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세계사 산책> '건국절' 주장, 심각한 문제"

2008년 출간한 책에서 "8.15, 해방보다 건국기념 의미 커" 서술해 논란

등록 2016.08.26 16:47수정 2016.08.2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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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71주년 광복절 축사를 통해 '건국 68주년'이라고 거듭해서 강조한 가운데, 이와 관련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광복회는 23일 내놓은 '건국절 논란에 대한 광복회의 입장'을 통해 "최근 또다시 국론분열의 원천이 되고, 끝없이 이어지는 정쟁거리는 물론 대한민국 국가 기강마저 뒤흔드는 '건국절 논란'이 계속되는 현실에 개탄과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1948년 건국절 제정은 과거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어 친일행적을 지우는 구실이 될 수 있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데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자랑스럽고, 긍정적인 역사관을 갖게 하는 순기능보다 기회주의와 사대주의 사상을 배우게 하는 역기능이 더 많음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고대사학회, 한국역사연구회 등 20개 역사학회와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등 원로 역사학자들은 지난 22일 '위기의 대한민국, 현 시국을 바라보는 역사학계의 입장'을 통해 "일제강점으로부터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난 2016년 오늘 대한민국은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그 밑바탕에는 역사의 시계바퀴를 한 세기 전으로 되돌리려는 퇴행적인 역사인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1948년이 대한민국 건국 원년'이라는 주장은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것인 동시에 헌법정신에도 위배된다"면서,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의 법통성과 선열들의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민족반역자인 친일파를 건국의 주역으로 탈바꿈 하려는 '역사세탁'이 바로 건국절 주장의 본질"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만화가인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이 지난 2008년 펴낸 <이원복의 세계사 산책>(김영사)에 언급된 '건국절' 내용이 회자되면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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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인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이 지난 2008년 출간한 '세계사 산책' 42장 독립기념일 만화 이미지 캡처 ⓒ 김영사


이원복 총장 '세계사 산책'..."8.15 해방보다는 건국절이 더 중요"


이원복 총장은 <세계사 산책> 42장 '독립기념일'에서 각국의 독립기념일을 예로 들며 그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먼저 "미국은 7월 4일을 미국 최대의 국경일로, 세계 최초의 시민국가 탄생을 축복하는 날"이라면서, "대부분 나라들의 독립기념일은 지긋지긋한 이민족의 오랜 지배를 벗어나 자유와 자주를 얻게 된 감격의 날"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 아일랜드 등 국가들과 스위스 등의 독립기념일을 언급한 후 "2차 대전 이후에 독립한 국가들은 대부분 독립기념일이 수백년간 식민열강에 치떨리는 착취와 억압을 당하다 벗어남을 기리는 진정한 독립기념일"이라고 말했다.

이원복 총장은 계속해서 "오스트리아는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지만 1955년 6월 15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했다"면서, "이날은 2차 대전에서 패한 오스트리아를 점령했던 미국 소련 영국이 물러간 날이다, 자랑스러운 역사에서 잠시나마 점령군의 지배를 받은 수치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이원복 총장은 이 같이 세계 각국의 독립기념일의 의미를 살펴 본 후 "우리 대한민국도 이와 비슷한 경우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린 8월 15일을 광복절로 기리고 있는데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수백 년간의 식민통치 해방을 축하하고 새로운 시대를 염원하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원복 총장은 "우리는 불과 36년간 식민통치를 겪고 60년이 넘게 독립기념일이란 의미의 광복절을 기리고 있다"면서, 책이 나오기 전까지의 시점인 '1945년부터 2007년까지를 식민지 콤플렉스 자각기간 62년째'라고 표현했다.

이원복 총장의 문제의 '건국절' 표현은 이 같은 내용에 이어져서 나온다. 이 총장은 "우리역사에 가장 치욕스러운 식민 통치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의도는 당연하다"면서도, "앞으로 언제까지 이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광복절'을 노래할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 총장은 계속해서 "앞으로는 8월 15일을 우리들의 나라 대한민국이 건국된 건국기념일로 기려야 할 것"이라면서 북한을 예로 들었다. 그는 "북한은 이미 1948년 9월 9일을 조선인민공화국 건국일이라 하여 최대 국경일로 삼고 8월 15일보다 큰 의미를 둔다"면서,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당연히 해방보다 건국 기념일의 의미가 훨씬 더 크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이 같이 건국절을 주장한 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을 제외하고"는 이라고 표현해 '건국절'의 의미를 부정하는 세력에게 색깔론까지 입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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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의 같은 책 64장 역사의 상처 이미지 캡처 ⓒ 김영사


