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다고 비판받던 노무현, 금기 깨고 싶어했다"

[인터뷰] '대통령의 말하기' 쓴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등록 2016.10.04 11:24수정 2016.10.0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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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 이희훈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의 청와대 마지막 직함이었던 연설기획비서관에 '말과 글 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을 뻔했다. 노 전 대통령은 애초 이런 아이디어를 냈으나, 어색하다는 반대 때문에 결국 '공무원티' 물씬한 이름으로 낙찰됐다.

윤 전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이 1993년 <여보 날 좀 도와줘>라는 책을 쓸 때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2000년에 대선캠프인 '금강캠프'에 결합한 뒤 두 차례 청와대 대변인과 제1부속실장, 연설기획비서관으로 일했다. 제1부속실장은 대통령의 사적 일정을 담당하는 자리이지만, 그는 대통령의 말을 기록하는 일까지 겸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500여 권의 휴대용 포켓수첩, 100권의 업무수첩, 1400여 개의 한글파일을 만들었고,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에는 2009년 5월에 서거할 때까지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을 준비했다.

이를 토대로 2014년에 '기록', 2015년에 '바보, 산을 옮기다'에 이어 지난 7월에는 '대통령의 말하기'를 출간했다. 명칭이 무엇이든 2000년 이후의 그는 결국 '노무현의 말과 글 비서관'인 셈이다.

지난 달 29일 윤 전 대변인을 만나  '노무현의 말'과 '박근혜의 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 '대통령의 말하기' 책이 서점 정치분야가 아니라 자기계발서 코너에 배치돼 있더라.
"대통령님 숙제 중에 '말하기 정리'가 있었는데, 출판사에서 이걸 어록집이 아니라 자기계발서 형태로 내보자고 했다. 그냥 내 아이디어로 했으면 '노무현의 말' 이런 식으로 했을 거다. 처음에는 의아하기도 했는데, 지금 보면 이게 잘 된 것 같다."

- 이 책이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내 준 숙제였다?
"말에 대해 시비가 많이 걸리니까 한 번 정리를 해달라는 말씀이 있었다."

- 아직 숙제가 많이 남았나?
"2007년 4월에 연설기획비서관을 마지막으로 청와대를 나왔는데 7월에 부르시더라. 그 다음해인 2008년 총선 출마를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대통령께서 '출마하지 말라'고 딱 자르면서, '나 퇴임 후에 함께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가서 내 생각과 철학을 책으로 엮어내는 일을 하세'라고 하셨다. 내 캐릭터가 정치에 안 맞는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2009년 5월 23일) 서거하시기 전 5월 19일에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뵀다. 봉하에 있던 집필팀을 해체하면서 그 때까지 준비해놓은 회고록의 뼈대를 보여주셨는데, '이제 좀 쉬시고 제가 초안을 만들어오겠다'고 한 그 상태에서 돌아가셨다. 그 뼈대만을 갖고 나온 책이 '성공과 좌절-노무현 대통령 못 다 쓴 회고록'(학고재) 이었다.

그래서 2019년 대통령님 서거 10주기때 맞춰서 2권 정도 분량으로 평전을 내려고 한다. 이게 제일 큰 숙제다."

"서거 10주기인 2019년에 '노무현 평전' 낼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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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 이희훈


-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 같다.
"대통령님의 말을 기록했다는 게 큰 자산인 동시에 큰 부담이다. 대통령님 서거 뒤에 (2011년 뇌출혈로) 몸도 안 좋고 마음도 힘들어서, 세상에 안 나오려는 생각도 있었다. 내가 뭘 잘했다고 언론에 나가나, 이런 생각이었다. 제가 쓰는 책들은 사실 대통령님 책이다. 대통령님 말씀을 온전히 전할 때까지는 내 목소리는 내지 말자는 생각이다."

- 이 책은 자기계발서답게(웃음) 말을 잘하기 위한 노하우 23개 요점 정리를 해놨다.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소신이다. 소신이 있어야, 겉만 번지르르 한 말재주 말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잘 살아야 한다. 그래야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다. 대통령님이 '토론에 질 것 같은 행동을 했으면, 잘못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토론에 나가지 말라'는 얘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행동을 잘못해놓고 토론 나가서 이기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노무현 최고의 연설'을 꼽는다면.
"2001년 12월의 대권도전 선언 연설이다. '600년 기회주의 역사 청산'을 내세웠는데, 닥쳐서 준비한 게 아니라 그 이전 1년 반 전부터 강연에서 했던 얘기들을 종합했다. 콘텐츠, 연설기법, 현장분위기가 모두 좋았다. 대중연설 말고 강연으로는 이 책 끝에 붙여놓은 2005년 11월의 신임 사무관 대상 특강을 꼽고 싶다. 밖으로는 많이 안 알려져 있는데, 제게도 인상적일 정도로 좋은 강연이었다."

