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둘러싼 경찰... 의학이 불가능한 시대 앞에서

서울대 의과대학 학생의 눈으로 본 백남기 농민의 죽음

등록 2016.09.28 18:58수정 2016.09.2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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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문을 폐쇄한 경찰병력 2016년 9월 25일 일요일, 백남기씨가 돌아가신 직후 경찰병력이 서울대병원으로 연결되는 서울대학교 연견캠퍼스 정문을 폐쇄하였다. ⓒ 유기훈


교문을 막아선 건 경찰이었다. 지난 일요일,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 의학도서관으로 들어가려는 내게 경찰은 교문 통과를 위한 합당한 근거의 증명을 요구했다. 백남기씨의 사망소식이 들려온 직후였다. 나보다 앞서, 서울대병원 환자의 가족들과 문병객들 여럿이 이미 경찰의 벽에 가로막혀 쩔쩔매고 있었다.


몇 분은 자신이 환자 가족임을 '증명'해줄 담당 간호사와 황망히 전화 연결을 시도하고 있었고, 또 어떤 분은 중환자실에 혼수상태로 누워계신 아버지의 사진을 경찰에게 '증거자료'로 제시해야만 했다. 학생증을 내밀고 재빨리 벽 사이를 비집고 나온 내 뒤로 수많은 가족들이 남겨졌다.

하루에도 수천 명의 환자와 고인, 그 가족 분들이 드나드는 서울대 병원과 장례식장 곁에서 의학을 공부하며, 그 거대한 아픔과 죽음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곤 했다. 한명 한명이 품고 있을,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사연과 고통 앞에서 공감과 추모는 자유이기에 앞서 의무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의무 속에서 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개인의 신체적 아픔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세계에 공감과 추모를 건네는 것이었다.

인간적 존엄성을 지켜내는 마지막 장소. 그것이 내가 발견한 병원과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의 의미였다. 그리고 인간다움의 마지막 장소를 지키는 미래의 의료인으로서, 누구보다도 의학을 공부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중환자실에서 투병을 이어오던 백남기씨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려온 후, 병원과 장례식장 그리고 의과대학은 인간 존엄성의 공간이 아닌 국가권력의 체스판으로 전락했다. 경찰이 병원과 캠퍼스 전체를 빙 둘러싸고, 인간의 아픔과 죽음에 대한 공감과 추모가 있어야 할 자리엔 통제와 은폐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치부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문병 온 가족들과 장례식장의 조문객들, 심지어 앰뷸런스까지 막아선 국가권력의 장벽 앞에서, 나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의료적 선언이어야 할 고인이 사망한 이유가 권력의 압력을 받지 않았나 의혹을 받고 있고, 유족들은 고인을 장례식장으로 모시는 길에서조차 시신을 빼앗기지는 않을까 불안에 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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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장례식장을 통제하는 경찰병력 지난 9월 25일, 백남기씨의 사망 이후 경찰은 조문객을 포함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향하는 모든 사람들의 통행을 차단하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조문객들과 시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 유기훈


비록 나는 국가의 유능한 기능인이 될 것임을 증명하는 '학생증'을 통해 무사히 의학도서관에 도착해 교과서를 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추모의 권리조차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박탈당한 유가족 분들의 모습 앞에서, 바로 그 공감과 추모의 정신에 뿌리내리고 있는 '의학'이란 학문은 성립될 수도, 공부될 수도 없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국가 속에서 오히려 국가폭력의 정당화에 가담하게 된 홀로코스트와 일제의 생체실험 속 의료인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진정한 의학은 아픔에의 공감과 죽은 자에 대한 추모를 보장하는 '인권적 국가'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으로 책 대신 국화꽃을 들고 나선다. 진정한 의학은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국가 속에서만이 가능하다고 믿기에. 그리고 나는 그러한 의학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의대생신문사 페이스북에 중복 게재됐습니다
#백남기 #물대포 #국가폭력 #서울대병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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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장애인야학 교사이자, 의학과 인류학, 법학을 공부하는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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