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노태우보다 못한 박근혜

공권력에 의한 죽음에 대처하는 박근혜 정부-노태우 정부의 차이

등록 2016.09.29 21:31수정 2016.09.2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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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 손 닿게 하고 싶지 않다' 28일 오후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강제부검 영장을 법원이 발부한 가운데 고인의 유가족과 투쟁본부측은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딸인 백도라지씨는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이 절대로 닿게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고인의 부인과 딸인 백민주화, 백도라지씨. ⓒ 권우성


321일.

농민 백남기씨가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흐른 시간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그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거나 책임을 지지 않고 버틴 시간이기도 하다.

사고 당시 경찰 총수였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지난 12일 백남기 농민 청문회에서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백남기씨가 지난 25일 끝내 세상을 떠났지만, 박근혜 정부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박근혜 정부의 태도가 공안 통치로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노태우 정부 때보다 못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1991년 4월 대학생 강경대씨가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자, 노태우 정부는 민심이 들끓는 것을 막기 위해 대통령이 사과하고 국무총리가 옷을 벗었다. 

강경대씨가 쓰러진 후 25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사회는 조금씩 민주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공권력에 의한 죽음을 대하는 대통령·국무총리·여당 대표·검찰의 태도는 오히려 후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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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 머리기사로 강경대씨 사망 사건을 다룬 <한겨레신문> 1991년 4월 27일치 신문. ⓒ <한겨레>


[대통령] 노태우 "사과" - 박근혜 "불법 폭력 엄단"

1991년 4월 26일 대학생 강경대씨가 목숨을 잃자, 안응모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은 27일 기자회견에서 대국민사과와 함께 사의를 나타냈다. 노태우 대통령은 28일 안응모 장관을 경질하며 유감의 뜻을 표했다.


노 대통령은 사건 발생 일주일 뒤인 5월 2일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국민과 유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내비쳤다. 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슬픔과 고통을 안겨준 데 대해 다시 한 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강군의 죽음은 심히 유감된 일로, 유가족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김영삼 대표에게 "이런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경찰 운용방법을 개선할 일이 있다면 개선토록 하겠다", "전경 문제도 개선할 부분이 있다면 민자당 주도 하에 대책을 마련하라"라고 지시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민중총궐기 집회의 불법·폭력성만 강조했다. 백씨에 대한 사과는커녕 그를 위로하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백씨가 쓰러진 뒤 10일이 지난 11월 24일 국무회의에서 민중총궐기 집회를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이 집회를 불법폭력 행위라고 규정한 뒤 "대한민국의 법치를 부정하고 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특히 복면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IS(이슬람국가)도 그렇게 지금 하고 있지 않느냐"라면서, 집회 참가자를 테러리스트에 비유하기도 했다.

또한 "배후에서 불법을 조종하고,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해서 불법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무총리] 노재봉 '사퇴' - 황교안 '자리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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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답변 중인 황교안 국무총리. ⓒ 유성호


강경대씨 사망 나흘 후에 열린 치안관계 장관회의에서 노재봉 국무총리는 국민에게 사과했다. "숨진 강경대군의 부모·형제·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통탄스런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심심한 사죄와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하며 삼가 강군의 명복을 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각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면서,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 행사를 근절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여야 모두에서 내각 사퇴 주장이 터져 나왔고, 노 총리는 결국 사건 발생 27일 만인 5월 22일 민심 수습을 위해 노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취임 120일 만의 일이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민중총궐기 집회를 불법 폭력 시위로 규정했다. 백씨가 쓰러지고 사흘이 지난 11월 17일 국무회의에서 "사전에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이번 불법·폭력시위는 국격을 떨어뜨리는 후진적 행태임과 동시에 우리 법질서와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므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7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이 황 총리에게 백남기씨 병문안과 그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지만, 황 총리는 이를 거부했다. 황 총리는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총애를 받고 있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 때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했고, 지난해 6월부터는 국무총리로서 국정을 이끌고 있다.

[여당 대표] 김영삼 "진실 공개" - 김무성 "불법 무도한 세력"

여당 대표의 태도도 크게 달랐다.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는 강경대씨 사건 발행 사흘 뒤에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여러분께 사과드린다, 우리당으로서는 이번 사건을 은폐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진실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이어 "내무부 장관을 경질했듯이 책임질 사람에게는 책임을 묻고 있으며 이와 함께 이런 불행한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면에서도 최선의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백남기씨 사건 발생 이틀 후에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공권력이 이런 불법 무도한 세력들에게 유린되는 무능하고 나약한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경찰청장을 비롯한 관계당국은 우리 사회에서 이런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엄격한 법집행을 하는 데에 그 직을 걸어야한다"라고 강조했다.

[검찰] 1991년엔 "부검 포기", 2016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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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 운구 호위하는 시민들 지난해 민중총궐기 도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317일 만에 사망한 가운데 지난 25일 오후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을 출발해 장례식장으로 운구하고 있다. 시민, 학생들이 경찰의 강제부검에 대비해 운구차량을 에워싼 채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 권우성


두 사건에 대한 검찰의 대처에도 큰 차이가 있다. 강경대씨가 숨진 다음 날, 검찰은 강경대씨를 때린 전경을 상대로 조사에 나섰고, 3일 만에 5명을 구속했다. 검찰은 5월 1일 사체육안검시와 컴퓨터 단층 촬영에 나섰다. 그 결과 검찰 쪽 부검의와 유족 쪽 의사 모두 외부 가격을 죽음의 원인을 지목했다. 이후 검찰은 부검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백남기씨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경찰의 과잉진압 수사를 사실상 외면했다. 검찰과 경찰은 사건 발생 317일 만에 백씨가 세상을 떠나자 그제야 부검을 하겠다고 나섰다. 수사기관에 대한 큰 불신을 갖고 있는 유가족은 부검을 반대하고 있다.

백남기씨의 딸 백민주화씨는 29일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규탄 시국선언'에서 "경찰에 아버지 시신을 넘기는 것을 반대한다"면서 "우리 유가족은 사인이 명확한 아버지의 시신을 아버지를 죽인 경찰에 넘기는 일은 절대로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백남기 #강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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