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 옆의 남자 "민중에게 돌아가자"

[미완의 민주주의-그대의 목소리를 찾아라] 코넬 웨스트

등록 2016.09.30 21:03수정 2016.09.3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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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힘의 논리로 억압하지 않는 생명의 순환을 이어가고자 세계의 지성들을 만난 것으로 2013년 책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를 펴냈다. 4년이란 시간이 지난 오늘날 더욱 다가오는 석학의 조언이다. 내일은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희망하기에 당시 공개되지 않은 영상을 공개하며 독자들과 소통하고자 글을 쓴다. [편집자말]
4년 전 가을, 뉴욕 센트럴 파크를 뒤덮은 나뭇잎 속으로 붉은 물이 퍼져나갈 때였다. 미국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철학자이자 활동가인 코넬 웨스트를 만나러 맨해튼을 찾았다. 당시 지구촌엔 선거 열풍이 일었고, 태평양을 사이에 둔 한국과 미국에도 뜨겁게 불었다.

2012년 선거의 중심 이슈는 오늘의 미국 대선과 다름없이 경제였다. 선거 모토에 '경제 불평등'이란 문구로 정리되지 않았을 뿐 대중은 불안한 일자리와 위태로운 밥벌이에 성나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 보다 많은 이들이 세습화 되어가는 불평등한 경제 구조에 진저리친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고는 생존마저도 위협받는다는 팽배한 위기의식이다. 코넬은 나를 만나자마자 "한국 민중은 대단해요"라고 외쳤다. 정확한 발음으로 '민중'이라 했다. 그는 한국 노동자의 가치에 대해 상기시켰다.

"참으로 추악하고 악랄했던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한국의 민중은 허리를 곧게 펴고 쉼 없이 싸웠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자들은 현대사회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계급 중에서 가장 영웅적이고 용감한 이들이에요. 농촌에서 밀려나 도시로 모이자마자 하루아침에 산업화라는 번영을 창조했어요.

자신들을 지켜낼 보호구도 모색했습니다. 서로를 조직했고, 파업으로 저항하며 인간의 권리를 제도화했죠. 민주주의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선지적 기독교인들의 진실과도 통합니다. 고난받는 이들을 사랑하며 불의에 대항하고 세상 속으로 사랑과 정의를 실현해 내는 소명의식 말이죠. 한국의 민중 속에는 그런 풍부한 전통이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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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넬 웨스트 교수 ⓒ 안희경


그가 말하는 위대한 한국은 삼성과 LG라는 소비시장의 브랜드 네임 속에 있지 않았다. 이전에 만나온 석학들이 들려준 한국에 대한 경의와 다름없었다. 궁핍을 거둬내고 이룬 성장은 노동자들의 땀에서 나왔고, 그 주역들은 마침내 정의로움으로 일어나 민주화를 이뤘다는 찬사다.

'미국은 양당체제이기에 점점 보수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나의 비판에 그는 한 명의 무소속 진보 주지사를 소개했다. 바로 버니 샌더스였다. 월스트리트 자본의 힘 속으로 빨려 들어간 워싱턴의 정치를 열심히 일하는 이들의 편으로 돌려세우기 위해 삶을 바치는 이들이 버티고 있다면서.


그리고 2016년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온 버니 샌더스 옆에 서 있는 코넬 웨스트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주요 언론 토론에서 버니의 정책과 가치를 설파하는 코넬을 미국인들은 매주 브라운관 혹은 인터넷으로 만났다.

코넬 웨스트는 철학자이자 신학자이지만, 대중음악인이기도 하고, 영화인이기도 하다. <매트릭스2>를 감수했고, 출연하기도 한 그는 대중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하버드 최연소 교수 임용에 왕성한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천재적인 학자이지만, 대중 속에서 사회 구조의 어둠을 거둬내는데 헌신하는 민중 지도자이기도 하다.

문학과 예술, 역사를 넘나드는 그의 말은 유려하기 그지없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소리와 춤으로 삶의 면면을 예술로 승화시켜온 우리네 선조들처럼, 미국 민중들도 재즈와 블루스로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감싸 안았다. 코넬의 말 속에는 그런 유장한 멋이 깃들어있다. 그와의 인터뷰 전체를 영상으로 보이지 못함이 아쉽지만, 짧은 영상으로나마 그와 가슴으로 소통하길 기대해 본다.



