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언론이 침묵한 책, 한달 만에 초판 매진"

[시민기자와 함께 인터뷰] <일제 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저자 선안나

등록 2016.11.02 15:31수정 2017.03.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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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를 표방하는 <오마이뉴스>에서 '모든 시민은 서평가'이기도 합니다. 쏟아지는 신간을 지면에 감당할 수 없는 종이신문과 달리 <오마이뉴스> 책동네는 매일매일 따끈한 서평을 발행합니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책 저자를 시민기자와 함께 인터뷰 해 싣습니다. [편집자말]
[기사수정 : 2일 오후 4시 44분]

우선 책 표지를 보자. 제목은 <일제 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광복을 염원한 사람들, 기회를 좇은 사람들'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래로 계속되는 설명 문구. '청소년부터 읽는 항일 투사, 친일파 이야기'란다.


그 옆으로 등장인물도 줄줄이 이어진다. 독립군과 토벌대 그 선택과 역사 장준하와 백선엽, 개화기 여성 지도자의 두 얼굴 김마리아와 김활란, 언론 정신이냐 언론 사업이냐 안재홍과 방응모, 인간의 길 여자의 길 남자현과 배정자 등.

이번에는 책 뒷면을 보자. 경남역사교사 모임 김정현 대표가 쓴 추천사가 눈에 띈다. 그는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역사적 가치판단마저 외우고 있다. 예를 들면 '친일파=무조건 나쁜 사람'의 등식이다.

그러나 친일파가 왜 나쁜 사람인지에 대해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고 묻는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이랄 수 있겠다. 친일파가 왜 나쁜 사람인지 이야기를 곁들여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니까.

[관련기사]
페인트 뒤집어쓴 김활란의 '창조적' 친일
일제 강점기 두 여성 지도자 삶, 이렇게 달랐다
대원군 '졸개'의 딸, 이토 히로부미 스파이로 맹활약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은 배우지 않는 학생들

좋은 책은 독자가 먼저 알아보는 법. 시민기자들의 서평이 줄줄이 이어졌다. 독자들도 뜨거운 조회수로 호응했다. 이쯤되니 저자 선안나씨가 누군지 궁금했다. 서평을 쓴 시민기자들과 함께 저자에게 궁금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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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안나 작가 ⓒ 선안나


- 작가님이 기획동기에 대해 간단히 밝히긴 했는데, <경남도민일보> 출판사 피플파워와 이런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청소년을 정말 믿고 존중한다면, 부끄러운 역사도 감추지만 말고 보여주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판단에서 이 책을 기획하고 집필하게 되었다. 등단 이후 어린이책 출판사에 많은 책을 출판했지만, 이 책은 청소년부터 어른도 읽는 책이라서 일반 출판사를 고려하게 되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때그때 사회 이슈를 나누는 '기록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이 있다. 지난해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출판미디어국장을 초대했는데, 그때 지역 중심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출판으로 연계하는 활동이 인상 깊었다. 평소에도 의식있는 신문사로 호감을 갖고 있었기에, 초고가 완성된 후 출판을 의뢰하였다."

- 집필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머리말에 썼다.
"항일애국지사 7명과 친일매국행위자 7명 모두 14인의 생애를 조사하고 각종 자료를 비교 검토하려니 양이 방대하여 시간과 품이 많이 들었다. 길이가 짧든 길든 들어갈 내용은 그 안에 함축해서 다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 어린이청소년 문학작가 특유의 구성이 인상적이다. 매 장마다 첫 에피소드가 그림책처럼 한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청소년들에게 쉽게 읽히기 위한 고민의 결과인가.
"인물에 공감할 때 이야기 속에 쉽게 빨려들어간다. 역사는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기에, 그 사람의 특징을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서두를 시작했다. 오래 동화를 써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런 구성을 떠올린 것 같다."

