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농장 대표된 남자... 왜 하필 '돼지'냐고?

[인터뷰] 성우농장 이도헌 대표, 키워드는 공생

등록 2016.10.16 14:56수정 2016.10.1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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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농장 이도헌 대표. 사진의 뒷편 건물은 이 대표가 일하는 성우 농장이다. ⓒ 이재환


누군가의 인생에서 키워드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인생을 잘게 쪼개 나눈다면 적어도 하나의 키워드 정도는 찾아 낼 수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우 농장 이도헌(49) 대표의 최근 키워드는 '공생'이다.

이도헌 대표는 지난 2013년 성우농장 전 대표의 사직으로, 졸지에 투자자에서 농장 대표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뜻하지 않은 귀농이었지만 대체로 삶은 만족스러웠다. 일을 하면 하는 만큼 결과물이 되어 되돌아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도헌 대표가 대표직을 맡을 때만해도 성우 농장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성우 농장은 최근 모돈 500마리를 비롯해 7천 800마리 가량의 돼지를 안정적으로 키울 정도로 성장했다.

이도헌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8월이었다. 당시 충남 홍성의 내포 신도시는 축산 악취 문제로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 민원이 들끓는 등 골치를 앓고 있었다. 이도헌 대표는 "축산 분뇨 냄새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면서도 "시설 현대화를 통해 분뇨 냄새로 인한 민원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우농장은 최근 악취의 원인인 분뇨처리장을 지하에 매설하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분뇨처리장을 지하화 할 경우, 지상에 있을 때 보다는 아무래도 악취가 덜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가 실천하고 있는 이웃과의 첫 번째 공생법이다.   

이도헌 대표는 농장 근처 200평 규모의 공터에 3~4 마리의 돼지를 방목하고 있다. 이곳에서 다양한 종의 돼지를 기르며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표는 '방목 실험'이 성공할 경우, 농장 인근의 이웃에게도 돼지를 나눠주고 공동으로 키워 판매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이도헌 대표는 "농촌 인구의 고령화로 농사를 짓기가 힘든 노인이 늘고 있다"며 "이들이 힘든 농사일 대신 방목 돼지를 키우면 농가 소득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귀농 4년차인 이 대표는 최근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 한다>라는 제목의 책도 펴내기도 했다. 명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금융업계에 종사했던 그의 화려한 이력 탓일까. 요즘 그의 책과 삶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뜨겁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일부 언론들이 절처히 도시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귀농과 전환인생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이 다소 아쉽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 보다는 귀농 후 느낀 다양한 농촌의 문제를 얘기하고 싶어한다. 실제로 이 대표는 유기농 농사 관련 문제, 로컬 푸드의 전망,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 등에 관심이 많다. 지난 14일 오후. 충남 홍성군 결성면에 위치한 성우농장에서 이도헌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선 생산자-소비자간 소통 필요해"

- 최근에 책을 펴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
"금융업을 떠난 이유와 왜 하필 돼지를 키우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 반복되는 질문에 일일이 답하는 대신 그 이유를 글로 적어 알리고 싶었다. 물론 귀농한 경계인으로 도시와 농촌의 소통에 일조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 왜 하필 돼지를 키웠는지 궁금하다.
"사실 귀농에는 관심이 없었다. 투자의 관점에서만 농업을 봤기 때문이다. 금융계에서 일할 때 투자자들에게 FTA가 닥쳐와도 버틸 수 있는 농업 종목으로 양돈과 시설원예, 양식을 추천했었다. 이 세 가지 업종은 어느 나라나 일하는 방식이 같다. 열심히 일한다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 나도 성우 농장의 투자자였다. 농장이 어려워지면서 전 대표가 사직했고, 그 자리를 내가 맡게 된 것이다." 

- 돼지 방목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방목은 사실 양돈을 하니까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내가 특별히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생산자가 지속가능한 농업이다. 물론 지금도 지속 가능한 농업에 대해 고민 중이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선 우선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신뢰 회복과 상품의 차별화가 중요한 것 같다."

-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최근 로컬 푸드를 확산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한국의 로컬 푸드는 특색이 별로 없다. 프랑스는 각 지역에서 각기 다른 종류의 젖소를 키운다. 다양한 젖소에서 나온 우유로 다양한 맛의 치즈를 생산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이처럼 지역별로 차별화된 농업 가공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우리 농촌도 각 지역마다 다양한 종의 농산물을 재배하고 차별화해 판매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이다."

- 소비자와의 신뢰회복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
"이를 테면 유기농산물의 경우 소비자에게 유기 농산물이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단순히 유기농이 건강에 좋다는 식의 논리로는 부족하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궁극적으로 토양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생산자인 농부의 안전까지 담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즉, 환경 보호와 생잔자의 안전이란 '가치'를 동시에 내세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최근에는 프랑스에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랑스, 덴마크, 독일 세 나라를 다녀왔다. 유럽에서 돼지만 보고 온 게 아니다. 내가 볼 때 와인은 가장 성공한 가공품이다. 사실 와인은 누가 생산했느냐에 따라 가격이 2만원에서부터 천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생산자의 가치가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는 구조인 것이다. 프랑스 와인 농가는 일종의 가치를 생산해 팔고 있는 것이다."

- 지구 온난화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농촌에 살면 지구 온난화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화력 발전은 물론이고 철강 반도체 등의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다. 하지만 그 피해는 농민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이를테면 농민들은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비닐하우스와 스프링쿨러 등 각종 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기온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가뜩이나 열악한 농촌에 더 많은 투자비용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성우농장 #이도헌 #유기농 #돼지 방목 #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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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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