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 추미애가 국감장서 '쌍욕' 읊은 이유

20년 전, 진실을 밝히던 그때 그 마음으로 제1야당을 이끌어나가길

등록 2016.08.29 21:32수정 2016.09.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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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선 추미애, 더민주 당대표 당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신임 대표가 지난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8월 27일 추미애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로 당선되었다. 2년 임기의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과반이 넘는 54% 지지를 받아 제1야당의 당 대표가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전당대회 이전에 쓰고 싶었다. 추미애 후보가 당 대표로 선출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민주 당원도 아니고, 또한 당 대표로 출마한 다른 후보와의 이러저러한 인연도 있어 선거 전에 개인적 지지 입장을 밝히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추미애 당 대표에 대한 지지와 기대를 담아 지금으로부터 만 20년 전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바로 1996년에 있었던 이른바 '한총련 여대생 성추행 사건' 당시 추미애 국회의원이 보여준 '진정한 정치인으로서의 용기'가 그것이다.

국정감사장에서 쌍욕이 난무, 그때 그 일

1996년 10월 9일, 당시 국회 내무위원회 서울경찰청 국정감사가 개최된 서울경찰청 회의실.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현 새누리당 전신)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그들은 국정감사 질의에 나선 야당 소속 초선 국회의원의 발언에 반발하며 집단 퇴장했다. 도대체 무슨 발언 때문이었을까. 당시 국정감사 속기록중 일부를 인용한다.

"한 여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전경들이 우리 건물에 대고 소리쳤습니다. 야! 이 XX년들아. 니네 위안부 노릇 하려고 왔냐. 이런 식으로 맨날 소리 지르고 그랬습니다. 연행되는 날 돌 한 번 던진 애들한테 한 번씩 XX줬냐.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한 전경은 옆에 있는 애한테 배고프지 않냐. 나가면 밥 사주겠다. 밥을 사준다고 그런 다음에 여자애가 가만히 있었더니, 자기 혼자 그 애를 때리면서 웃더니 내가 밥 사줄 테니까 내 것도 XX줄래? 라고 이야기하니까 그 애가 울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애를 곤봉으로 때리고 그 옆에 있던 선배 같은 사람이 '제발 그러지 마세요' 라고 소리쳤는데, 그 소리친 애를 헬멧 같은 것으로 찍고, 그런 식으로 욕설이 계속 되었습니다.

또 한 여학생의 이야기입니다. 화장실 가는 것도 허용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생리대가 부족해서 생리가 새서 바지에 다 묻었는데도 그것을 보며 낄낄거리면서 웃었고 짐승을 구경하듯이 했습니다. 그 여학생은 지금 폭력에 대한 대책이 빨리 세워져야 된다고, 밤마다 악몽을 꾸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한 여학생의 이야기입니다. 허벅지와 어깨 등을 많이 맞았습니다. 머리채도 쥐어 뜯겼습니다. 심지어는 경찰이 자신에게 침도 뱉고 욕설도 많이 했는데, 흔히 듣는 썅년 따위의 욕이 아니라 'X같은 년들'이라고 하면서 여자의 신체를 드러내는 욕설을 많이 퍼부었습니다.

또 다른 여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전경이 계속해서 이렇게 욕을 했습니다. 너희는 북한에 가서 김정일 기쁨조나 하거라. 이 XX년들아. 그년들 XX하게 생겼다. 그리고 어떤 형사는 가까이 다가와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 형사 오늘 밤 수청 들게 한 명 골라보지.'

한 학생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전쟁터에서의 포로만도 못한 대우를 받았다고 말입니다. 전경들은 자기들끼리도 삼청교육대와 다름없다고 낄낄대면서 좋아했습니다. 사람을 사람처럼 다루지 않고 개 다루듯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포로를 잡은 것 같은 취급을 했습니다.

