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보다 인문강좌를 듣는 청소년이 많아졌으면

[청소년책 읽기] 길담서원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등록 2016.09.29 17:33수정 2016.09.2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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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철수와영희, 2016)는 길담서원이 마련한 청소년 인문학교실 가운데 '삶'을 놓고 나눈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입니다. 이 나라 푸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가 깃든 책입니다. 청소년 인문책이지요. 나는 푸름이가 아니지만 이 책을 찬찬히 읽습니다. 내 어릴 적을 떠올리고, 내가 푸름이 나이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을 되새기면서 읽습니다.

내 삶이 내 것이어야 한다면 내 생각도 내 것이어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요구이죠. 그렇다면 신분의 자유가 보장된 오늘날 내 몸이 자유롭다고 해서 내 생각도 자유로울까요? (22쪽/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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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철수와영희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는 동안 '인문 강좌'를 한 번도 들은 일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라는 곳에 들어간 뒤에도 인문 강좌를 들은 일이 없습니다.

1980년대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인문 강좌라는 수업이 아예 없었어요. 오직 교과서 달달 외워서 시험문제 잘 푸는 입시공부만 있었어요. 이런 학교를 열두 해 다니고서 대학교에 갔어도 따로 '젊은 넋을 북돋우는 인문 강좌'는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학교에서 인문 강좌를 열어 주어야만 입시공부에서 한숨을 돌리면서 사회를 더 넓게 볼 수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인문 강좌는 있어도 입시공부로 짓누른다면 어느새 마음도 짓눌릴 테니까요.

그러나 가뭄에 단비처럼 인문 강좌를 열어 주는 학교 얼거리라면, 때때로 교과서를 덮고서 삶과 사회를 두루 헤아리도록 이끄는 교육 얼거리라면, 어린이와 푸름이는 앞으로 살아갈 길을 찬찬히 돌아볼 틈을 누릴 만하리라 봅니다.

땅을 기름지게 하는 지렁이가 있고 결실을 돕는 곤충들도 있습니다.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잡초들도 있겠지요. 그 작은 생명들이 채소를 키우고 열매를 맺게 하지요. 사람은 그저 성심껏 옆에서 보살피면 돼요. (113쪽/안철환)


제가 들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밤새 쏘다니는 이 녀석도, 만져 보면 냄새가 하나도 안 나요. 목욕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자연의 바람, 흙, 이런 것들이 청결을 유지해 주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21쪽/안철환)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읽으면, 홍세화·이계삼·조광제·안철환·박영희·노을이·정숙영, 이렇게 일곱 어른이 일곱 가지 삶을 꾸리는 이녁 발자국을 되짚으면서 푸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삶'을 이야깃감으로 삼아서 꾸린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교실'에서 다룬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 인문학교실에 함께한 푸름이들은 일곱 갈래 어른을 새롭게 만나서 일곱 갈래 길을 새삼스레 마주했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진짜 공부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겁니다. 그걸 알아가는 게 참된 공부이고요. (151쪽/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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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을이나 겨울이면 마을 곳곳에 걸개천이 걸립니다. '시골에서 대학교 입시에 붙은 청소년 이름'이라든지 '사법고시 합격'이라든지 '서울 어느 공공기관에서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했다는 이야기를 알려요. 입신과 출세와 입시를 너무 크고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모습이 드러납니다. ⓒ 최종규


어린이나 푸름이가 나아갈 길은 한 갈래가 아니라고 봅니다. 일곱 갈래도 아니지요. 모든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저마다 다른 길을 가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만 어린이가 있으면 백만 갈래 길이 있을 때에 아름답고, 이백만 푸름이가 있으면 이백만 갈래 길이 있을 때에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공부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이처럼 다 다르면서 저마다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길로 스스로 씩씩하게 나아가는 즐거운 노래를 익히는 길이지 싶어요. 교과서를 외우는 일이란 시험공부이겠지요. 그러니까 우리 어른이나 푸름이나 어린이가는 '삶공부'와 '살림공부'와 '사랑공부'를 넉넉히 맞아들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시험공부도 할 수 있을 텐데, 시험공부만 하는 푸름이가 아니라, 삶도 살림도 사랑도 배울 수 있어야지 싶어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집안일도 함께 배우고, 집살림도 함께 익히며, 마을살림이나 마을일도 나란히 가르치고 배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서로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너그럽고 포근한 손길을 배울 때에 비로소 '맑게 푸른 사람'으로 자랄 만하리라 생각해요.

제가 충격을 받은 건 부모님과 제 삶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우리의 현대사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미군이 폭격을 안 했더라면, 만약 할아버지가 탄 배가 침몰하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풀빵 장사를 안 했다면, 저는 태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53쪽/이계삼)

청소년 인문책을 읽는 동안 나 스스로 푸름이 마음이 되어 봅니다. 나는 열서너 살이나 열예닐곱 살 푸름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에 붙들리던 지난날, '나는 나답게 살겠어' 하는 다짐은 해 본 적이 있으나 이 길이 막상 어떤 길이 될는지 그림을 그리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했고, '입시공부'에 휘둘리는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새벽부터 밤까지 교실에 갇혀 지내는 나날이니 '앞날'이나 '앞길'이나 '앞삶'을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푸름이는 어떤 하루를 보낼까요? 오늘날 푸름이도 새벽부터 밤까지 교실에 갇혀서 입시공부만 해야 할까요? 밤까지 붙드는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은 없더라도 학원에 갇혀야 하는 얼거리일까요? 학원에서 풀려나더라도 마음 놓고 쉬거나 놀거나 꿈을 그릴 만한 겨를은 없는 굴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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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일을 하는 손을 가꿀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청소년 자리에 있는 동안 입시 말고 삶을 즐거이 배우고 돌아볼 수 있다면, 우리 스스로 씩씩하고 고운 손으로 살림을 짓는 길을 열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 최종규


걸어 다니던 시절에는 세상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풍경을 느끼고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는 자연이든 인간이든 그냥 지나칩니다. (62쪽/이계삼)

내가 나를 소중하게 대해야 다른 사람과 관계도 잘 맺게 돼요. (170쪽/노을이)

중·고등학교 푸름이나 초등학교 어린이가 교과서 공부만 하지 말고,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교실 같은 '인문 강좌'를 널리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더욱 자주 '교사 아닌 어른'을, '우리 사회에서 저마다 새로운 길을 닦는 즐거운 살림꾼 어른'을 모셔서 조촐하게 '이야기 교실'을 꾸릴 수 있기를 바라요.

집에서 살림을 짓는 어른을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호미를 쥐어 밭을 매는 할매를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그물을 던져 고기를 낚는 어른을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나무를 깎아 집을 짓는 할배를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저잣거리에서 나물을 파는 할매를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시골버스를 모는 아재를 모셔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빌어요.

어린이와 푸름이 모두 꿈을 따스히 품고서 사랑으로 삶을 지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그냥 사는 하루'가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짓는 하루'가 되어서, 언제나 스스로 기운찬 웃음으로 '삶을 짓는 사람'으로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에요. 삶과 살림과 사랑을 함께 공부하면서 '나부터 아끼'고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살가운 손길'로 자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덧붙이는 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교실_삶
(홍세화·이계삼·조광제·안철환·박영희·노을이·정숙영 / 철수와영희 펴냄 / 2016.9.30. / 13000원)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 삶

홍세화 외 지음,
철수와영희, 2016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길담서원 #청소년인문 #청소년책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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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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