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못 지킨 대통령, 자격 없다"던 당신, 기억합니다

누가 백남기 농민을 죽였는지 우리 모두가 알고있습니다

등록 2016.09.27 18:38수정 2016.09.2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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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부상자 발생에도 무차별 물대포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2015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 이희훈


지난 2015년 11월 14일, 종로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셨습니다. 그 날 구급차가 여러 번 왔습니다. 경찰이 구급차의 진입마저 막고 있어 도착이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제 친구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팔이 부러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구급차가 들어왔고, 경찰은 백남기 농민을 쓰러트렸던 물대포로 구급차도 조준했습니다. (관련 기사 : "박근혜 퇴진!", "국정화 중단!", "쉬운 해고 박살" 광화문에 울려퍼진 8만 함성들)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우리는 분노했고, 집회 참가자들은 맨몸으로 물대포를 막았습니다. 여기저기서 부상 소식이 들려왔고 분위기는 뒤숭숭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머리가 찢어졌습니다. 피가 철철 났고, 눈앞이 아득해졌습니다. 그 친구는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머리를 꿰매야 했습니다. 구급차에 같이 타고 간 다른 친구가 물대포에 쓰러진 농민 한 분이 그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상태가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마음 아프고 화가 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날 쓰러진 사람이, 그리고 지난 25일 숨을 거둔 사람이 백남기 농민이 아니라 나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팔이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지고,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가 저였을 수 있었다는 생각 말입니다. 2015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난 국가의 폭력 살인 현장에서 저는 운이 좋게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백 농민을 두 번 무너지게 한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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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명 전 경찰청장 답변 지켜보는 백도라지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와 부인 박경숙씨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청문회에 참석해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답변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강 전 경찰청은 "백남기 농민의 사건에 대해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한 경찰의 정당한 대응 여부가 법리적으로 굉장히 논란이 되어 있다"며 "쟁점이 정리가 되면 제가 사과하지 않겠다고 어떠한 말씀도 드린 적이 없다. 법적인 판단이 서면 당연히 제가 책임을 지고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은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노동당을 통해 6121명의 시민이 공동 고발인으로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10개월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당사자를 단 한 차례도 소환해서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명예롭게' 정년 퇴임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12일, 우여곡절 끝에 열린 청문회에서 강 전 경찰청장은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며 끝내 국가 폭력과 살인 진압 혐의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남기 농민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경찰이 부검을 하려 한다는 소식이 백 농민의 가족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백 농민이 주말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그가 입원해있던 서울대병원 주변에 경찰이 투입되었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끝내 숨을 거둔 지난 25일에는 서울대병원 출입구를 통제했습니다. 백남기 농민을 안치한 후에는 장례식장을 봉쇄했고, 다른 빈소 조문객들까지 출입을 차단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보았습니다. 2015년 11월 14일 경찰이, 그리고 경찰이 발포한 물대포가 백남기 농민을 쓰러트리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경찰이, 그리고 정권이 백남기 농민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사인(死因)'을 밝혀야 한다며 부검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장례식장까지 병력을 배치해 조문하러 찾아온 사람들까지 막아섰습니다. 사람을 죽였으면,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하고 관련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것이 순서일 텐데 경찰은 '사과 못한다'고 하면서 장례식장에까지 와서 난동을 피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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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 시신을 지켜라' 지난해 민중총궐기 도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317일만에 사망한 가운데 25일 오후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강제부검을 막기 위한 시민, 학생들이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 ⓒ 권우성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다. 우리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노무현 대통령은 자격이 없으며, 난 용서할 수 없다."

故 김선일씨가 피랍되어 살해되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하지 않은 채 사과조차 거부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은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신 지 사흘째인 오늘도 이에 대해 어떤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백번 맞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심지어 국민을 죽인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닙니다. 국민의 죽음 앞에 아무런 말이 없는 박근혜 대통령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 정권은 '퇴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정권이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침묵한다면, 우리가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백남기 농민과 함께 살아갔던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리고 11월 14일 국가폭력 살인의 목격자로서 해야 할 도리입니다.


#백남기 #강신명 #경찰청장 #박근혜 #물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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