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박지성 맨유 시절 때도 '개고기 타령'을 했다

[식탁이 낯설어질 때 1-⑤] 영국은 제국주의적 간섭 자제하고, 한국은 육식 문화 돌아봐야

등록 2016.09.17 17:01수정 2016.09.1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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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과 개고기송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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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FC 홈 경기장인 올드 트래포드 전경. ⓒ freeimage


한창 박지성 전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에서 뛰었을 때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를 즐겨봤던 축구 팬들이라면 '개고기송'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 바로 이 노래다.

"박, 박, 네가 어디에 있든 너희 나라에선 개고기를 먹겠지! 하지만 네가 리버풀에 뛰면, 더 끔찍할 수도 있어, 임대 주택에서 쥐를 먹을 테니까!(Park, Park, wherever you may be, you eat dogs in your home country! But it could be worse, you could be a scouse, eating rats in your council house!)"(*scouse: 영국 리버풀 지역(민)을 이르는 말)



영어 귀가 조금 밝은 한국인들은 이것이 응원가인지 조롱가인지 혼란스러웠는지 당시에 잠시 논란이 있었다. 필자도 영국 현지 팬들이 응원가라고 만든 이 곡을 듣고 조금 놀랐었다. 한국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분명 한국에는 소수일지라도 개고기 식습관이 남아있다. 영국인들 나름의 직관으로는 비상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상식이 맞든 틀리든 한국의 다양한 측면 중 개고기 문화만 콕 집어 부각시키며 조롱의 맥락 속에서 드러내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아주 간편히 한국하면 개고기의 이미지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건 평소에 그런 이미지가 '콕' 박혀 있지 않는 이상 힘들다. 제아무리 세계적 축구 스타라도 '개고기 먹는 한국인'의 굴레를 못 벗어난다는 것도 섬뜩하다.


개고기송이 한국인보다 영국의 지역, 계층 편견을 더 드러냈으니 인종차별이 아니라는 주장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근본적으로 조롱의 색채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또한 지역, 계층에 대한 편견도 엄연히 나쁜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 현지 맨유 팬들의 커뮤니티인 레드 카페에도 개고기송이 인종차별적일 수 있으니 응원가를 바꿔보자는 글도 올라왔었다(다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묻혔지만). 그런데 영국 축구 팬들은 서로를 까내리는 걸 즐기는 버릇이 있으니 이걸 확대 해석하기에는 무리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하지만 상황이 좀 달라졌다.

영국의 "야만" "압력" 단어 선택 위험하다.. 제국주의인가?

영국인 전체는 아니지만 약 10만 명의 영국인이 한국의 개고기 식생활을 야만으로 본다. BBC에 따르면 지난 12일(현지 시각) 영국에서 '한국이 야만적인 개고기 유통을 금지하도록 압박하라'는 청원이 10만 명 넘는 서명을 얻어 영국 의회에 제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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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에 올라온 개고기 청원 관련 기사. ⓒ BBC


10만 명은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는 수이지만 결정적인 건 영국 '정부'가 청원 심의회에서 "동물을 사랑하는 나라인 영국의 평판에 어울리게 한국이 개고기 유통을 바꾸게끔 압력을 가하겠다"며 수용 의사를 밝혔다는 점이다. 물론 영국이 취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는 없다. 이때처럼 한국 정부에 자신들의 희망 사항을 전하는 데 그칠 것이다.

하지만 '야만' '압력'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쓰였다? 이건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개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영국인들의 상식에 즉시 동의하지는 않지만 존중한다. 또한 한국 일각에 잔존하는 잔혹한 개고기 도살 방식은 옳지 않다고 믿는다.

하지만 도덕이란 직관과 믿음만으로 확정되지 않는다. 도덕에 관해서는 '내가 틀릴 수 있다'라는 생각을 잠정적인 진리로 받아들인 채 토론해야 한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는 서로 다른 음식 문화가 존재한다.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보편적인 도덕의 잣대도 찾을 수 없다는 식의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도 안 되지만, 자신들의 문화를 전 인류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부터 봐야 한다는 식의 태도 역시 차별적이다.

영국은 이미 그런 오만이 초래한 결과를 반성할 시간이 충분했다. 근대 제국주의 시대에 서유럽인들은 유색 인종을 동등한 인간 취급하지 않았다. 자신들만 이성적인(합리적인) 인간이라 생각해 유색 인종을 동물보다 나은 정도의 존재(계몽이 필요한 야만인들)로 간주했다. 이런 사상은 침략을 정당화했고 영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이었다.