- 노 전 대통령의 말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많았다. 대통령 스스로도 "말과 태도에서 품위가 배어나는 그런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뼈아프게 생각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과 글' 참모로서 아쉬운 대목이 있다면?
"'말이 많다', '표현이 대통령답지 않다' 이런 비판이었는데, 민주주의 시대 대통령은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설득하려 하고 들으려고 하는 장이 많았다는 건데, 그만큼 일을 많이 한 것 아닌가. 말이 많았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지금처럼 말이 없는 시대보다 소통하려는 노력이 훨씬 컸다. 지금처럼 집권자가 자세하게 말하려 하지 않고 소통하려 하지 않는 게 더 문제 아닌가. 소통하지 않으려는 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가 아닌 것 아닌가.

애드리브로 나오는 표현이 크게 문제가 되곤 했는데, 설득력을 높이려는 현장의 언어가 일으킨 오해라는 측면이 있다. 대통령의 언어가 따로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서민과 대중의 언어로 얘기하겠다, 금기를 깨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셨다."

"노무현이 부러워한 '말 잘하는 정치인'은 김대중"

- 노 전 대통령이 부러워한 '말 잘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대통령께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말 잘하는 '김대중파'와 글 잘 쓰는 '리영희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것 같은데, 누가 더 영향력이 클까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인권변호사가 되는 과정에서 리영희 선생 책을 많이 보셨다. 대통령님은 말도 중요하지만 오래 남는다는 점에서 글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신 것 같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을 많이 아끼셨고, 저도 그 덕을 본 것 같다.

(퇴임 후에) 봉하마을에서 한 방문객 인사도 미리 많이 준비하셨다. 단순한 인사를 위한 인사가 아니라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방문객 인사를 마친 뒤에 복기하고 표현도 가다듬었고, 그것도 책으로 낼 생각을 하셨다. 지금 노무현재단에서 방문객인사를 전부 풀어서 파일로 만들었는데, 이것도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

- 만약 노 전 대통령이 이 책을 봤다면 뭐라고 할 것 같은가.
"왜 자기계발서로 냈냐고 하셨을 것 같기도 하다.(웃음) 그는 굉장히 정통파다. 선거포스터나 홍보들도 사진 시원하게 넣어서 이미지 중심으로 접근하는 건 다 거부했다. 재미는 좀 없더라도 콘텐츠 중심으로 내용을 많이 넣는 걸 원하셨다.

대통령 재임 때는 물론이고 그 이전 내용까지 안배하려고 노력했다. 또 말하는 방법과 스타일뿐 아니라 대통령님의 생각과 철학을 전달할 수 있는 사례를 많이 뽑았다. 내용에 대해서는 만족하실 것 같다."

"정치인은 국민이 듣고 싶은 말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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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1차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중요한데 그게 잘 안 보인다. 그리고 말을 잘 한다, 못 한다 그 자체보다 콘텐츠가 중요한데, 그 콘텐츠가 느껴지지 않는다." ⓒ 이희훈


- 정치인은 국민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하나.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노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기 위한 말을 하다가 대통령이 된 게 아니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이를 실천하다가 시대정신과 맞아서 대통령이 된 분이다. 정치인이라면 국민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드러내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데 국민이 이런 말을 원한다고 해서 그렇게 따라가면, 상황에 따라 말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 아닌가."

-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평가한다면?
"1차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중요한데 그게 잘 안 보인다. 그리고 말을 잘 한다, 못 한다 그 자체보다 콘텐츠가 중요한데, 그 콘텐츠가 느껴지지 않는다."

- 요즘 건강은 어떤가. 내년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 계획이 있나.
"많이 좋아졌고 많이 밝아진 것 같다. 이 책 톤도 그렇고, 강연 때 청중들이 제가 많이 웃는다고 하신다. 내년에 정권교체를 위해 필요한 일이 있다면 할 생각이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연설문을 데스킹했고 후보수락 연설문은 직접 쓰기도 했는데, 이번 대선에서도 누가 제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그런 역할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윤태영 #대통령의 말하기 #노무현 #박근혜 #연설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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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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