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겠네'만 맴돌던 밤, 그래도 엄마가 웃으니 좋다

[부모님의 뒷모습 29] 길었던 엄마의 입원 첫날

등록 2016.10.16 14:31수정 2016.10.1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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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말은 멀리서 울릴 뿐 내 귀에 잡히지 않는다. ⓒ pixabay


"지금 이 주사기 들고 대학병원으로 가 보세요. 곧장 이요."

의사의 말은 멀리서 울릴 뿐 내 귀에 잡히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팔순 엄마는 눈을 꼭 감고 있지만, 온몸이 긴장된 게 느껴진다.

"맑은 물이 나와야 하는데 누렇거든요. 보이시죠? 이건 무릎에 염증이 있다는 거예요."

토요일 아침 엄마는 무릎이 아파 왼쪽 다리를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일주일 전 오빠가 엄마를 정형외과에 모시고 갔을 때만 해도 엄마는 무릎보다는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허리 검진만 받았는데 그사이 무릎에 염증이 심해진 거다.

동네 내과에서 영양제를 투여받기 위해 아침 9시에 세수만 간신히 하고 집을 나왔다. 다행히 토요일이라 남편 차를 타고 엄마와 동네 내과로 출발했다.

"엄마, 정형외과 가서 진찰받고 돌아올 때 내과 들러 영양제 맞자. 정형외과가 더 빨리 끝나거든."

엄마의 "그럴까?" 한 마디에 정형외과에 먼저 왔는데 대학병원까지 가게 생겼다. 그래도 내과 먼저 안 간 게 다행이다. 첫째에게 문자를 넣었다.

"할머니 응급실 가야 해서 오늘은 기숙사 못 가겠다."

이틀 뒤, 월요일에 개강이니 일요일엔 첫째를 기숙사에 데려다줘야 한다. 응급실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곧장 들어갔다.

응급실 간호사는 피 검사해야 한다며 35kg 거죽만 남은 엄마의 오른팔에 고무줄을 감고 바늘을 찌른다. 피가 안 나온다며 이번엔 왼팔에 다시 고무줄을 감는다. 두 눈 꼭 감은 엄마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아야" 연신 작은 소릴 내는 엄마의 모습을 더는 볼 수가 없다.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소변검사 해야 한다고 해 소변도 받아서 줬건만 간호사는 다른 샘플이 필요하다고 또 왔다. 노련한 방사선사는 자세 바꿀 때마다 아파서 절절매는 엄마를 어르고 달래 X-ray를 여러 장 찍는다.

팔십 평생 살아오면서 출산 때 빼고 입원한 적이 없는 엄마다. 내가 아이 셋을 낳은 때도 병원에 온 적이 없다. 공기 나쁜 걸 참지 못하는 엄마가 병원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엄마의 앙상한 몸은 수술을 견딜 수 있을까? 수술을 안 하고 약으로 치료한다면 좋겠지만 그게 내 바람대로 될까?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허기가 느껴진다. 엄마는 진통제가 들어가서 평온히 주무신다. 점심 먹은 남편을 응급실로 불렀다. 점심 먹으러 간다고 하니 남편이 머뭇거린다. 의사 오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느냐는 거다.

"피검사 결과 나오면 염증 수치에 따라서 수술할지 결정한다고 했어. 다른 일은 없어."

점심을 후다닥 먹고 응급실로 복귀했다. 젊은 의사가 와서 말한다.

"지금 어머니 염증 수치가 나왔는데요. 수치가 수술과 약물치료 딱 중간이에요. 그래서 약을 며칠 써 보고 수술할지 정하기로 했어요. 입원 수속 밟고 오세요."

당장 수술을 하는 건 아니니 다행이다. 형제들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 입원이 결정되었다는 걸 알렸다. 활동보조인이 와서 엄마 침대를 민다. 나는 엄마 신발과 지팡이를 들고 병실로 따라 올라갔다. 정형외과 병동 간호사가 병실을 안내한다. 꼼짝을 못하는 엄마를 병실 침대로 어떻게 옮기나 걱정을 하는데 간호사 둘과 보조인이 엄마가 누워있는 침대보를 꺼내서는 손으로 말아 쥔다.

"어머니 그대로 계세요. 하나, 둘, 셋."

