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국 못먹던 그녀, 무엇이 그를 바꾸었을까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1] 역사를 만들어 가는 첫 걸음, 지동벽화마을 이야기

등록 2016.09.30 17:50수정 2016.10.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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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생명울배움터는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는 생명의 교육을 일구기 위한 동력을 얻기 위해 '나' 자신부터 교육하고자 '공적 글쓰기'를 주제로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었습니다. 올해는 '역사'를 공부합니다.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이 땅이 나아갈 길에 대해 다시 한 번 수렴과 응집의 점을 찍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떤 걸음을 걸어왔는지, 지난 과거를 다시 돌아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가늠하려 합니다.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 '역사-과거 현재 미래'는 9월 24일부터 2017년 1월 21일까지 총 19회로 진행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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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칭찬에 들뜬 마음으로 벽화에 색을 입힌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5년 전 시작된 지동마을 벽화작업, 지금도 진행 중

어두운 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벽화가 말을 건넨다. 벽화가 건네는 한마디가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손을 붙든다. 덕분에 골목이 깨끗해졌다. 말끔해진 골목에서 들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 사진 찍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집 앞을 치우는 주민들. 벽화가 살아 움직여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킨 수원 지동벽화마을의 이야기다.

5년 전 시작된 지동마을의 벽화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벽화는 작은 벽 하나씩하나씩 마을을 천천히 덮고 있다. 온 마을로 퍼져 가는 벽화에 힘을 보탠 손길도 다양하다. 어린이집 아이들, 대기업 자원봉사팀, 마을의 어르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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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가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 명권영


9월 24일 화창한 토요일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의 첫 시간, 지동벽화마을을 찾았다. 역사 현장 탐방지가 역사 유적지가 아닌 벽화마을이라니. 지동 주변 수원 화성의 역사를 공부하러 갔나 생각할 수도 있다.

벽화마을에서 벽화를 봤을 뿐인데 벽화는 살아 움직여, 사람이 서로를 변화시킨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나라에 벽화 마을이 한두 개가 아니다. 수없이 많은 벽화마을이 있고, 심지어 소음 때문에 주민이 직접 벽화를 지워버리는 사건도 일어나는 마당에, 지동의 벽화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일까.


지동벽화마을의 총괄작가인 유순혜 한신대 교수에게서 그 비밀을 들어 보았다. 유순혜 교수와의 첫 만남은 수원제일교회의 노을빛 전망대와 갤러리에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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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는 나선형 계단을 돌고 돌아 올라갈 수 있다 ⓒ 강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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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오르니 화성을 비롯해 수원 시내가 다 보인다 ⓒ 강한종


노을빛 전망대는 수원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가 생긴 지는 5년이 채 안 되지만 수원의 명소로 꼽힌다.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수원제일교회가 지역 사회를 위해 교회 종탑을 전망대 및 갤러리로 단장하려 기획했다.

갤러리 중앙 기둥에는 '수원 화성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유순혜 교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망대와 갤러리 조성 사업이 인연이 되어, 유 교수는 지동 마을의 벽화 사업 책임까지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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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을 만든 사람들’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설명하는 유순혜 교수 ⓒ 강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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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을 만든 사람들’에는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 강한종


멀리서 예뻤던 마을, 막상 다가가니 심한 하수구 냄새

유 교수는 지동마을에 대한 첫 인상을 이렇게 회고한다.

"12월 24일, 하얗게 눈이 온 날이었어요. 오전 11시쯤 마을에 도착했어요. 그때는 벽화 작업을 할 계획은 없었는데 성곽과 마을에 눈이 쌓인 모습이 너무 예뻤어요. 눈이 올 때마다 가끔씩 전망대 위에 올라가 지동마을의 전경을 보는데, 그날처럼 예뻤던 적은 없어요."

그러나 실제로 내려가 본 지동마을은 기대와 달랐다.

"막상 마을에 내려가 보니, 하수구 냄새가 너무 심하고 지저분했어요. 책임 맡기로 한 걸 바로 후회했죠. 그냥 1년만 하고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니, 1년만 적당히 하려 했어요. 그때는 나에게만 정신이 집중되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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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벽화마을 이야기를 전해 주는 유순혜 교수 ⓒ 강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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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혜 교수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참석자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그렇게 시작한 벽화 작업인데 설상가상 주민들까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재개발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주민들은 마을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벽화를 싫어했다. 문화재보호법으로 재개발을 못하고 재산상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에게 벽화는 그저 눈엣가시였다.

유 교수는 속칭 잘 나가는 작가였다. 방송국에서 최고 대우를 받으며 20년가량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해 왔다. 출판계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그녀가 참여한 책이 프랑스 유명 출판사와 출간 계약도 맺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 그녀에게, 환영도 받지 못한 채 뙤약볕에서 땀을 흘리며 벽화를 그리는 것은, 무의미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조금씩 변화가 느껴졌다.

"7~8개월 후 주민들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인사를 받아 주는 어르신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수고한다고 노란색 양은 주전자에 믹스커피 20봉지를 타 주시는 할머니도 계셨어요. 저는 믹스커피를 마시지 않거든요. 1년이 지나니 이곳저곳에서 지붕 고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이렇게 벽화를 그리는 걸 보니 이 마을은 진짜 재개발 안 하는구나 싶어, 스스로 지붕을 고치는 집이 10곳은 됐어요. 3년이 지나고 나서 주민센터와 경찰서에 확인해 보니, 쓰레기 무단투기와 범죄율까지 줄어들었더라구요."

