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총소리 "탕탕탕", 어이없는 훈련소

[주장] '머릿수'보다는 '전문성'이 중요한 현대전, 모병제가 답

등록 2016.09.27 21:18수정 2016.09.27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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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형식적인 훈련. 군대 부적격자의 유입. 이 모든 원인은 징병제에 있습니다.
  • new철저한 훈련과 검증된 사람들로 구성된 군대, '전문화된 강한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모병제를 채택해야 합니다.
최근 다시 모병제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했습니다. 과거에도 모병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큰 반응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은 다릅니다. 과거와 달리 설문조사에서 모병제에 대한 찬성의견이 절반이 넘습니다. 상당히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들의 주된 주장은 이렇습니다. "대한민국은 휴전 상태다. 모병제를 하면 숫자가 줄어드는데 어떻게 하느냐?" 그들은 국군과 북한의 인민군 숫자를 비교하며 격렬하게 반대합니다.

하지만 저는 모병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대에서 징병제 군대의 허상과 폐해 등 민낯을 모두 봤기에, 오히려 군대를 다녀온 뒤로 군을 굉장히 불신하게 됐습니다. 심지어 가장 만만하게 생각하던 북한, 전력이 비교적 떨어지는 인민군과 싸우더라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생각마저 들었죠. 그래서 지금부터 제가 군대에서 느낀 현 징병제 체제의 문제점들을 알리고자 합니다.

수류탄을 던지지 못하게 하는 훈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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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8월 24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신병 입영행사가 열렸다. 입영 장병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저는 2013년도 10월에 입대했습니다. 306보충대를 거쳐 모 기계화보병사단 훈련소에 입소했습니다. 훈련 과정에는 수류탄 훈련도 있었습니다. 총을 쏘는 것은 밖에서도 할 수가 있지만, 수류탄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수류탄을 던지는 것은 오로지 군인만이 할 수 있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수류탄 훈련이 잡힌 날이 왔습니다. 먼저 모의 수류탄 투척교육이 진행됐습니다. 진짜 수류탄을 던지기 전의 연습이죠. 모의 수류탄 투척에 대한 교육이 끝나고 몇 번 연습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다음에는 교관 주관 하에 투척시험을 봤습니다.

약 200명 중에서 소수만 합격했습니다. 연습시간이 너무 짧은 탓이었죠. 그래서 합격한 소수만 '진짜 수류탄'을 던지러 갔습니다. 그렇다면 불합격한 훈련병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다른 곳에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가만히 기다리던 중, 어느 훈련병이 조교에게 질문했습니다.


"○○○ 조교님. 저희는 언제 수류탄을 던집니까?"

조교의 답변은 참으로 걸작이었습니다.

"야. 니들 월급보다 수류탄이 더 비싸."

비교적 훈련병들과 격의 없이 지내던 조교이기에, 그 말에 더욱 놀랐습니다. 조교는 씩 웃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니들 숫자가 200명이 넘는데 다 던질 수나 있겠냐? 거기에다가 수류탄 던지다가 사고 생기면 어쩌게? 니들 사고 나면 우리만 피곤해져!"

그리고 어떻게 됐을까요? 저를 포함한 대다수 훈련병들은 끝내 수류탄을 던질 기회가 없었습니다. 군인에게 수류탄을 던지지 못하게 한 겁니다. 물론 수류탄은 대단히 위험한 무기입니다. 하지만 다른 대상도 아니고 '군인'입니다. 전쟁이 나면 총 쏘는 건 기본이고 수류탄도 던져야만 합니다.

군인들을 양성해야 하는 훈련소에서 그 기회를 박탈한 것입니다. 200명이 넘는 훈련병 대다수가 수류탄을 던지지 못했습니다. 수류탄도 던져보지 못한 군인! 이게 말이나 되는 걸까요? 안전을 운운하면서 이런 한심한 일이 자행된 겁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황당했던 훈련도 있었습니다.

입으로 총소리를 내는 각개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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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병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훈련 5주차가 되던 날, 이날은 각개전투 훈련이 잡혀있었습니다. 각개전투란, 병사 개개인이 모의전투를 벌이는 훈련입니다. 실제 전장에서 병사가 살아남기 위한 훈련이지요. 가장 중요한 훈련입니다.

훈련장에 도착하자 담당 교관의 교육이 시작됐습니다. 교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개전투는 목소리가 중요하다! 복명복창 크게 하도록! 실제 전투라고 생각해라! 현재 상황은 고지를 점령한 적군을 격멸하는 훈련이다! 다음은 주의할 점을 전파하도록 하겠다!"

훈련병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면서 교관은 강조했습니다. 상당히 성질이 고약하기로 소문이 난 교관이기에 저를 비롯한 훈련병들은 모두 긴장했습니다.

"총소리는 입으로 크게 낸다! 성의 없게 총소리를 내면 즉시 얼차려를 부여하겠다! 알겠나!"

