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 뗏목 띄운 칠레 예술인, 그 이유

칠레의 예술가 두 명에게 듣는 한국의 모습

등록 2016.09.21 20:32수정 2016.09.2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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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칠레에서 인연이 된 예술가 막시모 코르발란 핀체이라(남·43·이하 막시모)와 그보다 한 달 늦은 8월 역시 칠레 예술가인 엔리케 라미레즈(남·37·이하 엔리케)가 국립현대미술관 해외 레지던시 작가로 한국에 왔다. 각각 3개월과 2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눈을 통해 본 한국은 어떤지, 그동안 한국에서 작업한 작품들의 모티브는 무엇인지가 궁금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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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에서 온 막시모 작가(좌)와 엔리케 작가(우) ⓒ 홍은


개인의 역사가 작품으로 - 이민자와 정체성


막시모 작가는 칠레의 역사를 개인의 역사로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에 의한 칠레 군사 쿠데타 당시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 옆에 있던, '아옌데의 사람'으로 불리던 이가 그의 아버지 리카르도 필체이라였다. 아버지가 살해된 후 그해 갓 태어난 그와 가족은 칠레에서 추방되어 18여 년 간을 독일, 쿠바와 멕시코 등을 떠돌며 살아야 했다.

이런 평범하지 않은 개인의 역사 때문에 그의 작품은 항상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에 집중한다. 한국에서의 석 달 간 막시모가 집중한 작업은 한국으로 온 이민자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 등 아시아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20여 명을 인터뷰했다.

"나의 어린 시절 대부분을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보냈기 때문에 이민자의 문제, 그들이 찾아가는 정체성이라는 주제는 나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민자 인터뷰에서 그가 묻는 질문 중 하나는 잠잘 때 꾸는 '꿈'에 대한 것이다. 시공간의 경계가 없는 꿈속으로의 기억을 통해 개인의 이야기와 경험을 듣는 것이 막시모 작가의 의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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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달간의 그의 작업들이 있는 막시모 작가의 작업실. ⓒ 홍은


인터뷰를 진행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언어'라고 답했다.


"아시아의 언어가 그렇게 다양하고 전혀 다른 맥락 안에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남미의 경우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페인어를 사용하잖아요. 식민지의 영향으로 말이죠. 아시아가 모두 침략과 식민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는데 각각의 나라가 자신의 언어를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특히 막시모는 인터뷰 과정에서 이민자들이 본인의 언어를 완벽하지 못한 한국어로 옮겨 말하고, 이를 통역자가 다시 스페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오는 언어의 소통문제에 주목했다. 인터뷰하는 그 현장 자체가 이민자를 이해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강 가운데 뜬 뗏목 - 한강의 기적의 양면

지난 9월 7일(수) 한강 잠원 수상스키장에는 태극기를 단 작은 뗏목이 떴다. 수상스키의 인도를 받아 한강 가운데 뜬 뗏목 위로 옮겨 간 한 여인은 서울의 야경을 배경으로 삼아 앉았다. 위태위태한 이 배는 바로 칠레 작가 엔리케의 촬영을 위해 띄워놓은 것이었다.

"나는 주로 물을 주제로 작업을 해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작은 배의 선장이었어요. 어릴 때 대부분의 시간을 배 위에서 보냈기 때문인 거 같아요."

해외에서 작업을 할 때 그곳의 의미있는 강이나 바다를 주제로 작업한다는 그는 서울에서는 한강을 작업 장소로 삼았다.

"'한강의 기적'이 잘 알려져 있죠. 지금 보여지는 서울의 경제적 성장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어요. 하지만 그 성장 안에 분명 잊힌 것과 상처난 것들이 있죠. 화려한 서울 안에 담긴 보이지 않는 불안은, 멋진 서울 야경 위에 띄워진 위태로운 배 같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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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저녁을 배경으로 한강에 위태로이 떠있는 엔리케 작가의 뗏목 ⓒ 홍은


배 위에서는 '문리버'노래가 울려 퍼졌다. 왜 '문리버'냐는 질문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내던 1960년대에 성공을 거둔 노래이기도 하고, 많은 부분 한국의 경제성장이 '아메리칸 드림'과 연결되어 있는 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서구화, 칠레와 많이 닮았다

엔리케와 막시모 작가는 이구동성으로 "한국이 굉장히 서구화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물론 이 이미지는 그들이 주로 한국에서 시간을 보낸 서울의 이미지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와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산티아고도 굉장히 서구화된 형태의 도시이고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 발전의 형태가 한국과 많이 비슷하죠."

필자 역시 작년 칠레 산티아고에 갔을 때 똑같이 느낀 부분이었기 때문에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엔리케 작가는 그 부분을 가지고 이후 돌아가면 좀 더 작업을 발전시켜보고 싶다고 하며 아이디어 작업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안에 '이것이 '한국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막시모는 "지하철 풍경"이라며 "남녀노소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모습과 다른 사람들 아랑곳하지 않고 화장을 하는 여성들"이라고 답했다. 스마트폰 사용은 칠레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확실히 한국이 과한 느낌이며 아시아인들은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고 들었는데 지하철에서 화장에 집중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놀라웠다고 했다.  

가로수의 버팀목까지도 궁금한 이방인의 시선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막시모 작가의 작업실에는 가로수 나무에 버팀목을 댄 그림이 있었다. 한 번도 왜 가로수에 버팀목을 대는지 진지하게 궁금해 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넘어지지 말라고 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막시모 작가는 다르게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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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모 작가가 스케치한 가로수의 버팀목 ⓒ 홍은


"동양은 지조를 중요시하니까 나무가 휘지 않고 똑바로 자라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깊은 뜻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 가로수 버팀목까지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며 다른 눈으로 보고 해석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우리가 흔히 등산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것에 비해 이들은 그것이 참 건강한 문화로 보인다고 하고, 길이나 공간에서 사람들을 밀치고 부딪혀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조금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들이 짧은 기간 한국에 머물며 안산의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소녀상이 있는 일본대사관 앞, 판문점 투어까지 꼼꼼히 챙기며 기록해 가는 모습을 봤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여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하며, 더 이상 깊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국은 참 재미있어요. 동양과 서양, 전통과 최신 기술 등 조화되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이 거대하게 서로 나름의 리듬을 가지고 섞여 있는 느낌이어서 아주 흥미로워요." 

두 작가 모두 꼭 다시 올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그때는 또 어떤 관심과 깊이로 이곳을 보고 기록할지 기대가 된다. 두 작가가 한국에서 작업한 작품은 11월 중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전시실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한반도 위의 팽이> 막시모 작가의 작품
#칠레 예술가 #이방인의 시선 #막시모 #이민자 #엔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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