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만 아는 '한문' 불교의식? 이젠 바꿔야 할 때

한글날을 맞아 역촌중앙시장 열린선원장 법현스님을 만나다

등록 2016.10.08 16:08수정 2016.10.0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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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8일 오후 8시 3분]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스님의 물건>이란 책을 받았다. 책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수행자 열여섯 분의 스님들이 각각 내세울 만한 '물건' 또는 의미 깊게 간직하고 있는 '물건'의 유래, 사연과 더불어 스님들의 수행 과정을 소개하는 흥미로운 대담으로 이뤄져있다.
 
책장을 넘기다가 서울 열린선원장(서울 은평구 갈현동 역촌중앙시장) 법현스님의 '모든 불자들의 바람, 윤회금지'편에서 시선이 멈췄다. 법현스님의 물건은 '윤회금지'라고 쓴 도로표지판 모양의 물건이었다. 스님이 둥근 원형의 '윤회금지' 표지판을 양 팔에 들고 어리석은 인간의 윤회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실려 있었다. 하지만 정작 기자가 법현스님에 대한 글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던 것은 스님의 우리말 사랑에 관한 부분이었다.
 
"법현스님은 각종 불교 의식의 한글화를 추진하고 있다. 2010년에는 열린선원 자체적으로 <한글법요집>을 발간해 신도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라는 구절에 시선이 꼽힌 것이었다. 마침 한글날도 다가오고 있어 '옳다구나, 이거다' 싶어 대뜸 열린선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스님과 대담을 하고 싶다는 기자의 질문에 스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님은 강연과 대학 강의 방송일, 각종 사회단체 일 등으로 바쁜 분이라서 대담이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선뜻 시간을 허락해주어 지난 5일 역촌중앙시장 안 '저잣거리'에 있는 열린선원을 찾았다. 역촌중앙시장의 낡은 건물 2층에 세 들어 있는 열린선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독교 교회 앞을 지나 길고 좁은 복도를 거쳐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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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사랑의 남다른 실천을 하고 있는 열린선원장 법현스님 ⓒ 이윤옥


"차 한 잔 드시죠."

스님은 단정한 다탁 앞에 방석을 놓고 기자에게 봉숭아색의 붉고 고운 빛깔의 천일홍차를 내밀었다.

"실은 엊저녁 몽골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 텐데 싶어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스님은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의 질문이 나가기도 전에 '자랑스러운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는 불교의식도 우리말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불교의식이 스님들만의 것으로 국한되다보니 한문과 인도말로 된 의식 일변도여서 불자들이 따라 하기 어려웠습니다. 설사 따라하더라도 그 깊은 내용을 모르기에 초하루 등 거의 모든 법회에서 신도들은 겨우 천수경이나 읽고 나서 언제 절을 해야 하는지도 몰라 우물쭈물 할뿐더러 스님이 읊어대는 알아듣지 못하는 염불소리를 지루하게 기다리기 일쑤지요.

그러다가 우리말로 주소와 이름을 불러줄 때에 비로소 '소통이 되는 듯' 불전에 절을 하고 그리고 공양한 뒤 집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다 보니 남자들은 아예 법당에 들어오지도 않고 절 밖이나 법당 밖에서 서성이는 지경입니다."


오호라! 스님의 '우리말 사랑'이 이곳에 숨어 있을 줄이야. 사실 기자도 얼마 전 친척의 49재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도의 모 절 법당을 찾은 적이 있다. 법당에서 의식이 시작되었지만 스님의 독경과 염불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죽은 이를 위한 명복을 비는 의식이려니 하고 합장하고 있었지만 슬슬 염불소리가 외람되게도 '지루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만일 스님의 <한글법요집>으로 집전되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의식에 동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개선해보고자 법현스님은 <한글법요집>을 만들었다고 했다. 대담을 시작하기 전 스님은 기자에게 빨간 양장본의 <한글법요집>을 건넸다. 책을 펼쳐보니 모두 알기 쉬운 한글로 되어 있었다. 물론 뜻도 명료했다. 법당에서 이뤄지는 모든 독송과 염불 의식(儀式)이 법현스님이 지은 책대로 이뤄진다면 딱히 어렵거나 지루할 일이 없을 듯했다. 지루하기는커녕 아무 걸림없이 귀에 쏙쏙 들어와서 스님의 독경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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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현스님이 우리말로 풀어 알기 쉽게 한 '한글법요집' ⓒ 법현스님


"극락교주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절)" "관음 세지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절)"
"인로왕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절)"

이는  '상용영반(常用靈飯, 62쪽) 곧 영혼에게 올리는 의식' 편 첫 줄에 나오는 말이다. (절)이라고 써놓은 것은 이 부분에서 절을 하라는 친절한 안내이다.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법당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은 이 안내글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를 금방 알 것이다. (절)이라는 대목에서 (절)을 올리면 되기 때문에 우물쭈물 옆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청혼(請魂)' 편은 더욱 알기 쉽게 되어 있다. '청혼(請魂)'이란 말 그대로 혼을 부르는 의식이다.