지능이나 합리성 개념은 임의적이다. 오늘날 심리학은 이 개념을 정의하는데 여전히 의견 일치를 못 보고, 인류학은 문화에 대한 관점만 바꾸면 유색 인종이 더 뛰어날 때도 있다고 보고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던 선조들을 둔 후손들이 인간과 동물의 공통점을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고 이중잣대라 볼 수는 없지만, 단어 선택에는 더 주의가 필요하다.

영국은 제국주의를 추억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만한 언동은 피해야 한다.

한국도 콧방귀만 뀔 문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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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강아지 공장의 불편한 진실'을 다룬 <동물농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았다 ⓒ SBS


하지만 인터넷의 일부 한국인들도 영국인들이 제기한 논점을 아예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 정도로 취급한다. 이런 사람들의 직관과 믿음으로는 어떤 동물을 먹을지는 각 문화권마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도덕은 직관과 믿음만으로 확정되지 않는다. 도덕에 관해서는 '내가 틀릴 수 있다'라는 생각을 잠정적인 진리로 받아들인 채 토론해야 한다.

영국인들이 범한 실수를 한국인도 똑같이 범해서는 안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영국도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책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 개고기 식습관에 대한 영국의 문제 제기도 간단히 반박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식의 '피장파장의 오류' '논점 일탈의 오류'들은 한국인들의 평균적인 논리 수준만 떨어뜨릴 뿐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해묵은 개고기 논란과 엮여버릴 것을 자초한다.

개는 분명 사람에게 친숙한 동물에 가깝지만 그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개도 어쨌든 동물이다. 두 나라는 차라리 육식 문화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공유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윤리적 채식주의(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믿는 신념 체계)는 결코 손쉽게 물리칠 수 없다. 채식주의의 역사 역시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대에는 영국 경험론 철학(특히 공리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오늘날 동물 신경학 등의 과학적 성과들에 힘입어 탄탄한 논리를 구축했다.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떠올리는 반대 근거들(육식은 약육강식의 섭리니, 인간과 동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느니 등등)은 윤리적 채식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이미 쉽게 물리칠 수 있는 것들로 보일지도 모른다.

단지 그들의 목소리는 아직 현실적인 영향력이 미미할 뿐. 윤리적 채식주의에는 동물해방론, 동물권리론, 동물복지론 등 다양한 입장이 공존한다. 이중 서구 사회에서 1970년대 이후 채식주의를 운동의 수준까지 끌어올린 전환점이 됐고 많은 영향력을 끼친 것은 동물해방운동이다. 피터 싱어 같은 동물해방론자는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과 행복을 경험하는 감응력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도덕적 지위를 인정하고 육식을 금하자고 주장한다.

반면에 국내 철학자들 중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칸트 윤리학자들은 인간은 어떤 일이 고통스러워도 단지 '중요하기 때문에' 감수하기도 하는데, 이는 인간이 단순한 고통 이상의 존재이며 인간의 삶과 도덕도 그런 총체적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증거라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이것도 일리가 있는 입장이다.

"고통을 느낀다 해도 느낌 자체가 아니라 그들 각자가 어떤 고통을 어떻게 느끼냐가 더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어야 한다. 한 존재가 어떤 방식이든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 존재가 인간 혹은 동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 존재가 인간 혹은 동물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적합한 방식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맹주만 <동물의 고통과 좋은 삶>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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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 체계 현장. ⓒ pixabay


그러나 이런 입장을 가진 철학자들도 대체로 인간의 사소한 이익 때문에 동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기지 말라는 동물해방론의 상식이 고려할 가치가 있다는 현실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한 존재의 주관적인 고통이 독립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잣대까지 될 수는 없겠지만 아주 중요하게 고려가 되어야 할 맥락들이 분명 존재한다.

이것은 최근 인간의 입맛을 위해 상어를 잡아다 지느러미만 잘라내는 행위에 대한 분노, SBS <TV 동물농장>을 통해 알게 된 '강아지 공장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대중의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 사육을 넘어 도살 문제뿐 아니라, 영국인들도 먹는 소·돼지·닭 등에 대한 대량 공장식 축산의 처참한 현실에 대한 진지한 반성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논리적인 이유가 없다(가축이냐 아니냐는 인간의 임의적인 분별의 결과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런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했다면, 당신도 이미 윤리적인 삶의 길 어딘가에 접어든 것은 아닐까.

('식탁이 낯설어질 때' 1부 끝. 2주간 휴재합니다.)

[1-①] '채식인'과 '채식주의자'는 다르다
[1-②] 돼지가 고통을 느끼면 삼겹살 대신 샐러드 먹어야 할까
[1-③] 상추도 흑돼지처럼 고통을 느낄까
[1-④] 영국과의 개고기 논쟁 전 생각해봐야 할 것들

#개고기 #영국 #박지성 #피터 싱어 #채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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