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암 앓는지도 모르고 다닌 세계여행

[인터뷰] 90만원으로 결혼식 올리고 14개월 세계 돌아다닌 정민아·오재철씨

등록 2016.10.29 10:44수정 2016.10.2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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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 오재철


월급봉투 아니면 먹고 살 능력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내 정민아(35)씨, 평생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남편 오재철(42)씨. 소심한 이 두 부부는 꿈을 이루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바로 세계여행이다. 100만 원도 안 되는 적은 비용으로 결혼식을 치르고 서로 모은 돈을 합쳐 계획도 없이 세계여행을 훌쩍 떠난다. 오재철씨 몸에서 희소 암인 육종근육암이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서 말이다.


이 부부는 414일 동안 21개국을 돌아 긴 세계여행을 마치고 2014년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다리에 이상한 혹이 생겨 병원을 찾은 오재철씨는 육종근육암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그날,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의 담당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암 발병 기간에 비해 악성도가 매우 낮다고 말이다. 그 이유는 스트레스 많은 일상을 떠나 세계를 즐겁게, 마음껏 누볐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현재 암이 완치된 건 아니지만, 그는 즐겁게 사진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정민아·오재철 부부와의 인터뷰는 지난 3일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

414일, 14개월, 5000만원, 무작정 세계여행

- 단돈 90만 원으로 작은 결혼식을 올리고 414일간의 세계여행을 떠나셨죠?
정민아 : "네, 저희는 결혼식에 드는 비용을 최대한 아껴 여행을 떠나기로 했어요. 예식장의 경우, 남들이 꺼려하는 윤달에 하겠다고 해서 무료로 빌릴 수 있었고, 웨딩 촬영은 셀프로, 집과 예단, 혼수는커녕 커플링 하나 맞추지 않고 간단히 치르고 나니 총 90만 원 정도가 들었어요.

여기에 그동안 저희가 모은 돈을 더하니 둘이 합쳐 5000만 원 정도 준비할 수 있었어요. 애초 저희의 계획은 기간을 정해 놓고 떠난 게 아니라 돈이 떨어지면 돌아오는 거였거든요. 여행 중 아낄 수 있을 땐 최대한 아껴 414일, 약 14개월간의 세계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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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 오재철


-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오재철 : "한 곳 한 곳이 다 기억에 남지만,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은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니에요. 식상하다고 할지라도 '천국'이라고 밖에 표현하기 힘든 곳이죠."

- 세계여행을 다녀와서 오재철씨가 육종암 진단을 받으셨어요. 그때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민아 :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심장이 뛰어요. 여행 중 남편의 오른쪽 허벅지에 근육이 툭 튀어나와 있어서 근육이 참 이상하게 생겼다고 놀렸었어요. 아프지 않았다기에 그게 암 덩어리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2, 3개월 사이에 그 혹이 급속도로 커진 게 느껴져서 병원으로 향했죠. MRI 검사 결과, 희소암인 육종근육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결과가 나왔어요. 발병은 약 2년 전, 종양의 크기는 약 7cm 정도였어요."

오재철 : "육종암 진단을 받았을 때, 막막함과 절망을 느꼈죠. 세상이 다 무너지는, 나 혼자만 괴로워야 하나라는 억울함…. 근데 하나 특이했던 기억이 진단을 받자마자 생겼던 감상적인 기억인데요. '아 그래도 재미나게 잘 놀아본 삶이구나. 세계여행도 다녀왔고, 재미나게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알고 보니 암과 함께한 세계여행

- 종양 크기가 7cm라면 암이 상당히 진행된 건데 여행할 때 통증은 없었나요?
오재철 : "네. 수술을 마친 의사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하시더군요. 이 정도 기간에 이 크기면 악성도가 3기 정도가 보통인데, 저는 0.5기가 될까 말까 한 정도로 악성도가 낮다고 했습니다. 물론 육종이란 게 재발과 전이의 가능성이 높아 5년 후 완치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하셨지만요.

현재는 6개월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다닙니다. 여전히 병원에 가는 날이면 긴장되고, 무섭고, 떨립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제가 암에 걸렸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 하루하루 즐겁고 열심히 살고 있죠."