여학우들은 언어폭력을 당했습니다. 수시로 '이 XX년아, 이 창녀만도 못한 년아, 너 몇 놈하고 잤니.' 이렇게 말했고, 남학우들에 대해서는 '너는 몇 년하고 해 봤느냐?'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유치장에 가서도 '너희들은 개만도 못한 애들이다.' 이렇게 수시로 언어폭력을 휘둘렀습니다. 한 여학생은 한동안 잡히는 꿈에, 쫓기고 맞는 꿈을 연속해서 꾸는 바람에 잠도 못 잔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읽기에도 끔찍하고, 듣기에도 끔찍한 이러한 말들이 왜 국정 감사장에서 읽히게 된 것일까? 여기까지 읽은 이 글의 독자 역시 불편하고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 국정감사장에서 이 발언을 한 사람, 당시 초선의 새정치국민의회 소속 추미애 국회의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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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경찰의 한총련 학생들 성추행에 대해 추궁하고 있는 추미애 당시 국민회의 의원 ⓒ MBC 뉴스


사건의 시작은 바로 1996년에 있었던 한국대학총학생연합 약칭 '한총련 연세대 사태' 과정에서 일어난 이른바 '여대생 성추행 사건'에 대한 폭로였다. 그리고 이를 국정감사에서 거침없이 폭로하는 추미애 의원의 발언에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소속 내무위원회 위원들이 집단 반발한 것이다.

이들은 "더 이상 앉아 들을 수가 없다. 국회의원으로서 부끄러운 줄 알라"며 추미애 의원에게 일갈하며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이날 추미애 의원이 공개한 그 날의 진실은 실상 연세대에서 벌어진 사실보다 훨씬 더 순화된 내용이었다. 그만큼 당시 연세대에선 언급할 수 없는 수준의 성적 추행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96년 8월, 연세대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만 20년 전인 그때로 돌아가 본다.

1996년 용공집단으로 내몰린 한총련

96년 8월 12일. 서울 연세대에서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아래 한총련) 주최로 통일 관련 집회가 있었다. 해마다 8월이면 개최된 대학생들의 집회였다. 그러나 이때 정부의 대응은 달랐다. 집회 참석을 차단하는 수준이 아니라 행사 자체를 원천 봉쇄했고 이미 진입한 학생은 빠져나가지 못하게 차단했다. 결국 경찰의 강경 진압에 밀린 학생들은 연세대 내 종합관 등으로 피신하게 된다.

이후 '연세대 사태'로 통칭되는 이날의 피신은 이후 9일간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 이념 공세 속에서 신문과 방송은 연일 한총련의 이적성을 언급하며 비난을 더해갔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이 지켜줘야할 국민이 아니라 전부 박멸시켜야 할 '김일성 추종자'로 덧칠되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매년 연례적으로 개최해온 통일 행사를 마치고 자진 귀가하겠다며 몇 차례나 경찰에 통보했다. 하지만 한총련의 자진 해산 표명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정부는 이번 기회에 학생 운동을 궤멸시키겠다는 의지를 갖고 경찰을 동원했다. 헬기에서는 엄청난 양의 최루액이 살포되었고 연세대 일대는 경찰 병력에 의해 누구도 탈출할 수 없는 군사 작전이 펼쳐졌다.

특히 당시 언론은 연세대에 고립된 학생들을 일본의 과격 집단인 '적군파'와 빗대어 폭력 집단으로 매도했다. 왜 그랬을까. 진실은 이랬다. 당시 연세대 점거 사태는 절대 학생들의 의도가 아니었다. 이 사태를 진짜 키운 쪽은 당시 집권자였던 김영삼 정부였다.

