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롯데맨의 허무한 죽음이 남긴것

유서에서 그룹 비자금 강하게 부인... '죽음으로 롯데 살렸나'

등록 2016.08.26 17:28수정 2016.08.2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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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2인자이자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인 이인원 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26일 오전 7시 10분께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한 산책로에서 60대 남성이 나무에 넥타이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운동 중이던 주민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롯데그룹 입구. ⓒ 연합뉴스


"무슨 말을 하겠나. 안타깝고, 허탈하고..."

롯데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회사를 위해 일생을 바치신 분이었는데..."라며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26일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롯데는 말그대로 침통 그 자체였다.

서울 소공동 호텔 롯데와 백화점 등은 평상시와 다를바 없어 보였지만, 건물 주변 직원들은 이 부회장의 부고 소식에 놀라는 표정이었다. 롯데쇼핑의 한 직원은 "출근길에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고 전했다. 그는 "그분과 직접 일해보진 않았지만 간부들 사이에선 그 분이 '롤 모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정책본부의 또 다른 간부사원은 "롯데 직원들 사이에선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며 "40년 넘게 한 회사에서 일했는데, 앞으로 그런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직원들의 동요가 심하다"고 말했다. 검찰 소환조사를 앞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날 오전 이 부회장의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신 회장은 이날 자신의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롯데그룹도 "평생을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일해오신 분으로 롯데의 기틀을 만드신 분"이라며 "고인이 되셨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이어 유족과 협의해 서울로 빈소를 옮기고, 장례절차에 들어갔다.

43년 롯데맨의 허무한 죽음... 충격에 빠진 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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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롯데그룹 2인자이자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인 이인원 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 ⓒ 연합뉴스


이 부회장은 말그대로 한국 롯데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1973년 호텔 롯데에 입사한 후 43년 동안 몸담았다. 신씨 오너 일가를 빼고, 일반 사원으로 시작해 전문 경영인으로 '그룹 부회장'까지 오른 사람은 이 부회장이 유일하다. 1987년에 그룹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긴 후, 1990년대 국내 유통업계에서 롯데쇼핑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후 2007년까지 롯데쇼핑에서 전무와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이 부회장은 신격호 회장의 최측근 인사로 알려져 있었다. 1997년 롯데쇼핑 대표를 맡은 후, 20여 년 동안 그룹에서 최고경영자를 맡아왔다. 그만큼 신 회장 등 오너일가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 역시 지난 2011년 '롯데와 신격호, 도전하는 열정에는 국경이 없다'라는 책에서, "신 회장이 나이가 아흔 살에 가까운데도, 청년시절의 열정과 무한한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신격호의 사람으로 알려진 이 부회장은 2007년부터 그룹 정책본부에서 일했다. 당시 본부장은 신동빈 현 회장이었고, 이 부회장은 부본부장(사장)이었다. 신동빈 본부장을 보좌하는 역할이었지만, 그룹 경영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빈 회장의 적극적인 기업인수합병 등 공격적인 미국식 경영 방식에 대해 이 부회장은 다소 보수적인 관점으로 사업 조언을 했던 것.

그는 왜 극단의 선택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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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이 검찰 출석 1시간여를 앞두고 경기도 양평 강변인근에서 숨진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가운데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앞에 걸려있는 검찰깃발이 바람이 흔들리고 있다. ⓒ 최윤석


신격호의 사람이었던 이 부회장은 작년 그룹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여러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신 총괄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고, 신동주와 신동빈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신동빈 회장 지지로 돌아섰고, 그룹 계열사 사장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이 부회장을 그룹 임원에서 해임하는 인사명령서를 내기도 했지만, 신동빈 체제가 굳어지면서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역시 검찰의 칼날은 비켜가지 못했다. 검찰은 롯데 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했다. 수십여년 동안 오너일가의 최측근 인사로 그룹 경영 전반에 관여해 온 이 부회장 입장에선 상당한 압박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검찰도 이 부회장에 대한 배임 혐의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왔고, 오는 26일 오전 9시 30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통보한 상태였다. 그에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 등의 혐의가 주어져 있었다. 물론 검찰의 칼 끝은 신동빈 회장 등 오너일가에 있지만 신씨 일가의 각종 비리 혐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조사는 절대적이었다.

그 역시 검찰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부회장은 이날 가족과 임직원 등에 남긴 유서에서 그룹 비자금 등 여러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당장 검찰의 롯데 수사는 차질을 빚게 됐다. 물론 이 부회장의 장례 등 절차가 끝난후 검찰 수사는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당초 롯데를 둘러싼 정관계 비자금 로비 의혹 등 대형 스캔들로 번질 수 있는 휘발성은 크게 떨어졌다. 그룹 주변에서 조심스레 '그의 죽음으로 롯데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롯데 #신동빈 회장 #이인원 부회장 #신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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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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