프라 마니아들이 휴가를 내고 와 며칠씩 머무르면서 집중 수업을 받을 정도로 인기다.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작업실은 늘 마니아들로 북적인다. 키덜트들의 커뮤니티가 된 셈이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를 사업의 본질로 생각하는 김씨의 습관은 건담작업실 운영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스스로도 건담 마니아인 김씨는 그들이 뭘 원하는지를 꾸준히 탐구하던 중 '건담투어' 여행상품을 기획, 2014년 인터파크와 함께 출시했다. 2박3일 일정으로 실제 크기의 건담이 있는 도쿄의 오다이바를 비롯 일본의 서브컬처 거점지역을 여행하는 이 상품은 연 2회 모객을 진행할 때마다 일찌감치 마감이 될 정도로 반응이 좋다.

지난 7월 '꿈꾸는 건담전'을 함께 준비한 스탭들과 함께. ⓒ 김대영


최근엔 또 다른 대형사고를 쳤다. 오로지 건담만을 주제로 한 대형 전시회 '꿈꾸는 건담전'을 개최한 것이다. 7월 22일부터 열흘간 200평 규모의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열린 이 전시에는 건담 프라모델을 20개의 테마존으로 전시한 것은 물론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 체험관 운영 등 2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홍대 근처만 해도 건담숍이 4개 정도 있고 규모도 저희보다 10배나 큰 가게들이 있습니다. 건담 킷만 팔아서는 경쟁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사업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죠. 하지만 건담전시회나 건담투어 기획은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콘텐츠입니다. 테마를 기획하고 작가들을 모으는 역량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앞으로 건담 콘텐츠를 하나의 문화로 발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것들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

디자인과 건담, 수입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아직은 디자인 작업으로 생긴 수입을 건담에 투자해야 하는 단계다. 수입은 직장 다니던 때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영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지만 한 번 인연이 된 고객과 계약이 오래 유지되는 편이며 그들이 새로운 고객을 소개해주는 경우도 있다. 달라진 점은 시간활용이 자유롭고 일에 대한 만족도가 크다는 점이다. 일 자체를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고 일을 하면 바로 '내 것'이 된다는 점에서 보람은 상상 이상이다.

"직장시절엔 디자인 작업을 10년을 했어도 '내 것'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모두 내 것이죠. 게다가 그 일들을 '건담작업실'과 병행할 수 있으니까 더욱 행복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6개월 일한 것으로 1년을 먹고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6개월을 1년처럼 살아야 되니까 시간을 쪼개 쓰게 되고 더 집중적으로 일하게 되더군요. 현재는 건담투어나 제주도 사진여행 등 연중 2개월 정도를 제 시간으로 쓰고 있는 것 같아요."

더 이상 디자인작업 못하게 되면 남은 50년은?

9년차 1인기업가로서 일과 수입 측면에서 안정적이라 하지만 김씨에게도 금전적인 부분은 늘 고민이다. 지금 돈을 잘 벌든 아니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또 해야 할 일은 많지만 몸 하나뿐이라는 점도 힘들다.

"정년퇴직 후 몇 억이 생긴다 해도 앞으로 살아야 날을 계산해 보면 전혀 대책이 안 된다는 다큐를 봤어요. 그래서 저는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50~60대가 되면 지금 하는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날이 올 텐데, 그 다음 삶은 어떻게 살 것인지 대안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죠. 그래서 저는 뭐든 이것저것 해봅니다. 캘리그래피, 고양이 사진, 건담, 책 출판 같은 일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

7월 22일부터 열흘간 200평 규모의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열린 '꿈꾸는 건담전'. 건담 프라모델을 20개의 테마존으로 전시한 것은 물론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 체험관 운영 등 2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 김대영


김씨는 지금 하는 모든 일들이 앞으로 남은 자신의 50년을 채울 준비를 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2014년 5인의 공저자와 함께 출판한 책 <마니아씨, 즐겁습니까?>로 작가라는 타이틀까지 가진 그는 연내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는 것이 목표다. 사진을 찍고 디자인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으면 내 책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출판사 등록은 이미 해둔 상태다.

"'이 분야에서 내가 최고다' 이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넓게 보고 이것저것 찾아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친구와 대화하다 깜짝 놀란 적이 있었어요. '늙으면 뭐 할 거냐'는 제 질문에 여행 다니며 살겠다더군요. '여행은 어떻게 다닐 건데' 물었더니 모른다는 거예요. 혼자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지금부터라도 혼자 다니는 연습을 해야 할 것 아니냐' 했더니 무서워서 못가겠다는 겁니다. 우리 세대가 집과 직장을 왔다갔다 하며 일만 해왔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즐길지를 모르는 거죠."

독립한 이후 김씨는 혼자 여행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일주일씩 하늘만 보고 있어도 '아, 좋다'는 감정을 조금 알게 됐다고 말한다. 혼자 여행 가서 무슨 재미가 있느냐는 친구들에게 시간이 생기면 꼭 혼자 여행해볼 것을 권한다. 미래를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연습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1인기업가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해 김씨는 거꾸로 되묻는다. 그 답이 '잘 살기 위해서, 돈 많이 벌기 위해서'라면 매우 안타깝다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또는 평생 내 회사니까 1인기업을 하겠다면 그 일이 소위 유망직종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목수든 사진가든 바리스타든 당장은 취미생활 같은 일이라도 거기에 기업가 마인드를 더하면 충분히 직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만들고 지탱시켜주는 구조를 만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혼자 하는 기업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을 충분히 누리며 자신만의 경험을 쌓아가야 합니다."

건담을 사랑하는 키덜트족의 커뮤니티 '건담작업실' 전경. ⓒ 김대영


#1인기업 #키덜트족 #고양이사진작가 #건담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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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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