김영삼 정부는 8월 이전부터 여러 차례 학생운동권에게 통일 행사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미숙한 학생들은 이 경고를 쉽게 무시했다. 그런 상황에서 파국을 맞이하는 한총련 사태를 해결하고자 김영삼 정부의 고위 관계자를 재야인사가 찾아가 중재를 촉구했으나 당시 청와대는 이러한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 "이번에 끝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만 들었을 뿐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강경한 정부가 뒤에 버티니 경찰의 태도는 거침이 없었다. 연세대를 포위한 9일간 경찰은 학생들에게 식량도, 의약품도, 심지어 여성용 위생용품조차 반입시키지 않았다. 여성단체와 인권단체가 "최소한의 생필품만큼은 반입시켜야 하지 않냐"며 항의했으나 경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피신한 건물에 경찰은 전기와 물까지 끊었다. 소식을 듣고 아이를 찾으러 온 부모조차 경찰은 저지선 밖으로 밀어버렸다. 그러면서 헬기를 이용하여 연일 최루액을 쏟아부었다. 피부에 닿으면 온 몸에 수포가 발생하는 최루액을 학생들은 매일 샤워하듯 맞아야 했다. 하지만 단수로 인해 씻을 수도 없었으니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한 일은 김영삼 정부와 경찰의 태도였다. 당장 진압할 수 있는 상황에서 경찰은 학생들만 고립시킬 뿐 9일간 진압 작전에 나서지 않았다. 그저 누구도 그곳에서 나올 수도, 또 들어갈 수도 없는 상태만 만들어 놓은 채 시간만 끌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학생들을 고립시킨 상태에서 그들은 언론을 통해 학생들을 '대한민국 체제의 적'으로 매도해 나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학생들은 박멸해 버려야 할 악의 대상이 되어 갔다. 그것은 공작이었지 치안이 아니었다.

폭도로 내몰린 학생들의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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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한총련 학생들을 연행하는 상황 ⓒ MBC


한편 의도치 않게 연세대에 갇힌 당시 학생들의 처지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경찰에 의해 쫓겨 들어갔기에 당연히 먹을 음식도 없었다. 당시 학생의 증언에 의하면 한 학생의 가방에서 초코파이 하나가 나왔다고 한다. 그것을 모두 9명이 나눠 먹었다고 했다. 그것이 갇혀있던 9일간 이들 학생이 먹은 음식의 전부였다고 한다.

특히 경찰과 충돌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학생들의 사정은 더욱 급박했다. 상처가 곪아 갔지만 경찰은 약 제공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허벅지가 심하게 찢겨진 어느 남학생의 경우에는 벌어진 상처 부위를 호치키스로 찍어 붙인 일도 있었다고 한다. 전쟁터에서도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진압 대신 이해할 수 없는 행위만 더해갔다. 헬기를 동원하여 연세대 종합관에 삐라를 뿌리기도 했다. 그냥 방송차로 말해도 얼마든지 들릴 수 있는 거리였는데, 경찰은 마치 무장공비 소탕작전처럼 삐라를 뿌리고 선무방송을 했다. 왜 그랬을까. 방송에 보여줄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게 아니고서는 답이 안 나오는 '쇼'였다. 실제로 이러한 장면은 매일 9시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했다. 연세대 사태가 끝난 후에도 방송은 이 장면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방송하기도 했다.

이는 실제로 엄청난 효과를 얻었다. 국민들의 눈에는 연세대에 갇힌 학생이 아니라 '연세대를 점거한 채 저항하는 폭도'로 보였다. 더 이상 관용할 수 없다며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친북 용공 집단'으로 매도된 학생들 앞에 작전이 개시된 것은 1996년 8월 20일 새벽 5시 30분경이었다.

공포와 굶주림 속에 9일째를 맞이하던 그날 아침, 경찰은 대규모 진압 병력을 연세대 내 건물로 투입한다. 그리고 이후 경찰은 그곳에 몰아 넣었던 학생 5899명을 모두 체포한다. 이른바 '한총련 연세대 사태'가 막을 내린 것이다. 그 후 검찰은 연행한 학생 중 3735명을 사법처리했다. 이것이 바로 1996년 8월에 있었던 한총련 사태의 간략한 전말이다.