순간적으로 훅 엄마를 들어 옮긴다. 엄마가 비명 한번 지르곤 상황이 종료되어 버렸다. 역시 베테랑이다. 커튼 치고 간호사 둘이 달라붙어 "어머님 환자복으로 갈아 입혀 드릴게요"하고 엄마 옷을 벗긴다. 앙상하게 마른 겨울나무가 내 눈에 훅 들어온다. 사람의 몸이 맞는 걸까 싶게 앙상하다. 저리 메마른 나무의 젖을 먹고 내가 자랐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엄마의 젊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젠 내가 엄마에게 등을 내어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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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젊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 pixabay


어릴 적 일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홍역을 앓았다. 결석하고 방에 누워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업어주겠다고 했다. 막내였지만 초등학생이 엄마한테 업히는 게 쑥스럽고 창피했다. 싫다고 했지만 기어이 날 업고 방안을 몇 바퀴 돌아주던 엄마의 등이 내 눈에 생생한데 이젠 내가 엄마에게 등을 내드릴 차례가 되었다.

엄마는 진통제 덕분에 통증이 완화되어 잠을 푹 잔다. 어젯밤 통증에 잠을 못 주무신 탓도 있었을 것이다. 병실에서 바라본 창밖의 밤 풍경은 조용하다. 멀리 한강이 보이고 곳곳에 짙푸른 나무들과 사이사이 낀 아파트의 불빛도 정겹고 좋다. 복닥복닥 아침부터 긴 하루를 보낸 나에게 드디어 휴식이 찾아온 느낌. 보조 침대에 누웠다.

한참 잠을 자는데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정민아, 화장실 갈래."

일어나 병실에 있는 화장실 갈 준비를 시작했다. 혼자 힘으로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엄마를 위해 핸들을 돌려 침대를 올려드리고 신발을 신겼다. 링거병을 휠체어로 옮기고 엄마가 탄 휠체어를 화장실에 넣어 드리고 바지 끈을 풀어 드렸다. 화장실 다녀오니 이번엔 목마르다고 한다. 정수기 물을 받아 가져다 드리니 엄마는 "너무 맛있다"고 연신 감탄이다.

나는 다시 누워 잠을 자다가 쾅하는 소리에 놀라 깼다.

"놀랐지? 화장실 가고 싶어. 이번엔 큰 거야."

2시 20분이다. 휠체어로 화장실에 모셔다드렸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 20분이 지났을까 엄마가 날 부른다. 화장실에서 꺼내달라고. 다시 휠체어를 끌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엄마를 모셔다가 침대에 앉혀 드렸다.

이젠 배가 고프다고 한다. 뭐라도 먹을 것을 달라는데 아까 입원 준비물 챙겨 올 때 남편이 가방에 넣어준 복숭아 생각이 난다. 복숭아 드시겠냐 하니 따뜻해야 먹는단다. 껍질을 깐 복숭아 조각을 레인지에 돌렸다. 진짜 맛나게 드신다. 정말 해맑다. 나랑 병실 사람들 못 자게 새벽 내내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다. 그 뒤로도 엄마는 나를 두 번을 더 깨웠다. 대변본다고 한번 배고프다고 한번.

엄마가 깨울 때 떠오른 말은 딱 한 마디 '미치겠다'였다. 그 소동이 끝이 나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4시 50분 간호사가 들어와 "혈압 좀 잴게요" 한다. 벌써 아침이 시작되나? 아, 난 잠도 못 잤는데.

엄마는 아침도 정말 맛나게 드셨다. 내 머릿속은 온통 '자고 싶다'만 가득하다. 점심엔 아버지가 병실에 오신다 했다. 오빠는 밤 당번이다. 정신이 몽롱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엄마는 얼굴에 웃음꽃이 번져있다.

"어제는 정말 자살하는 사람 심정이 이해가 되더라. 진짜 아파서 죽고 싶었어."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아팠는지는 몰랐다. 그랬으면 진작 병원에 가자고 하지. 그러고 보니 엄마가 새벽에 했던 행동이 이해가 된다. 죽음의 문턱에서 느꼈을 공포감이 사라지고 돌아온 삶의 허기가 어젯밤 엄마를 내내 괴롭혔나 보다.

내 든든한 젖줄이었던 엄마가 이젠 앙상한 겨울나무가 되어있다. 이젠 내가 엄마를 업어줄 차례다. 당연한 일이라고 머리로 생각하지만, 엄마와 병실 첫날밤 내 머릿속은 온통 '미치겠다'는 비명이 가득했다. 그래도 아침에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니 좋다. 일단 어제 당번인 난 여기서 선수교체다. 오늘 밤은 오빠 차례다. 다음 날은 언니.

"엄마 오늘은 낮에 자지 마. 밤에 자. 알았지? 사랑해."

다음 선수를 위해 한 마디 당부를 남기며 엄마 얼굴에 뽀뽀를 가득해 주고 병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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