총소리를 입으로 내라는 황당한 강조. 결국 저는 "탕! 탕! 탕!" 총소리를 크게 외쳤습니다. 다른 훈련병들도 질세라 큰 목소리로 "탕! 탕! 탕"을 외치며 돌격했지요. 그렇게 입으로 총소리를 외치는 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없는 수류탄'을 던지는 시늉을 하고, '없는 탄창'을 갈아 끼우는 시늉을 하고, 그리고 '없는 대검'을 총에 끼우는 시늉을 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군대인지, 꼬마들의 '병정놀이'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실제 전투를 벌인다는 일념으로 훈련을 하라고 강조를 하더니, 하는 수준은 동네 꼬마들의 병정놀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요. 동네꼬마들의 병정놀이도 '시늉'만 합니다. 훈련소에서 하던 훈련들도 전부 이런 '시늉'에 지나지 않습니다.

얼마 뒤 훈련병들은 고지에 진입했습니다. 그리고 총의 개머리판을 단단히 움켜쥐고 백병전에 돌입했습니다.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표적에 달려든 훈련병들. 그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놀랍게도 훈련병들은 표적을 때리지 않았습니다. 모두 때리는 '시늉'만 했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교관이 이렇게 마지막으로 덧붙였기 때문입니다.

"표적이 깨지면 안 된다! 절대 표적을 진짜로 때리지 마라! 때리는 '시늉'만 해라!"

훈련병에게 '보약'을 '갖다 바치는' 소대장

큰 문제는 하나 더 있습니다. 징병제는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젊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징병기준이 완화되고 있습니다. 즉, 손가락과 발가락에 장애가 없으면 대부분 징병대상입니다.

훈련소의 같은 중대에 A라는 훈련병이 있었습니다. A는 정신적으로 대단히 불안정했습니다. 혼자 중얼거리거나 각종 기괴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발작까지 하는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당연히 A는 각종 훈련에서 열외대상이었죠.

그런데 대단히 인상 깊은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사격 훈련 때의 일입니다. 훈련병들은 조를 나눠서 차례로 사격장으로 올라갔습니다. 물론 A는 열외였습니다. 사격을 시킨다면 사고가 일어날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대기 중인 A에게 담당 소대장이 다가가서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A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대장님. 제가 몸이 좀 허해서, 보약을 좀 먹어야겠습니다."

소대장은 PX(군대 내의 매점)에 달려갔습니다. 돌아온 소대장의 손에는 피로회복제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소대장이 그걸 직접 두 손으로 A에게 먹여주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그 소대장은 복무 기간이 얼마 안 남은 장교였습니다. 남은 기간에 A가 문제라도 일으킬까 봐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모셨던 겁니다.

이게 징병제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징병기준이 완화되었기에, 군대에 와서는 안 되는 사람들도 군대에 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A와 같은 심각한 수준의 관심병사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간부들도 "군대가 아니라 보육원이 되었다"라고 불평을 했을 정도입니다. 관심병사들을 관리하는 그린캠프의 책임자인 원사 한 명은 "심각한 애들이 전례 없이 많이 오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머릿수'가 아닌 '전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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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3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에서 실시된 ‘2016 을지훈련 지하철 테러대응 실제훈련’중 지하철 승강장에서 발생한 폭탄테러현장에 군인들이 긴급 투입되고 있다 ⓒ 최윤석


형식적인 훈련. 군대 부적격자의 유입. 이 모든 원인은 징병제에 있습니다. 육군의 숫자는 무려 50만에 육박합니다. 부족한 숫자를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군대에 아무나 끌고 오는 것이죠. 이건 근본적으로 군대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당나라 군대' 아닌가요?

그렇기에 저는 모병제를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철저한 훈련과 검증된 사람들로 구성된 군대, '전문화된 강한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모병제를 채택해야 합니다.

물론 앞서 말했다시피 반대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주로 북한과의 병력 차이를 언급하지요. 하지만 현대전은 '머릿수'가 전쟁을 결정짓지 않습니다. 걸프전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와 미국을 위시한 다국적군이 전쟁을 벌입니다. 170만에 육박하는 대병력을 거느린 이라크는 자신만만했습니다. 홈그라운드의 이점, 다국적군보다 2배가 훨씬 넘는 병력. 수많은 군사전문가들도 '베트남 전쟁'과 같이, 미국이 패배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습니다. 현대화된 다국적군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미군 사망자는 200명 남짓인 반면, 이라크군은 10만 명 이상의 피해를 입었지요. 당시 이라크군은 세계에서 4번째로 규모가 큰 군대였습니다. 그런 군대가 비참하게 패배했습니다. 이는 더 이상 과거처럼 '머릿수'가 전쟁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문득 군대의 정훈교육이 떠오릅니다. 6.25전쟁에 참전한 중공군은 '머릿수'만 많지, '전문성'은 없는 형편없는 군대라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말이 고스란히 현재 한국군에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한국군에게 시급한 것은 '머릿수'가 아닙니다. 정말로 한국군, 나아가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모병제를 통한 '전문성'입니다.
#고충열 #모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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