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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국가대표팀 사령탑, 진정한 후계자는 없나

[프로야구] 김인식 '인식불패'의 명성 흠 가지 않게 장기 계획이 필요

16.09.06 14:50최종업데이트16.09.0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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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으로 선임된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의 모습. ⓒ 연합뉴스


이번에도 한국야구는 백전노장의 경험을 선택했다.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이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5일 김인식 감독을 제 4회 WBC 사령탑으로 선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인식 감독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국가대표 사령탑만 이번이 5번째다. 특히 WBC에서는 1,2회 대회에 이어 벌써 3번째 지휘봉을 잡게 됐다.

김 감독은 프로무대에서도 통산 980승, 한국시리즈 2회 우승 등 화려한 업적을 남겼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국민 감독'이라는 위상을 안겨준 것은 국가대표 팀에서의 독보적인 업적이었다. 김 감독은 코치로 참가했던 시드니올림픽 동메달을 비롯하여, 감독으로서는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 WBC 초대 대회 4강,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 등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대회마다 꾸준한 성적을 거두며 '인식불패'라는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 열린 프리미어 12 초대 대회에서는 칠순의 노구를 이끌고 역대 최약체 전력이라는 우려를 극복하고 보란 듯이 우승을 안기며 역시 김인식이라는 찬사를 자아냈다.

국가 없인 야구도 없다

김인식 감독은 '국가대표의 자세와 책임감'을 거론할 때 상징적인 인물로도 자주 거론된다. 김인식 감독은 한화 이글스 사령탑 시절이던 2009년 2회 WBC를 앞두고 동료 감독들이 모두 기피하던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어렵게 수락하여 화제를 모았다.

전임감독제가 없었던 야구대표팀의 사정상 전시즌 KBO 상위권 팀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겸임하는 구조였는데, 김인식 감독의 한화는 전 시즌(2008년) 5위에 그쳤고 김감독 본인도 2005년 초 찾아온 뇌경색 투병 후유증으로 건강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이라 처음부터 후보군에 들어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당시 1.2순위로 베이징올림픽 우승을 이끌었던 김경문 두산(현 NC) 감독과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팀인 김성근 SK(현 한화) 감독이 이런저런 이유로 사령탑을 회피하면서, 야구계는 김인식 감독에게 바통을 넘겼다.

어찌 보면 남들이 싫다고 기피하는 자리를 강제로 떠맡은 꼴이 되어 태극마크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자칫 노감독의 처지도 우습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인식 감독은 오로지 국가대표에 대한 의무감으로 어려운 자리를 결국 수락했다. 김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는 명언을 남기며 자기 보신에만 연연하는 야구인들의 이기주의에 쓴 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대표 팀은 그해 WBC 준우승이라는 눈부신 성적을 올렸지만 정작 김 감독은 중요한 비시즌동안 자신의 팀인 한화를 돌볼 시간이 없었고, 그해 창단 첫 꼴찌로 추락하는 시련을 겪었다. 그 해를 끝으로 한화와의 계약이 만료되던 김 감독은 결국 재계약에 실패하며 팀을 떠나야했다. 한화에서의 고별전을 치르며 눈물을 보였던 김 감독의 마지막 모습은 많은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화는 이후 만년 꼴찌를 전전하며 한동안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김인식 감독의 WBC 희생과 맞바꾼 '나비효과'였다. 당시 김인식 감독에게 WBC 사령탑을 떠넘겼던 김성근 감독은 수년의 세월이 흘러 현재 한화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인연이다.

김인식 감독은 이후 프로 사령탑으로는 더 이상 복귀하지 못했지만 KBO 기술위원장으로 재임하며 현장에서 한국야구의 발전에 힘을 보태왔다. 지난해 '프리미어12' 우승 당시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조심스럽게 헹가래를 받는 모습은, 6년 전 WBC 준우승의 아쉬움과 한화를 쓸쓸히 떠나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는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특유의 리더십

프리미어 12 우승 이후 김 감독은 대표팀에도 전임감독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한 KBO는 결국 이번에도 그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김인식 감독은 여러모로 국가대표 사령탑으로서 최상의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다. 풍부한 경력과 중후한 인품에서 나오는 인화의 리더십은, 노장에서 유망주, 슈퍼스타에서 조연급 선수들까지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을 갖추고 있다. 역대 국가 대표팀에서 선동열, 이순철, 김성한, 양상문 등 KBO의 전설같은 코치들을 거느릴 수 있는 것도 김인식 감독이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매년 선수차출과 코칭스태프 구성 문제 등을 놓고 어려움을 겪기 일쑤인 대표 팀에서 김인식 감독의 명성과 권위가 주는 후광이 크만큼 크다.

또한 김 감독은 단기전의 천재로 불릴 만큼 토너먼트와 단판승부에 대한 남다른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2009년 WBC와 프리미어12에서 김인식 감독이 이끌었던 한국은 전력의 열세를 노련한 투수운용과 변화무쌍한 작전 구사로 만회하며 상대를 오히려 농락했다.

프로무대에서의 이미지만 보고 김 감독의 야구스타일을 '믿음의 야구'나 '빅볼'로만 오해하기 쉽지만, 그는 단기전이나 국가대항전에서는 적극적으로 경기에 개입하는 스몰볼이다. 투수들을 짧게 끊어 쓰는 벌떼야구에도 구사한다. 그가 고정된 스타일에만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여러 모로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김 감독의 역량과 경험은 의심할 나위가 없지만 한편으로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그것은 김인식 감독 개인에 대한 걱정이라기보다는, 아직도 김인식의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야구에 대한 우려다.

김감독의 나이와 건강에 대한 우려는 이미 10년 전부터 계속됐다. 김인식 감독도 어느덧 칠순에 접어들었다. 야구계 원로로서 이제는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벗어나 편안하게 노후를 즐겨야할 시점임에도 정작 KBO는 아직 마땅한 차기 감독 후보도, 전임감독제 도입도 이뤄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에 머물러 있다. 정말 김 감독의 대체할 인재가 없었는지, 아니면 고질적인 야구계의 국가대표 기피 풍조 때문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세대 교체의 절실함

김 감독은 2009년 이후 프로무대에서 현장 공백기가 길었다. 기술위원장을 역임하며 현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고 하지만, 항상 선수들을 가까이서 파악하고 승부의 감이 살아있는 현직 감독 때와는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난 프리미어12 당시에도 김 감독은 투수교체 나 작전구사에 대한 감각은 녹슬지 않았지만, 젊은 선수들의 장단점에 대한 파악이 늦어서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지난 일본과의 준결승전의 경우,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지만 하마터면 완패로 끝날 수도 있었던 경기에서 운이 따라준 면도 컸다. 자칫 이번 WBC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가 나올 경우, 김인식 감독이 평생에 걸쳐 쌓아온 명성에 흠집이 될 수도 있다.

WBC에서는 세대교체가 더욱 중요한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그나마 노장들이 많았던 지난해와 달리, 김인식 감독이 프로 감독 시절에 직접 접해보지 못한 젊은 선수들의 비중이 더욱 커질 것이다. 차세대 우완 에이스의 부재 등 산적한 과제도 많다. 어쩌면 정말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김 감독의 도전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주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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