매일 흘린 땀방울이 결실을 맺었다. 서로의 마음이 통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민들 마음이 열리는 걸 느꼈고, 사람의 변화를 발견했다. 그녀도 신기했다. 그저 벽화 하나 그렸을 뿐인데, 사람에서 출발해 마을 전체가 변해 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결국 마을의 역사는 돈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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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벽화마을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는 참석자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마을에서 만난 분들에게 벽화 작업 계획을 알려 주잖아요. '어르신 경로당은 내년에 할 거예요.' 이렇게. 그러다 보니 벽화를 그리는 작업은 이제 나와 주민의 약속이 되어 버렸어요. 그게 내가 도망가지 못한 이유예요."

순댓국이라면 입에 대지도 못하던 그녀가 이제 지동시장의 순댓국을 먹는다. 즐기진 않지만 맛은 좀 알겠단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정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변화는 홀로 이뤄지지 않는다. 변화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의 약속은 다시 그녀를 변화시켰다.

그녀는 지동마을과의 만남이 단순한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고, 이 삶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작년에는 수원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매일 지동마을 한 편에서 주민들을 위한 벽화를 하나씩 완성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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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토요일 오후 기분좋게 마을을 거닐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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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구석 구석을 거닐며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하다 ⓒ 김종우


소박한 벽화들, 시간이 갈수록 벽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이 늘어나다

유순혜 교수의 이야기가 끝나고, 모두 함께 직접 지동마을을 거닐었다. 실제 눈으로 확인한 벽화들은 소박했다. 유 교수의 표현 그대로 '벽지 같은 벽화'였다. 전문 작가의 솜씨로 화려하게 뽐내는 벽화가 아닌, 누구나 붓을 잡고 색칠할 수 있는 모양으로 이뤄진 벽화.

다른 벽화마을에 비해 화려함은 떨어질지 몰라도, 편안하고 밝은 표정으로 벽화는 이 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 집도 벽화 좀 그려 달라는 요청이 늘어나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벽지 같은 지동마을의 벽화를 감상하던 중 포인트 벽지처럼 의도하고 그렸다는 '흥부와 놀부' 벽화 앞에 머물렀다. 골목을 깨끗하게 만들어 내고 사람을 변화시킨 그 벽화들이 이제 이곳에서 어떤 역사를 만들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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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와 놀부 벽화 앞에서 흥부의 자식을 표현해보는 아이들 ⓒ 강한종


목욕탕이 문을 닫고 난 후 폐가로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활용하여 만든 창룡마을창작센터. 이곳은 카페, 공방, 공구 도서관 등이 있어 주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마을의 소통 공간이다. 마침 공방에는 주민 몇 분이 모여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비록 적은 숫자이지만, 마치 유 교수의 '수원 화성을 만드는 사람들' 속에서 튀어나온 이들 같았다. 화성을 건축하고 이 땅에 모여들었던 사람들.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땀 흘리고 수고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마을의 새로운 걸음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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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마을의 소통공간인 창룡마을창작센터 ⓒ 강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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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마을창작센터의 공방에서 작업 중인 주민들 ⓒ 강한종


잠깐 만났지만 지동마을은 이제 불만 가득하게 그저 재개발만을 요구하던 그 마을이 아니었다. 과거 화성 건축 때부터 내려온 지동의 역사와 더불어 새롭게 쓰여지는 오늘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 갈 내일의 이야기가 뒤섞여 살아 움직이는 마을이었다.

고 신영복 선생님은 '공부란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가슴에서 발로 가는 먼 여행'이라 하셨는데, 우리는 지동의 벽화마을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경험하고 느끼는 여행을 하고 왔으니. 이보다 더 생생한 역사 공부가 어디 있겠는가.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이뤄지는 벽화 작업 현장에도 함께했다. 원래 계획은 진행되는 벽화 작업을 구경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배움터경당 아이들의 눈빛에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있다며 즉석에서 벽화를 그려 보게 했다. 삼삼오오 골목 앞에 쪼그려 앉아, 꽃잎에 색을 칠하며 지동마을이 열어 갈 미래의 역사에 동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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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벽화를 그리며 지동마을의 미래에 동참해 본다 ⓒ 강한종


전망대와 갤러리를 돌아보고, 유순혜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벽화마을을 거닐다 직접 벽화도 그려 보고. 꽉 찬 하루 여정이었다. 이 여정은 지동시장의 순댓국을 함께 먹으며 마무리했다. 시끌벅적한 지동시장에 둘러앉아 순댓국에 입도 못 대던 한 사람을 변화시킨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한다.

여기, 사람이 있다. 미세한 역사의 오늘, 사람이 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작은 노력일지 모르나, 누군가에게는 매우 절실했던 하루하루의 땀방울이 계기가 되어 마음이 교감을 한다. 그 작은 교감은 점차 소용돌이쳐 우리의 큰 역사까지 치닫는다.

흔히 역사 공부를 한다고 하면,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큰 사건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물론 큰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를 이루고 있는 것은, 매일 우리 옆에서 흘리는 한 명 한 명의 작은 땀방울이다. 그 작고 작은 땀방울을 만나고 간다. 그 헌신의 땀방울이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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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역사에 사람이 있음을 기억한다 ⓒ 강한종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카페로 오시면 지동벽화마을을 함께 다녀온 이들의 소감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바로가기(http://cafe.daum.net/kyungdang/coIz/60)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했습니다.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역사 #지동벽화마을 #유순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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