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회사 일감 확보에 정부까지 나섰나

문체부, 공기업 장애인 실업팀에 "에이전트 활용하라" 독려

등록 2016.10.20 14:43수정 2016.10.2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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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체부는 지난 5월 장애인 실업팀을 창단하는 한 공기업에 '전문 스포츠 대리인(에이전트) 제도'를 적극 활용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 그리고 이 장애인 실업팀의 에이전트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설립한 더블루K가 맡았다.
  •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선수에 에이전트가 붙는 것은 생소한 일이며, 이를 문체부가 독려했다는 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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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마장마술 경기 지켜보는 최순실과 정윤회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 시절 비서실장인 정윤회(왼쪽)씨와 전 부인 최순실씨가 2013년 7월19일 경기 과천시 주암동 서울경마공원에서 딸이 출전한 마장마술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사진제공 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측근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가 독일과 국내에 설립한 회사 '더블루K'가 실제로 수행한 일 중엔 '장애인 실업팀'의 에이전트 사업이 있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선수에 에이전트가 붙는 것도 생소한데, 문화체육부는 장애인 실업팀 창단을 예정한 공공기관에 에이전트 활용을 권장했다.

지난 5월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는 공기업 그랜드코리아레저(GKL)는 장애인 펜싱 실업팀(휠체어 펜싱팀)을 새로 창단했다. 선수위촉계약서상 더블루K는 이 팀의 에이전트와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나온다.

실업팀의 경우 회사에서 선수와 고용관계를 맺고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별도의 에이전트를 두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5월 11일 GKL 펜싱팀 선수들이 체결한 선수위촉계약서는 'GKL-더블루K-선수' 3자간의 계약이었다. 계약서엔 "TBK(더블루K) 소속 선수 ○○○"으로, 선수들이 더블루K에 소속돼 있고, 계약 관련 중요 사안은 GKL과 더블루K가 협의하는 것으로 돼 있다.

선수 급여는 GKL이 선수들에게 직접 지급했다. 이외에 GKL은 더블루K에 850여만 원을 지급했는데, 5~6월 펜싱팀의 국내 전지훈련과 춘계 전국 휠체어펜싱 선수권대회 참가 지원 대행을 한 비용과 수수료였다.

의혹이 제기된 부분은 GKL이 선수들에게 지급했다는 전속계약금이다. 지난 4일 GKL에 대한 국회 교육문화체육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송기석 국민의당 의원은 "장애인체육회에 확인한 결과 지금까지 장애인 스포츠계에선 실업팀을 창단하면서 전속계약금과 같은 스카우트 비용을 지출한 전례가 한번도 없었다"며 전속계약금이 선수들이 아니라 에이전트인 더블루K에 지급된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오마이뉴스>가 19일 GKL 선수들과 한 전화통화에서 선수들은 전속계약금을 수령했다고 밝혔다. GKL 관계자도 "장애인체육회에서 잘 모르고 송 의원님에 답변했는지 모르겠는데, 실제 선수단을 구성하려고 해보니 좋은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선 계약금이 필요했다"며 "형편이 열악한 장애인 선수단을 지원하기 위한 것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속계약금 지급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GKL이 계약금을 입금했다는 선수들 명의의 계좌 통장 3개에 찍혀 있는 인감도장은 한글 막도장으로, 전속계약서에 찍혀 있는 인감도장과 달랐다. 선수 3명의 계좌는 GKL의 주거래은행인 (구)외환은행 삼성타운지점에서 일괄적으로 개설됐다. 선수들이 개설한 계좌가 아니라 GKL이나 더블루K측이 만들어 관리한 통장이라는 의심이 가능한 대목이다. 송 의원은 더블루K가 전속계약금을 횡령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GKL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다른 사람이 통장을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냐"며 "각 선수들이 통장을 만들어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문체부, 지난해 9월 '실업팀 창단' 독려, 올해 5월엔 '에이전트 활용' 독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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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5월 3일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보낸 공문. 장애인 실업팀을 창단할 경우 에이전트를 활용하라는 내용이다. GKL은 5월 11일 휠체어 펜싱팀 선수위촉계약을 하면서 최순실씨의 회사 더블루K와 사실상의 에이전트 계약을 했다. ⓒ 송기석의원실 제공


더블루K가 장애인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 실업팀 창단과 에이전트 활용을 독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9월 산하 공공기관에 '장애인실업팀 창단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장애인체육의 발전과 장애인체육 선수 육성을 위해 장애인실업팀 창단을 추진하고자 하오니, 귀 기관의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이다.

GKL은 이미 모굴스키 실업팀을 운영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문체부의 방침에 따라 장애인실업팀 창단을 검토해 휠체어 펜싱팀을 꾸리기로 했다. 선수 선발 등 실무적인 준비가 끝난 상황에서 GKL은 문체부로부터 장애인실업팀 창단과 관련된 공문을 받았다.

선수들과의 계약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5월 3일 문체부가 GKL에 보낸 공문은 "장애인체육 선수들의 권익 보호와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프로팀 뿐만 아니라 아마츄어팀 창단 시에도 전문 스포츠 대리인(Agent) 제도를 활성화해 나갈 방침이오니, 적극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협조를 요청한 내용이다.

장애인 실업팀 창단 및 선수 계약을 앞둔 공공기관에 '에이전트를 적극 활용하라'고 협조를 요청한 것을 과연 우연이라 볼 수 있을까. 지난 2013년 4월 최순실씨 딸이 출전한 국가대표선발을 겸한 승마대회의 심판판정 시비가 일어났을 때, 이를 조사해 최씨 딸에 유리하지 않은 보고서를 작성한 문체부 간부 2명이 좌천됐다가 결국 공직을 그만둔 일은 잘 알려져 있다. 

GKL 휠체어 펜싱팀과 더블루K의 관계는 지난 8월초에 끝났다. <TV조선>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직후다.

하지만 GKL 관계자는 "계약 종료는 우리 쪽이 먼저 제안했다"며 "더블루K가 자기들이 전문가라면서 우리에게 왔는데, 자신들이 세워야할 사업계획을 우리 팀의 감독과 코치한테 일일이 물어가면서 일을 하길래, 우리 쪽에서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했고 더블루K도 이의 제기 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전문 에이전트라고 했지만 별다른 전문성도 없었던 셈이다.
#더블루케이 #최순실 #문체부 #박근혜 #펜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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