하지만 끝은 끝이 아니었다. 더 잔혹한 진실이 드러난 것은 진압 작전이 끝나고 이틀이 지나가던 8월 22일이었다. 당시 내가 속한 인권단체에 한 여학생의 전화가 왔다. 그리고 그에게 듣게 된 제보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공권력 범죄의 시작이었다.

'추악한 범죄', 연행 과정에서의 공권력 성추행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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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담기도 힘든 말이 연행 과정과 경찰서에서 쏟아졌다. ⓒ pixabay


제보의 요지는 이랬다. 8월 20일 연세대 내에 진입한 경찰이 학생들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없는 성적 추행과 폭력 행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개별적인 범죄가 아니라 조직적인 행위였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는 점이었다.

이에 당시 인권단체와 여성단체는 논의 끝에 사실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제보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각 대학 총여학생회를 중심으로 공문을 보내 이러한 피해 사실을 진술할 여학생을 찾았으나 모두가 꺼려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렵게 몇 사람을 만났지만 그들 역시 쉽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중 잊을 수 없는 몇 장면이 있다. 면담이 끝날 때까지 그저 초점 없이 우리를 바라보거나 또는 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학생도 있었다. 분명히 뭔가가 있는데 증언을 듣기까지는 어려웠다. 그런 과정을 통해 조금씩 입을 열게 된 피해자들의 증언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했다.

예상처럼 경찰의 1차 성추행 범죄가 벌어진 곳은 연세대에서 연행 작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진압 작전에 동원된 전·의경에 의한 범죄였다. 이들은 건물에서 여대생들을 연행하며 마치 기차놀이를 하듯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몸을 숙여 이동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여학생이 몸을 숙이면 그 뒤에서 여학생의 가슴과 엉덩이를 뒤에서 만졌다고 한다. 이에 여학생이 놀라 소리 지르며 몸을 일으키면  그 순간 경찰은 곤봉으로 여학생의 머리나 등, 옆구리 등을 사정없이 내려쳤다는 것. 이 같은 일들이 연행 과정 전반에서 벌어졌다는 것이 당시 피해 여대생들의 주장이었다.

1차 성추행 범죄가 전, 의경에 의해 벌어졌다면 그다음 가해자는 직업 경찰관이었다고 한다. 연세대에서 연행된 학생들이 이후 서울 시내 25개 경찰서로 분산되자 조사 대기중인 여대생을 상대로 이들 경찰관들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 추행을 했다는 것이다. 한 여학생의 증언이다.

"씨팔년 등등은 욕도 아니었어요. 난생 처음 듣는 욕을 하는 경찰을 보면서 느낀 것은 내가 왜 저런 욕을 들어야 하나. 차마 제 입으로 발설하기 어려운 성적인 욕설을 그 경찰들이 하는 것을 보며 느낀 것은 비애였습니다. 그들은 여학생들이 사수대 남학생들의 위안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끔찍했습니다."

또 다른 여학생의 증언은 더욱 끔찍했다.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꼭 데모질이야. 아무도 안 놀아 주니까 꼭 데모를 해요. 야. 맞지? 남자애들한테 퇴짜를 맞으니까. 야. ××(여자 성기 표현)는 어떻게 씻었냐? 어휴, 드러운 년들. 열흘 동안 닦지도 않았지? 암컷 내 난다. 야, 얼마나 대줬냐? 사수대 수고했다고 그 짓 해줬지? ×같은 년들."

언론이 외면한 진실, 추미애 의원이 아니었다면

피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마친 후 그해 9월 13일 이를 기자회견 형태로 폭로했다. 하지만 당시 한겨레신문 등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언론은 이 사실을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언론이 침묵할 줄은 몰랐다.

9월 19일 한국여성단체연합 차원에서 국무총리와 내무부 장관 등에게 '공권력에 의한 여학생 성추행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관한 건의문'도 발송했지만 이 역시 반응이 없었다. 한총련 매도 분위기 속에서 이런 엄청난 인권 범죄가 그냥 묻힐 판이었다.

