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보고파 경찰서에..." 그의 어깨가 들썩였다

알코올 중독 결혼 이주 남성의 하소연,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지만

등록 2016.09.28 18:23수정 2016.09.2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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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복 입은 흑인'이라는 말에 누군지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 pixabay


"안녕하십니까? 여긴 OO파출소 OO입니다. 선생님 전화번호가 있어서 연락드렸는데요. 혹시 운동복 입은 흑인과 어떤 사이세요?"
"네? 흑인요?"
"네, 이분에 대해 아세요?"


'운동복 입은 흑인'이라는 말에 누군지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알코올 중독인 잠비아 출신 이주 남성이었다. 퇴근 무렵에 만났을 때, 그는 입 안 가득 술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취기가 있어 보이진 않았고, 술에 절어 있어서 그렇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 '쉼터에서 술 마시면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 하니까 마시지 말라'며 다짐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다음 주에 캐나다에 간다. 한국 떠나기로 했다. 장모가 지역 경찰들을 시켜서 나를 감시하기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는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이어 캐나다에 가면 연락하겠다면서 명함을 요구했다. 마침 명함이 없던 내가 연락처를 적어주겠다고 하자, 그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그가 건넨 휴대전화는 방전돼 있었다. 그러자 그는 옆에 있던 종이상자를 뜯더니 쑥 내밀었다.

파출소에서는 그를 조사하려고 해도 신분증이나 휴대전화가 없어서 난감했는데, 마침 주머니에서 쪽지를 발견했다고 했다. 종이상자 한 쪽을 찢은 쪽지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무작정 전화한 것이다. 밤 9시 넘은 시간이었다. 경찰은 '술 취한 흑인을 조사하고 있는데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로 물어도 답변하지 않는다'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쉼터에서 걸어가기에는 한참 걸리는 거리인데 어떻게 그가 그 파출소까지 갔는지 의아했다.

'술 취한 사람을 데려와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는 차에, 관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내가 데리러 간다고 해서 술 취한 사람을 어를 방법이 없었지만,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갔다. 그런데 방금 파출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고 했다. 정확히 어디로 데려갔는지는 모르지만, 경찰이 말한 주소는 쉼터가 아니었다.

자칭 '홈리스'요,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다른 곳에 숙소를 두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쉼터에 들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제대로 주체하지 못하는 몸을 이끌고 흔들흔들 쉼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베란다 의자에 앉아 무슨 일로 파출소에 갔는지 물었다. 그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 파출소에 갔다고 했다. "아이들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런데 모른다고 했다. 화가 났다"고 말하던 그의 눈에서 주룩주룩 눈물이 흘렀다. 그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지만, 현재 집을 떠나 가족과 헤어진 상태다.


아이들이 보고싶다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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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그가 어딘가에서 배회하다 행패를 부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고 한다. 반면, 그는 제 발로 경찰을 찾았다고 했다. 술 취한 사람의 말을 다 믿기는 어렵지만, 그가 아이가 보고 싶어 파출소에서 소란을 피웠을 수도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 flickr


경찰은 그가 어딘가에서 배회하다 행패를 부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고 한다. 반면, 그는 제 발로 경찰을 찾았다고 했다. 술 취한 사람의 말을 다 믿기는 어렵지만, 그가 아이가 보고 싶어 파출소에서 소란을 피웠을 수도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A와 B를 불러 달라 했다. 큰 애는 키가 내 어깨까지 온다. 2년 동안 그 애들 손 한 번 못 잡아 봤다."

평소 한 아이의 이름만 말하던 그가 두 아이의 이름을 분명하게 언급했다. 술에 취하지 않았다고 해도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아이들 이름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쉼터에 처음 왔을 때 매주 아이를 만난다고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2년 동안 아이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말은 의아했다.

그는 매주 혹은 격주로라도 아이들을 꼭 만난다고 자랑하곤 했다. 아이가 피아노를 얼마나 잘 치는지, 바이올린으로 어떤 곡을 연주할 수 있는지 등을 말할 때면 그의 얼굴은 세상 근심을 다 잊은 듯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다가 눈물 흘리는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아줬다. 그의 어깨가 격하게 흔들렸다.

다음날 아침, 계단 끝 창문턱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그는 거실이라고도 할 수 없는 방 밖에서 코를 골고 있었다. 베란다 벤치에서 자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누에고치처럼 이불을 둘둘 말아 머리까지 집어넣었지만, 발은 고스란히 드러낸 모습이었다. 유난히 측은해 보였다.

눈 부비고 있는 그에게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가 막 구운 빵을 같이 먹자고 권했다. 그는 잠에 겨운지 건성건성 답하더니 다시 드러누웠다. 그에게 알코올 중독 치료를 다시 한 번 강권해야겠다. 매번 실패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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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빵 로띠(Roti) ⓒ 고기복


#결혼이주남성 #알코올 중독 #잠비아 #이주노동자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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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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