"현실은 USA라 불리는 미 제국이 민주주의 속에서 위태로운 행보를 하며 깊은 쇠락에 빠져있다는 겁니다. 꼭대기에는 재벌 중심 경제, 소수가 국가를 주무르는 과두정치가 있죠. 중산층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워킹 푸어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직업은 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부부가 일해야만 생계를 꾸리고, 월급은 35년 동안 제자리에요. 미국의 평균 노동자는 35년 전과 같은 돈을 받습니다. 그런데, 꼭대기 사람들의 수입은 600% 증가했어요.

생산성은 올랐지만 월급은 안 올랐죠. 노동조합이 약해졌기 때문에. 노동자는 보호받지 못했어요.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500만 제조업 일자리가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이 체결된 후 미국을 빠져 나갔습니다. 지금은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TPP, Trans-Pacific Partnership), 나프타에 스테로이드를 주입한 거죠.

그 결과 일자리는 동쪽으로 떠났어요. 아시아죠. 다국적 기업이 미국을 떠났고, 일자리는 사라지고, 값싼 노동력을 찾아 지구 다른 편으로 갔습니다. 처음엔 멕시코, 라틴아메리카로 그 다음은 더 많이 아시아로 향합니다. 그 결과 문화는 데카당트(타락)해졌어요.

한국도 '부의 불평등'을 갖고 있어요. 한국만의 신자유주의 질서를 갖고 있죠. 잘 살고 있는 당신 위에 최상위 1%는 훨씬 더 매우 잘 사는 질서입니다. 중간 계층은 계속 지위가 추락하게 됩니다. 이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고 한국도 그 핵심적인 부분에 놓여 있습니다.

데카당트는 순각적인 쾌락에 사로잡혔다는 겁니다. 자극, 성적 충동, 유명인 모방에 빠진 거죠. 얄팍한 문화에요. 정작 중요한 일에는 관심 두지 못하도록 한눈 팔게 하는 문화적 공격이기에 몽유병자처럼 만들고, 무감각이 강요됩니다.

먼저 소비자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시민으로서 공익에 대해 관심 갖거나, 인간으로서 삶과 죽음의 문제, 슬픔, 환희에 대해 인식하기보다는요. 문화란 환희로움 없는 그저 쾌락을 추구하는 탐닉이 됐어요. 오로지 즐거움 뿐입니다. 지속하지 않는 쾌락, 그 속에 환희는 없죠. 하나의 즐거움을 누리면 또 다른 걸 원하고 또 다른 자극을 원하죠.

성적 충동을 얻으면, 또 다른 충동을 바라죠.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채워질 수 없는 거죠. 반면에 환희란 견뎌내는 겁니다. 환희는 영혼의 심연을 자릅니다. 반대로 즐거움은 항상 표면에서 놀아요.

이것이 바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위의 우울 속에 있는 이유입니다. 미국은 가장 높은 수치의 영아 사망률, 가장 높은 자살률, 가장 높은 수위의 집단 감금률, 가장 높은 수위의 불평등과 가장 높은 수위의 정신 질환과 우울증을 기록합니다.

우리는 현실을 알아차려야만 합니다. 더는 부정하며 살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이는 인식의 문제입니다. 알아차림의 문제이지요. 심리적, 도덕적, 정신적 자아를 성장시키는 문제입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견인되어 서로 손 맞잡고 가는 겁니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거리로 뛰쳐나가야 하고, 우리 중 일부는 감옥에도 가야 하고, 그리고 우리 중 누군가는 정치인들에게 압박을 가해야만 합니다. 누군가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되어야 해요.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민중을 이해했습니다.

오~ 아주 깊은 각성이죠. 약자들은(민중) 그들의 등을 곧추세우고, 정신 차리고, 깨닫고, 알아차린 다음 다른 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사랑'이 콱 박혀 있어야 하는 거예요.

우리는 위대해지는 것과 성공하는 것을 섞어놓거나 혼동합니다. 만약에 이 둘이 하나가 된다면 이는 마틴 루터 킹처럼 위대해지는 거예요. 위대한 사람은 타인을 위하는 사랑의 격을 갖고, 남을 돕고자 봉사하거나 타인을 위해 삽니다. 특히 민중을 위해서요. 약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부적응자, 고아, 홀로된 부인들, 아버지가 없는 가정, 어머니가 없는 가정...