비참했다. 권력의 눈치를 보는 언론 때문에 진실이 이대로 끝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한 여학생의 말이 떠올렸다. 처음 우리를 만나 피해 사실을 말해 달라고 할 때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하던 그 여학생의 첫 마디.

"제가 이야기하면 정말 그들이 처벌받을 수 있나요?"

나는 그 여학생에게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며 약속했다. 그랬다. 나는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 호기심으로 한총련 집회에 참여했다가 당한 그 여학생의 억울함에 대해 그 진실조차 말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무슨 인권 운동을 하겠나.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이 진실을 묻어 버릴 수 없다고 결심했다. 대한민국 거대 언론이 외면한 이 진실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심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좋은 제안을 내놨다. 이제 10월이라 국정감사가 시작되니 이 문제를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다뤄줄 국회의원을 찾아보자는 제안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는 가운데 가장 좋은 생각이었다. 문제는 이 문제를 다뤄줄 국회의원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한총련 사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더구나 이 문제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온갖 불편한 단어를 인용해야 하는데 과연 이런 배짱과 소신이 있는 정치인이 누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국회의원은 바로 당시 초선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의 추미애 의원이었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추미애 의원은 그야말로 여포가 적진을 휩쓸 듯 두려움 없이 진실을 말했다. 그러자 난리가 난 것은 이 추악한 진실 앞에 당황한 경찰과 이를 옹호해야 할 신한국당 소속 여당 국회의원이었다.

그들은 추 의원의 질의가 계속되자 위원장에게 질의를 당장 멈추게 하라며 난리를 쳤다. 하지만 법으로 보장된 국회의원의 질의 시간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더 이상 듣고 앉아 있을 수가 없다"며 집단 퇴장을 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으로서 품위 좀 지키라"며 추미애 의원에게 윽박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추미애 의원은 당당했다. "듣기 싫으시면 나가세요"라고 대꾸한 후 추 의원은 끝까지 읽었다. 나는 그들이 왜 질의 내용에 대한 사실 여부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질의하는 단어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 것인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지켜야할 품위의 기준이 무엇인지 나는 정말 묻고 싶다.

추미애 제1야당 대표, 그때 그 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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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 참배하는 추미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 유성호


그때의 일이 어느덧 만 20년 전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날 추미애 의원의 국정감사 폭로는 그야말로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다. 언론 역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냥 묻힐 뻔한 이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준 정치인, 바로 당시 추미애 의원이 아니었다면, 그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때 그 당당한 초선의 국회의원은 이제 제1야당의 당 대표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20년 전 그때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억울한 이들의 진실을 대변해 준 그 모습처럼 진짜 야당, 선명한 야당으로서 추미애 신임 당 대표가 큰 걸음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그것이다.

특히 추 대표가 당 대표로 당선된 8월 27일은 그가 처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입 제안을 받아 입당원서를 쓴 지 꼭 21년이 되는 날이라고 한다. 우연한 일이지만 정치 시작 21년이 되는 날,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당 대표로서 국민이 열망하는 정권 교체의 새 역사를 쓸 수 있도록 응원하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지자들이 요구하는 현안의 과감한 해결이다. 지금 광화문 광장에는 '세월호 특별법 연장 개정'을 요구하며 사생결단의 단식에 나선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있다. 그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한 명밖에 없다. 바로 추미애 당 대표다.

또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비롯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이 실종되어 가는 대한민국에서 추미애 당 대표에게 거는 국민의 기대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 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바라는 지지자를 믿고 당당하게 나아간다면, 그것이 54%의 과반 지지를 보내준 지지자에게 추미애 신임 당 대표가 보답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이다. 20년 전 그때, 모두가 외면했던 진실을 폭로한 결기를 보여줬던 추미애 신임 당 대표, 나는 그가 잘해 나갈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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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stargazer@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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