정민아 : 흔히 암은 마음의 병이라고 하더군요. 남편이 여행 초기에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아! 일상을 떠나오니 이제야 머리가 가볍고 맑아진 것 같다. 여행 떠나기 전까지 뒷골이 땡긴다는 게 느껴질 만큼 머리가 아프고 무거웠어'라고 말했거든요. 어쩌면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한국에서의 삶이 남편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줬던 게 아니었을까요?

그 스트레스 속에서 암이 발병했을 테고요. 그 생활에서 벗어난 뒤, 매일마다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자연 속을 거닐고, 평상시보다 늘어난 운동량이 암을 완화시킨 게 아닐까 생각해요. 일종의 자연 치유처럼 말이죠."

- 암 판정받은 날, 딸의 임신 소식을 접했다고 했는데 기분이 어떠셨어요?
정민아 : "당시 2세 계획을 세우고 있던 중이라 당분간 아이 계획은 접어야겠구나 했죠. 수술 날 아침, 배가 살살 아파 혹시나 하고 남편 몰래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태어나 처음으로 테스트를 해봤습니다. 임신이었어요. 하지만 미안하게도 기쁜 마음 아주 조금과 함께, 혹시나 혼자 키우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상상도 해버렸지요. 무서웠어요."

"아, 행복해지기 위해 많은 게 필요한 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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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칼라파테 ⓒ 오재철


- 현재 아이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죠? 이름은 무엇인가요? 
정민아 : '오아란'입니다. 저희는 사주팔자 같은 걸 잘 믿지 않는 편이라 둘이 머리 싸매고 직접 지은 이름이에요. 건강하게 잘 크고 있어요. 이제 16개월이 돼 갖은 애교와 장난을 번갈아치면서 하루종일 깔깔깔 소리가 끊일 날이 없어요."

오재철 : "아일랜드에 세 개의 섬이 모여 있는 '아란 군도'라는 곳이 있어요. 그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한국 이름이면서 영어식 발음이 어색하지 않은 이름을 찾고 있었거든요. 언젠가 아란이와 꼭 그곳에 가보려고 합니다. '너의 이름과 같은 곳이란다….' 이 말을 섬을 보면서 저희 딸에게 직접 전하고 싶습니다."

- 최근 암 환자들에게 직접 쓴 여행책을 드리는 스토리 펀딩을 잘 마무리하셨어요. 책은 잘 전달이 되었나요?  
정민아 : "무사히 수술을 끝내서 <함께, 다시, 유럽>과 <꿈꾸는 여행자의 그곳, 남미>도 세상의 빛을 보게 됐습니다. 이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암에 걸린 환자들과 그의 가족 분들께 저희 책을 기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크리우드 펀딩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응원 속에 약 두 달간 372만5000원의 후원금을 모았고, 현재 원자력병원 이동도서관 및 암 환자를 위한 최성수의 섬 콘서트 등을 통해 책 기부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고, 저희 책이 필요하시다면 연락주세요."

- 정민아씨는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정민아 : "여행을 하던 어느 날, 멋진 절경 앞에서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붉은 석양을 바라볼 때였어요.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때 주위를 둘러보니 오랜 여행에 때가 꼬질꼬질하게 배인 커다란 배낭 하나와 꾀죄죄한 저의 남편밖에 없는 거예요. '아! 행복해지기 위해 많은 게 필요한 것은 아니구나.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오재철씨께 질문할게요. '인생은 ○○이다'라고 하면 괄호 안에 무슨 단어가 들어가면 좋을까요?
오재철 : "인생은 '일기'다. 일기장에는 자신만이 글을 쓸 수 있잖아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일기장을 대신 써주지 않잖아요. 또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않은 어제를 돌아보면 후회도 되고요. 인생이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의 필체가 아닌 자신만의 필체로 일기장을 채워간다면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http://post.naver.com/my.nhn?memberNo=4832522)> 11월호에 실렸습니다.
#육종근육암 #희귀암 #암극복사례 #크라우드펀딩 #착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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