- 청소년을 위한 친일반민족 행위자의 삶을 알려주는 데 가장 고민스러웠던 점이 있었다면.
"책을 보면,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은 뛰어난 처세술과 영악한 계산으로 현실적인 성취를 이루어 가는 반면 항일 애국지사들의 삶은 고통스럽고 힘겹다. 게다가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은 잘 먹고 잘 살다가 전혀 처벌도 받지 않고 후손들까지 기득권을 누린다. 이런 과정을 디테일하게 묘사하여 보여주는 게 오히려 청소년 독자에게 혹시나 염세적 성향을 갖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청소년 독자를 충분히 믿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 머리말에서도 밝혔지만, 그것이 과거완료가 아니라 현재형이기 때문에 꺼려왔던 게 사실인데 김활란, 백선엽 같은 경우가 그랬을 것 같다.
"특히 방응모의 경우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현재도 막강하다.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도 그랬고, 출판 전후에도 이 책에 대한 출판문화계나 언론계의 반응이 매우 미묘하고 흥미롭다는 정도로만 표현하겠다. 책이 나오고 난 후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자료를 거듭 확인하며 썼기 때문에 책 내용 자체에 문제 제기 할 일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한다. 반면 애국지사의 후손들이 이 책을 읽고 고맙다는 댓글을 달아주셔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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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책표지/선안나 지음/피플파워/2016.8.1/15,000원 ⓒ 피플파워

- 독립운동가와 친일세력 두 사람의 짝을 지우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다. 이 구도를 살리느라 다루지 못한 아까운 인물도 있었을 것 같은데...
"평민 출신 의병장 신돌석의 경우 초고를 완성하고도 구도 때문에 포기했기에 아쉽다. 여성 독립운동가를 더 다루지 못한 점도 그렇다. 수원 기생 삼십여 명을 이끌고 독립 만세를 불렀던 김향화, 임신한 몸으로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진 후 핏덩이 아기와 함께 감옥살이를 했던 안경신 등이 마음에 남아 있다."

- 최근 개봉한 영화 <밀정> 등등에서 여성독립군들의 행보가 조명되어 그 후로도 계속 주목 받는 것 같다. 작가가 특히 책에 소개한 남자현과 김마리아에 주목한 이유가 있었나.
"유관순이나 북한의 동풍신처럼 뜨겁게 산화한 여성 애국지사도 있지만,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다수가 변절해 갈 때도 인간의 길을 꿋꿋이 걸었던 여성들을 먼저 주목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만주행을 결심하고, 남은 생을 독립투쟁에 오롯이 바친 남자현의 길에서 한국 여성의 굳센 의지와 지혜, 넉넉한 품과 사랑을 보았다. 김마리아 또한 당대 최고 지성으로서 세속적 욕망을 추구했다면 누구 못지않게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불의한 시대에 개인적 영달을 바라지 않고 이웃과 겨레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형극의 길을 걸었다. 의연하고 진실했던 여성 지도자의 모습이 귀감이 되고 올바른 방향성을 보여준다."

- 동화작가로서 여성사와 근현대 친일 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
"대학원 다닐 때 페미니즘 문학을 공부하며 여성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 반공주의 문학을 주제로 학술진흥재단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근현대사 공부를 깊이 할 기회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뿌리가 일제강점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절감하면서, 직업이 동화작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우리 역사와 현실을 보여주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 2년이나 자료를 수집해서 14명만 소개하기엔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후속편에서 좀더 소개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한 사람 한 사람 자료 조사에 시간이 많이 걸려서, 아직은 후속편을 기획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같은 뜻을 가진 출판사와 작가들이 모여 스터디를 하며 팀 작업을 해도 좋을 것 같다."

-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특히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역사적 사실은 고정적 진실이 아니고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과서 국정화는 국가가 지정한 역사의식을 교과서를 통해 대한민국 전체 학생에게 심어주고자 하기 때문에 정치화 될 위험이 있다. 역사를 보는 관점은 다양하게 열려 있어야 하는데, 국가가 국민의 사상과 의식을 통제하려는 것은 심각한 퇴보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고등학교 교과서를 국정화한 나라는 북한을 비롯한 몇 개국 밖에 없지 않은가. 히틀러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했고, 박정희 대통령도 유신 때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했다는 점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교육의 중립성을 지킬 의무와 책임이 있다."

- 외우기만 하는 사회 교과, 특히 역사를 작가가 말한 대로 나 자신의 눈으로 보기 위해서, 교사나 부모들이 해야 할 역할이 있을까?
"고유한 관점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아이가 자기 생각을 자기 언어로 말할 수 있도록 꾸준히 격려할 필요가 있다. 부모도 교사도. 특히 역사는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기성세대의 이데올로기가 담겨있기 쉽다. 따라서 무조건 외우기보다 다양한 관점의 책을 접할 기회를 자꾸 만들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즘 많이 시도되고 있는 '거꾸로 수업' '토론 수업' '배움 중심 수업' 등의 방법을 적극 활용하여, 학생이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탐구하고 사고하도록 이끌어주면 좋을 것 같다."