"(앞줄임) *재를 맞이한 천도재자 ** 등은 지성으로 선망 **영가를 청하나이다. *재를 맞이한 천도재자** 등은 지성으로 청하옵는 선망 **영가와 먼저 가신 조상들과 형제, 자매, 조카, 손주 등 친족들과 이 도량 창건 이래 불사에 동참한 모든 이들과 유주, 무주의 외로운 영혼들도 함께 청하나이다...(중간 줄임)... 신령스런 성품 깨침 미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운데 가을 못 계수나무 그림자 차가워라, 요령 목탁소리 깨침의 길 열어주니 저승 떠나오소서...(끝 줄임)"

<한글법요집>이 중요한 점은 바로 법당에 함께 참석한 사람들이 스님의 독경을 알아듣고 마음을 함께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 앉아서 한 사람은 독경을 하고 다른 사람은 의미를 몰라 지루하다 못해 졸리기라고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물과 기름처럼 도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싶다.
 
물론 어떤 이가 '스님의 염불이나 독경은 승려의 고유 영역이므로 신도들이 알 필요는 없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또한 '그저 신도들은 스님의 염불이나 독경을 들으면 그만이다'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법현스님 만큼은 생각이 다르다. 자신의 염불이나 독경 등이 의식(儀式)에서 쓰일 때, 신도들도 그 의미를 알게 하고 싶은 마음이 다른 점이다.   
 
스님의 말은 이어졌다.

"각 종단 나름의 여러 선지식들이 한글법요식을 구성하여 신도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있지만 뜻글자인 한문을 풀어 놓으니 소리글자인 한글로는 글자 수가 늘어나 늘어지기도 하고 맛이 덜 난다고들 한다. 어떤 경우는 재가자라 할지라도 불자들의 조상들에 대하여 반말로 진행하도록 하여 어쩌면 불경스러운 의식이 되기도 한다."

스님은 기왕에 만들어 놓은 '한글법요식' 책이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물론 한자로 된 불경(佛經)을 한글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오랜 기간 한자음으로 사용해온 불경을 소리글인 한글로 바꿔 의식에 이용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렇다고 '신도들이 알 수 없는 염불'을 계속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여겨져 법현스님이 스스로 실천에 옮긴 첫 번째 작업이 <혼자서 하는 기도법>이고 두 번째 작업이 <한글법요집>이다. 법현스님의 이 책은 '옴 살바 반자 스바하(공양하는 참된 말씀)'과 같은 진언(眞言)만 빼고는 거의 모두 한글로 번역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물론 단순한 한글화가 아니라 의미를 되새긴 한글화라는 점이 중요하다.
 
다른 한글법요집과의 뚜렷한 차이는, 의식 집전 때에 담당 스님만 알게 되어있는 부분까지도 한글화한 점이다. 또한 한글 번역상 글자 수가 늘어나 구성이 길게 풀어져 운율에 맞지 않는 부분은 한글화를 하되 4·4 조나 3·3조, 4·3로 끊어 리듬을 살렸다. 중요한 것은 "필요에 따라 법주나 바라지의 구분에 준해서 나누어 할 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스님이 이끌어 주는 지도자로서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이기에 구태여 승속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의식을 집전 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입니다. 불가(佛家)에서 쓰는 말들도 알기 쉬운 우리말로 풀어낸다면 훨씬 불법(佛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국인의 의식과 사고는 역시 한국인의 말로 풀어낼 때 반쪽짜리가 아닌 온전한 소통이 되는 것이지요. 곧 깨달음도 같은 이치라고 봅니다."

스님의 '우리말'에 대한 사랑은 끝없이 이어졌다. 대담을 하면서 스님의 우리말 사랑이 몸담고 있는 불가(佛家)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본색(?)은 전통 문화에도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법현스님은 명절 때 조상의 차례에 술을 올리는 것을 지적했다. 차례(茶禮)는 그 이름에 차(茶)가 들어 있으므로 차를 올리는 게 맞다고 하면서 1990년대부터 <삼국유사> 등 자료를 근거로 20여 년 동안 '차를 올려 차례를 모시는 운동'을 펴와 이제는 꽤 많은 가정에서 술대신 차를 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법현스님을 종교계의 마당발로 부르는 사람이 있지만 기자는 스님을 웅변가로 부르고 싶다. 웅변(雄辯)이 국어사전 풀이에는 "조리가 있고 막힘이 없이 당당하게 말함. 또는 그런 말이나 연설"이라고 나와 있지만 법현스님은 사전 풀이에 더해 '재치와 유머'까지 겸비한 듯 대담 내내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는 마법을 지닌 듯했다.
 
