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손 절대 못 닿게 하겠다"
백남기 유가족 '조건부 부검' 거부

법원, '유족 협의' 조건으로 영장 발부... 대책위-야당 "부검 결사 반대"

등록 2016.09.28 20:40수정 2016.09.2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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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 손 닿게 하고 싶지 않다' 28일 오후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강제부검 영장을 법원이 발부한 가운데 고인의 유가족과 투쟁본부측은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딸인 백도라지씨는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이 절대로 닿게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고인의 부인과 딸인 백민주화, 백도라지씨. ⓒ 권우성


[기사 보강: 9월 28일 오후 11시 30분]

"저희는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만든 사람들 손이, 아버지에게 닿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저희 가족은 절대 부검을 원치 않습니다."

고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라지씨를 비롯한 유가족은 법원이 28일 발부한 부검 영장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유가족과 백남기투쟁본부는 이날 영장 발부 소식이 알려진 뒤 약 2시간 30분 뒤인 오후 10시 30분 기자회견을 열어, 아래와 같은 세 가지 결정 사안을 발표했다.

첫째,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을 절대 닿게할 수 없다는 게 유가족의 입장이다. 부검은 사인이 명확한 만큼 필요하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다.

둘째,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러한 유가족의 뜻을 받들어 부검을 반대한다.

셋째, 이러한 유가족과 투쟁본부의 뜻에도 불구하고 부검을 강행할 시, 온국민의 마음을 모아 있는 힘을 다해 막아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확히 밝힌다.

법원, 4가지 조건 내건 부검 영장 발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날 오후 8시께 고 백남기씨 시신 부검을 위한 압수수색검증 영장을 발부했다. 한 차례 기각한 뒤 재청구, 두 차례의 추가 자료 제출 뒤 이뤄진 결정이다. 법원은 사실상 '조건부 영장'을 발부, 당장 검·경의 부검 시도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은 ▲ 부검 장소를 현재 빈소가 차려져 있는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으로 ▲ 유가족이 지정하는 의사 2명과 변호사 1명을 입회, 유가족이 원하면 감축 가능 ▲ 부검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 ▲ 부검 시 고인 시신 훼손 최소화 ▲ 부검 절차와 내용에 대해 유가족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 등의 단서를 단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영장 집행은 야간에도 가능하며 유효기간은 10월 25일까지로 잡았다.

서울중앙지법 공보관은 "사망 원인 등을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하되, 부검의 객관성과 공정성, 투명성 등을 제고하기 위해 부검의 방법과 절차에 관하여 구체적인 조건을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백씨 사망과 관련한 고발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관계자는 "법원의 취지는 장소와 방법에 관하여 유족의 의사를 들으라는 것"이라며 "유족이 지정하는 사람을 부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과 부검 과정 영상 촬영 등의 조건을 달았다"고 설명했다.

법원의 영장 발부에 대해 유족 측은 '법원이 유족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처럼 가장해 자의적으로 부검을 허용한 게 아니냐'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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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강제부검 영장을 법원이 발부한 가운데 고인의 유가족과 투쟁본부측은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 권우성


백남기 변호인단의 남성욱 변호사는 "법원이 영장에 '유족이 원하는 서울대병원'이라고 썼지만, 유족은 부검 협조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며 "부검 불가 입장은 그대로"라고 밝혔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집행하려면 유족이 지정하는 의사와 변호사를 참여시켜야 하는데 부검 자체를 반대하는 유족으로부터 지정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부검 절차와 내용도 상세하게 설명하도록 했기 때문에 유족의 부검 참여도 필요한 상황이다.

부검 영장을 발부하면서도 유족의 동의를 전제 조건으로 건 한 법원의 의도는 검·경이 유족과 더욱 적극적으로 협의를 벌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법원의 영장 발부 소식이 알려진 직후, 백남기 농부의 딸 백민주화씨는 "사전에 연락을 받지 못했고, (영장이 발부된 지금 검찰에서) 접촉해 온다면 당연히 거부 의사를 밝힐 것"이라며 "대책위도 같은 입장이다, 법원에서 그런 판단을 했더라도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화씨는 "(검찰의 강제 집행으로) 당연히 충돌이 예상되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아버지를) 지키겠다는 게 저희 입장"이라며 "애초 아버지 사망의 원인이 분명했고, 의료진들도 동의했는데도 부검을 하겠다는 것은 고인이 된 아버지와 저희를 우롱하는 것이다, 말이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부검 영장 발부, 고인 두 번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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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 시신 지키는 시민들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영장이 발부된 가운데 28일 오후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안치실앞에 시민, 학생들이 모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법원의 영장 발부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시민들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모였다. 시민들은 유가족과 투쟁본부의 발표에 박수를 보내며 "끝까지 함께 하겠다", "힘내시라" 등의 응원을 보냈다.

시민들과 투쟁본부는 오후 11시 30분 장례식장 앞에서 법원의 영장 발부와 정권을 비판하는 결의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야당 국회의원들도 속속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불필요한 영장 발부다, (부검을) 하는 것을 결론으로 놓고 (유족과) 협의하라는 해석 방향이 있을 수 있고, 조건을 채워야 (부검을) 할 수 있다는 해석 방향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두고 얼마나 다투겠나"라며 "이런 엉터리 같은 영장을 발부할 거면 하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법원의 판단을 비판했다.

이어 박 의원은 "현재 가족 분들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있다"라며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분인데, (가해자인) 경찰이 부검이라는 과정을 거치려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위로를 할지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도 "영장 발부는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라며 "국가 폭력에 의해 사망한 분인데, 분명한 사인을 두고도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은 당국이 결국 사인을 엉뚱한 것으로 호도하려고 영장 발부를 추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은 손금주 수석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영장 재청구 사유가 만족되지 않았음에도 검찰의 신청을 승인한 법원의 이번 판단을 받아들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라며 "국민의당은 이번 법원의 영장 발부로 국가공권력의 부당한 사용이라는 이번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는 것을 우려한다"라고 발표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즉각 논평을 내 "검경의 부검 영장 청구는 사인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3의 요인에 의한 사망이라는 자신들의 면책 구실을 찾기 위한 것으로 영장청구권을 남용한 것이다"라며 "(법원이 발부해준 영장은) 유가족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형식을 띄고 있지만 결국 가해자인 경찰에게 또 다시 고인의 시신을 훼손하도록 허락한, 실체적 진실을 외면한 결정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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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 농민에 묵념하는 검시 참가자들 2015민중총궐기 도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317일만인 25일 오후 사망했다. 대학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안치실에서 유족대리인, 대책위, 검사측이 검시를 시작하기 전 고인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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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 농민 추모 촛불문화제 28일 오후 경찰 물대포를 맞고 317일만에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 빈소가 차려진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앞에서 추모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백남기 #백민주화 #백도라지 #백남기대책위 #부검 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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