- 이 책이 나온 지 3개월이 조금 안 됐는데, 얼마나 나갔는지, 독자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다. 청소년들은 특히 읽고 뭐라고 하나.
"애국지사의 삶을 다룬 청소년 도서는 꾸준히 있었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실명과 생애를 자세히 다룬 책은 그동안 없었다. 일종의 금기영역을 건드린 셈이라 다소 조심스럽게 책을 내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많은 동화책을 출간했을 때와는 반응이 매우 달라 놀랍다. 주류 언론은 거의 침묵을 지키고 있고, 인터넷언론사 시민기자와 개인 블로거들의 서평이 이어졌다. SNS에서 시민들의 반응이 뜨거워 감사하다.

출간 한 달 만에 초판이 매진되었고, 현재  2쇄도 순조로운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부모와 교사가 전해준 청소년 독자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책이 딱딱하지 않아 잘 읽히며, 같은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 역사적 사건이 교차되어서 시대배경을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것, 또 매 꼭지 마지막 정리 부분에 가치판단이 있어서 속이 시원하다는 의견 등이 있었다."

- 더 하고 싶었는데, 청소년 책이라 그러지 못한 게 있다면?
"항일애국지사들의 가족들이 생활고로 인하여 변절하여 밀정이 되고 서로 처단하게 되는 등 참담한 뒷이야기까지 전부 쓰기는 어려웠고, 이성 관계나 성생활 부분도 걸러냈다. 그런 반면, 황현의 매천야록을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문헌에 나타난 그 인물에 대한 소소한 일화와 평가들을 폭넓게 수용하는 글쓰기를 택했다." 

[시민기자가 저자에게 물었습니다]

이명옥
- 평화 시위, 횃불집회, 세월호 등 현실 참여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직업이 무엇이든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더 살기 좋고 공정한 사회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른 역사관을 가진 성숙하고 정의로운 정부를 먼저 세우는 것 아니겠는가. 역사 전문가뿐만 아니라 시민 개개인도 우리 근현대사에 더 관심을 가지고 지식과 정보를 평소에 활발히 나눌 필요가 있거니와 무엇보다 투표를 잘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 작가의 이후 계획도 궁금하다.
"그동안 근현대사를 다룬 그림책, 아동소설 등을 몇 권 펴냈다. 지금은 한반도의 앞날을 가늠하고 상상하는 창작 원고를 구상 중이다." 

김용만
- 앞으로도 이런 책을 계속 써 주셨으면 하는데 가능성 여부?
"독자 대상이나 장르에 따라 책의 기획이나 구성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의 문제의식은 늘 붙들고 있을 것이다."

- 이런 책을 청소년용이 아니라 어린이용으로 쓰실 생각이 있는지?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이름과 삶의 내용을 세세히 다룬 청소년 도서도 여태껏 없었다. 더 연령이 어린 독자를 위한 책의 출판은 아직 고민이 필요하다."

임종금
- 이런 문제를 조금 더 쉽게 동화로 다룰 방법은 없을까?
"어린이청소년 독자는 연령과 발달 단계에 따라 관심사와 이해력도 차이가 난다. 독자별 단계에 맞게 '쉽게' 쓰기 위해서는 아동청소년문학 전문가로서의 글쓰기 능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역사를 딱딱하지 않고 생동감 있게 풀어내기 위해서는 풍부한 역사지식이 있어야 한다. 둘 다 갖추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 근현대사의 피해자 한 사람의 일생을 쫓아가면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다루는 방법이 없을까?
"역사를 다루는 좋은 접근 방법이라 생각한다. 현실의 한 인물에 밀착하여 자료를 충실히 조사하면 리얼리티를 섬세하게 살릴 수 있고, 구체적이고 진솔한 캐릭터가 강한 공감을 이끌어낼 여지가 있다. 그러나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기획에 따라 글 종류와 글쓰기의 기법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방법론을 바로 제시하기는 어려운 질문이다."

[저자 선안나는요]
울산시 울주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동화작가가 되었다. 수십 권의 그림책과 동화책을 썼고, 현재 서울교육대학에서 강의하며 집필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쓴 작품으로 <온양이> <삼거리 점방> <잠들지 못하는 뼈>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 광복을 염원한 사람들, 기회를 좇은 사람들

선안나 지음,
피플파워, 2016


#친일반민족 행위자 #선안나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항일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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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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