이를 입증하듯 "<쉽고 재미있고 유익하게>가 저의 기본 마음입니다. 무엇을 해도 쉽고 재미있게 해서 삶에 유익하게, 내게도 이웃에게도 유익하게 하자는 것이지요. 물론, 저의 분야는 모든 삶을 다루는 불교입니다. '쉬운 불교 여는 도량, 바른 불교 닦는 도량, 밝은 불교 펴는 도량, 모두 함께 웃는 도량'으로 가꿔 가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선교방편(善敎方便)연구소를 만들어 전법의 방법을 개발하고 전하는 일도 하고 싶으며 경전과 법요의식, 찬불가를 함께 엮은 한글 불교성전을 만들어서 널리 보급하 싶습니다." 이는 한 언론과의 대담에서 법현스님이 밝힌 말이다. 이 말 속에 법현스님의 현재와 미래가 다 들어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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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역촌중앙시장 2층의 '열린선원' 입구에는 스님이 알기 쉽게 한글로 풀이한 심우도가 그려져있다. ⓒ 이윤옥


사실 법현스님은 우리말로 시를 쓰는 스님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걸림돌과 디딤돌(A STUMBLING STONE AND A STEPPING STONE)'이라는 시는 지하철 역의 <풍경소리> 등에서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

"(앞 줄임) 보고픈가/ 알고픈가/ 아무렴 누런 미르절터에 가보세나/ 그네 뒷사람들이/ 만들어냈다네/ 보게하고/ 읽게하고/ 쓰게하고/ 알게하고/ 나누게 한 글/ 한글 - 법현 '한글날에 부쳐' 가운데' -

뿐만 아니라 스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필동인 <공론(空論)>의 동인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아울러 아름답고 고운 우리말로된 노랫말도 지어 '어떤 인연'은 가수 박보윤의 노래로, '허공을 삼키시니'는 국악인 박애리의 노래로 이미 나왔으며, '앉으라고요'는 지강훈 씨가 현재 작곡 중이다.

'저잣거리 포교 스님'으로 널리 알려진 법현스님과 대담 도중 전화가 걸려왔다. '차를 빼라'는 전화였다. 열린선원은 오래된 시장의 상가건물에 세들어 사는 관계로 주변에 주차장이 없어 시장 주변에 차를 세운 터였다. 뿐만 아니라 화장실도 시장 안에 화장실을 써야하는데 시장이 문을 닫는 밤이나 휴무일 때는 몹시 불편하다.
 
게다가 건물 자체가 낡아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열손실이 커 난방을 해도 춥다. 저잣거리 포교를 위해서는 도심 속에 '화장실을 갖춘 번듯한 신식 법당'을 마련하고 싶지만 도심은 땅 값이 비싸 어림도 없어 지금 변두리로라도 옮겨볼까 구상 중이란다. 그러나 변두리로 나갈 형편도 여의치 않아 '한 뼘 불사'라도 해보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글날을 맞아 누구보다도 우리말글을 사랑하는 법현스님의 활동을 되짚어 보면서 문득 신채호 선생의 말이 생각났다. "불교가 조선에 들어오면 <조선의 불교>여야하지 어째서 <불교의 조선>인가"라는 말이다. 이 말은 법현스님에 이르러 <한국의 불교> 곧 <한글의 불교>가 완성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무상(無相) 법현 스님은 누구인가?
2005년부터 서울 은평구 갈현동 역촌중앙시장에서 저잣거리 포교를 위해 '열린선원'을 열었다. '마당발 스님'이란 별명 그대로 종교 간 대화와 협력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종단협의회 사무국장과 상임이사 등 불교종단 종무행정 활동을 하면서 불교생명윤리협회 집행위원장, kcrp(한국종교인평화회의) 종교간대화위원장을 통해 적극적인 사회 활동에 참여 하고 있다.
 
한국불교 태고종단에서는 교무・기획국장, 총무・교무・사회부장, 교류협력실장, 교무부원장 등 주요 소임을 맡았다. 특히 스님은 기독교 교파인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성공회대학교(총장 이정구 신부)에서 2016년 1학기동안 일반학생들을 대상으로 불교를 강의하고 있다.
 
중앙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과정을 마침 스님은 <'연기설의 입장에서 본 불안정성(엔트로피 증가)원리 연구> <틀림에서 맞음으로 회통하는 불교생태사상> <불교의 관점에서 본 원자력과 생명, 그리고 평화> 등 수많은 논문과 <놀이놀이놀이> <부루나의 노래>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등의 저서가 있다.


덧붙이는 글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법현스님 #열린선원 #우리말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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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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