이원복 총장의 건국절에 대한 인식은 같은 책 64장 '역사의 상처'에서 더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이 총장은 프랑스의 알제리 전쟁, 독일의 유대인 학살 등의 사례를 들면서 "역사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다"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어 "우리에겐 아무래도 일제 치하 36년간의 식민 지배 경험이 가장 큰 역사의 상처로 남아 있고 이 상처는 아직도 제대로 아물지 않았다"면서 "아니 아물 수 가 없었다"라고 표현했다.

이 총장은 상처가 아물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동안 정말 지겹게도 아픈 데를 후벼 파는 이들 때문이다"면서, '과거사 캐기', '친일분자 색출 응징', '대한민국 정체성 흔들기'등으로 그 원인을 돌렸다.

이 총장은 이 같이 지적한 후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면서 "건국 60년(2008년 기준)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 문턱에 우뚝 서 있다, 이제는 일본 콤플렉스를 벗어던질 때도 됐다, 미래를 바라보자 더 이상 역사의 상처를 건드리지 말자, 새 시대가 열렸다"라고 표현했다.

"건국절은 기념일 대상 아니다, 역사의 흐름 뒤바꾸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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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 연합뉴스


이원복 총장의 이 같은 건국절 인식에 우려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덕성여대 사학과 한상권 교수는 25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만화에 '건국'이라는 말을 썼는데 만화에서는 그 분이 '건국절'까지는 쓰지 않았다"라면서도 "건국이라는 말을 썼지만 그 당시에는 '건국절'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건국절은 기념의 대상은 아니다, 기념일은 해방과 광복 그날을 기리는 것이지 건국절은 아직까지 우리가 기리지 않았는데 만화로 그런 생각들을 표현하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분이 또 영향력이 큰 만화가이기 때문에 특히 더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이 같이 지적한 후 "건국절을 거론한 게 이명박 정부 하에서였다"면서, "2008년을 기준으로 '건국절'이 환갑을 맞이했다면서 이를 기리겠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광복회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그런 만화가 나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동국대 역사교육과 한철호 교수는 25일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1917년 신규식과 박용만 등 14명의 독립운동가들은 '대동단결선언'에서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는 당시 황제 순종이 3보(영토, 인민, 주권)를 포기했지만, 국민은 이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로소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된 날'이라고 선언하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논리에서 거족적인 3.1운동이 전개된 결과 1919년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성립되었다"면서, "황제의 나라 '제국'이 아니라 국민의 나라 '민국'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철호 교수는 계속해서 "북한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정하기 때문에 굳이 1948년을 '건국일'로 삼은 것"이라면서, "따라서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고 그 정통성을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이어받았다고 하는 것이 북한을 체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규정하는 정당한 근거가 되는 데, 오히려 우리가 그 역사를 거꾸로 평가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이는 1948년 정부가 처음 발행한 '관보'에도 '대한민국 30년', 즉 1919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30년이라고 기재된 사실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면서 "건국 운운은 일제강점기 우리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라고 강조했다.

한철호 교수는 "더군다나 일본에 대한 식민지 콤플렉스는 극복해야 하지만, 그 원인을 지금까지 진실하게 반성하지 않은 일본, 그리고 식민지시기 친일파 등의 행동을 외면하는 것은 역사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국절' 논란이 교육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이뿐이 아니었다.

경기도교육청 이재정 교육감은 24일 입장 발표를 통해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임을 천명하고 있음에도, 건국절 논란은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적 실체를 부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정 교육감은 이 같이 강조한 후 "따라서, 건국절 논란은 교육적으로 매우 부적절하다"면서, "경기도교육청은 건국절 논란에 대한 광복회의 입장을 지지하며 더 이상 부적절한 건국절 논란으로 교육 현장에 혼란을 주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편 덕성여대 홍보실은 이원복 총장의 건국절 관련 인식에 있어 지난 2008년 만화 출간 당시와 비교해 현재 입장을 묻는 질문에 26일 "저희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은 없다"고 밝혀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건국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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