성공은 물질적 번영이고, 높은 직위, 잘 나가는 직장이죠. 모든 사람이 우러러봅니다. 마치 당신은 공작인 것처럼 춤추듯 으스댑니다. 그러나 위대함이라는 것은 독수리 같은 거예요. 그대는 비상하지만, 아직 지상에 있는 다른 이들을 염려하는 거죠.

이제 우리는 어떻게 바꿔낼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어떻게 우리 사회를 탈바꿈시킬까요? 어떻게 하면 용감한 지도자를 더 갖게 될까요? 진실을 말하는 더 많은 시민을 가질 방법은요? 정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잘 살려고 큰돈을 벌기보다 말입니다.

바로 르네상스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르네상스를 가져와야 합니다. 사랑의 르네상스, 정의의 르네상스, 자비의 르네상스, 서로를 보살피는 르네상스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민감하게 느끼는 르네상스에요."

- 함께 하는 거죠.
"맞아요. 연대! 다시 민중 속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연대가 있는 그곳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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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넬 웨스트 ⓒ 안희경


코넬 웨스트에게 건넨 첫 질문은 그가 세상을 향해 내놓았던 한 구절의 문장에 대해서였다.

"I am a bluesman in the life of the mind, and a jazz man in the world of ideas(나는 마음의 세상에서는 블루스맨이고, 이상의 세계에서는 재즈맨이다)."

스스로를 표현하며 그 자신을 다스려온 말이다. 이후 한참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그 문장은 고단한 인간의 역사를 품은 대서사시로 펼쳐져 다가왔다. 이곳에 옮기지 못한 코넬과의 긴 대화를 응축할 수 있는 내용이기에 이 구절에 대한 코넬의 답을 옮겨 본다.

"이 뜻은 언더독(underdog, 약자), 그러니까 민중의 삶과 같은 겁니다. 우리 민중은 고난에 맞서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품격을 지키며, 인정 어린 마음을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소크라테스처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지켜가면서도, 예수처럼 사랑을 품는 거죠. 재즈맨처럼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줄도, 뒤로 물러설 줄도 알죠. 서로 부르고 응답하며 연주하는 재즈맨처럼요.

블루스맨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겁니다. 누구도 이 세상에서 그저 메아리로 살아가길 원하지 않아요. 누군가의 모방이 아니라 창조물이 되고 싶죠. 바로 블루스맨, 블루스우먼의 위대함입니다. 블루스맨은 세상 누구와도 다른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합니다. 베시 스미스처럼요. 그녀는 오로지 자신만의 목소리로 세상을 울렸어요. 자기 자신이 되고자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찾는다는 의미는 그때야 비로소 타인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북돋우고, 힘을 부여하는 거예요. 바로 블루스맨과 블루스우먼이 하는 일이죠.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 비록 어둠을 노래할지라도 우리는 어둠 속 빛을 보게 됩니다. 계속 싸워나가고, 계속 사고하고, 사랑하고, 웃고, 살아갈 힘이 올라옵니다. 우리에겐 이런 희망이 필요해요.

이는 낙관을 노래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블루스는 말해요. "난 너무 오랫동안 지쳐있어. 하지만 이제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 그래도 계속 계속 살아갈 거니까." 블루스는 또 이렇게 노래합니다. "엄마만이 날 사랑한다고 했죠. 하지만 엄마도 날 속이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얼굴에는 미소를 띱니다.

네, 우리는 계속 견디고, 지키고, 이겨내고, 저항해야 해요. 마음과 가슴 그리고 정신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랑, 지혜를 찾는 열정, 지혜로움 자체로 살아나야 하죠. 그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이념, 신념, 차이에 대해 활짝 열고 다가갈 수 있습니다. 알아차리고 깨어남으로써 타인과 만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빠른 길은 없습니다. 재즈맨과 블루스맨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변화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각자의 그 시간 속에... 그러하기에  우리는 조금 더 사려 깊어지고 정성 깃든 시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변화는 그 속에서 작은 기회나마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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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넬 웨스트 #민중 #부의 불평등 #안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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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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