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부실검증 덮으려고 '음주운전' 경찰총수 임명

임명장 수여식·공식발표 없는 취임식 강행은 경찰청 출범 25년 만에 처음

등록 2016.08.24 17:19수정 2016.08.2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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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성 신임 경찰청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사보강: 24일 오후 5시 50분]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신임 경찰청장에 이철성 후보자를 공식 임명했다. 이에 따라 이 후보자는 이날 오후 4시 취임식을 통해 '청장 대리직무'라는 꼬리표를 벗었다. 전임인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전날(23일) 이임식을 열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공식 임명'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임명장 수여식은커녕 청와대의 공식 발표조차 없었다. 다만, <연합뉴스>를 통해 "박 대통령이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안을 재가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강신명 전임 경찰청장이 2014년 8월 신임 장·차관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박 대통령에 의해 계급장을 달았던 점을 떠올리면 더욱 초라한 임명이었다. 경찰 조직이 1991년 8월 경찰청으로 개편된 이래 신임 청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지 못한 채 취임식을 먼저 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여당조차 의아했던 '부실 검증'

이는 이철성 신임 청장에 대한 청와대의 복잡한 속내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단, 이 신임 청장은 경감 시절이던 1993년 음주 교통사고를 내고 그 신분까지 일부러 숨겨 내부 징계를 피했다는 사실이 들통났다. 누구보다 준법을 준수해야 할 경찰의 새 총수로서 적절하지 못한 '과거'였다.  여당 의원조차 청문회 당시 의문을 표할 정도였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당시 청문회에서 "인사 검증 당시 이 문제에 대해 소명 요구가 있었나", "신분을 고의적으로 숨긴 것이냐"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야당의 자진사퇴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인사검증을 맡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책임론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이 신임 청장에 대한 내정을 강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신임 청장 문제는 '우병우 퇴진론'과도 맞닿게 됐다. 검찰이 우 수석에 대한 특별수사팀까지 꾸린 상황에서도 '우병우 지키기' 중인 청와대가 이 신임 청장에 대한 내정을 철회하는 것은 지금껏 취한 입장과 상반되는 결정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8월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진급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박 대통령도 일찌감치 이 신임 청장에 대한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인사청문회법 6조에 따르면, 국회가 경찰청장 내정자 등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송부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은 10일 이내 범위에서 기간을 정해 보고서 채택을 다시 요청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또 이 기간 내 보고서가 송부되지 않더라도 임명을 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23일 오전 이 신임청장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송부해달라는 요청 공문을 국회에 접수했다. 송부 기한마저 단 하루로 정했다. 즉, 국회가 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아도 24일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도 지난 23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법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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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세종청사간 을지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도 자리에 배석해 앉아 있다. ⓒ 연합뉴스


이철성 취임 일성 "일상 생활에서 법 지키는 게 공동체에 도움"

이철성 청장은 오후 4시에 열린 취임식에서 "일상 생활 속에서 법을 지키는 것이 자신과 공동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야겠다. 원칙이 상식이 되고, 신뢰가 넘치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힘을 쏟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23년 전의 음주 교통사고를 덮으려던 행적이 드러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어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새누리당은 이 신임 청장 임명 강행에 대해 "오늘 임명을 계기로 심기일전해서 민생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의 총수로서 역할을 다해주길 바란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이 신임 청장도 이날 취임식에서 "오래된 저의 허물로 많은 심려를 끼쳐 동료 여러분께 미안하다"며 "국민과 동료 여러분을 섬기는 자세로 일하면서 마음의 빚을 갚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당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특히 이번 임명 강행이 '우병우 지키기' 일환이라는데 방점을 찍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철성 임명은 부실 검증을 정당화하기 위한 대통령의 독선"이라고 규정했다. 이재정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이 후보자는) 음주운전 사고 전력만으로도 20년 전에 이미 경찰복을 벗어야 할 사람"이라며 "대통령이 우병우를 감싸려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인사 참사가 또 다른 참사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민주·국민의당 소속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위원들은 따로 성명서도 냈다. 이들은 "부실검증에 대한 책임을 물어 민정수석을 경질하지 않고 경찰청장 임명을 강행한 것에 대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며 박 대통령의 사과와 이 신임 청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국민의당 이용호 대변인은 "국민과 야당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청장을 임명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이는 우 수석의 잘못된 검증의 결과물로, 박근혜정부의 국정운영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의당 추혜선 대변인도 "청와대의 한심한 인사검증 시스템과 막무가내 독불장군식 임명이라는 두 개의 난국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태"라면서 "대한민국 치안의 최고책임자가 음주운전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경찰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내부징계를 회피하는 수준의 인물이라면 국민 누가 경찰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철성 #박근혜 #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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