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라는 '섬'에 갇힌 대통령

[주장] 최순실게이트, 민심을 읽었다면 최소한 사과 한마디는 했어야 했다

등록 2016.10.22 09:47수정 2016.10.2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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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대륙에서 남쪽으로 1000km 떨어진 곳에는 1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생태계가 있다. 찰스 다윈에 의해 유명해진 갈라파고스 제도다. 이곳에서 다윈은 본래 같은 종이던 동식물들이 대륙과 교류가 없었던 탓에 독자적으로 진화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됐다.

다윈이 발을 내딛은 후 갈라파고스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갈라파고스의 동식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만의 환경에 적응해 있던 동식물은 유입되는 인류, 달라지는 환경을 감내하지 못했다. 이후 갈라파고스는 외부와 단절된 내부 환경에 안주하다 실패하고 사라져가는 집단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갇힌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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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에선 갈라파고스의 냄새가 물씬 난다. 비밀이 많다. 소통은 없다. 내부의 논리는 강고하다. 취임 직후 내각에 들어올 후보자들의 신상이 비밀리에 부쳐졌다. 당시 윤창중 대변인이 봉인된 봉투를 들고 나와 후보자를 공개하면서부터 갈라파고스 제도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몸을 꽁꽁 싸매고 섬이 되길 희망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은 밝혀지지 않았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몸통은 숨겨졌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논란을 일으킨 정윤회 문건 파동 등을 거치며 냄새는 악취로 변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몸에 밴 악취를 인지하지 못했다. 민심의 추이를 읽지 못한 까닭이다. 외부(국민)와 교류하고 민심의 추이를 읽고 있었다면 사전에 악취를 인지했을 것이지만, 악취는 이미 익숙한 것이었다. 코는 마비 상태였다.

지난 20일 박 대통령은 미르·K 스포츠 재단에 대해 입을 열었다. 대통령의 입에선 또 한 번 갈라파고스 앞 바다의 악취가 났다. '나는 옳고 윤리적이며 그런 나를 의심해선 안 된다'는 논리, 여전히 청와대라는 섬에 갇혀있는 모습이었다.

이날 대통령은 두 재단의 설립 배경과 취지, 성과를 설명했다. 재단은 문화융성을 위해 기업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간 논란이 됐던 재단의 초고속 설립 허가와 강제 모금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했다. 의혹의 배후에 있는 비선실세 최순실 씨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은 "(재단 설립 전) 기업들과 소통하며 논의의 과정을 거쳤다"라고 말했다. 자율적으로 설립된 재단이라면서 사전에 대통령과의 의견 조율이 있었음을 실토한 것이다. 그들은 설립 전 무엇을 논의했을까. 의혹은 증폭됐다. 대통령은 예의 그 한 마디도 했다. "불법행위가 있다면 엄정히 처벌하겠다" 이 말은 매번 의혹이 일 때마다 나왔던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아마 이러한 것일게다.

1.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2. 검찰이 조사를 끝낼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
3. 검찰은 내게 피해가 오지 않도록 사건을 마무리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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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정권 시절의 박근혜와 최순실, 둘의 관계는 깊고 길다. ⓒ 뉴스타파


이 정부의 마지막, 갈라파고스의 마지막과 같을까

이번 해명 과정에서 대통령은 그간의 태도를 반복했다. 자신에 대한 의혹은 모두 유언비어에 불구하며,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늘 그래온 것처럼 대통령과 청와대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무결점의 존재란 인식. 국민 다수의 견해와는 상당히 다른, 그들만의 상황 인식이다.

최근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경제는 어려운데 청와대 발 의혹들이 쏟아진다. 이럴 때 입장 표명에 나선 대통령이 '나는 옳다'라는 식의 우월의식을 보이는 것은 논란의 사실 여부를 떠나 끔찍하다.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다면, 사과의 한 마디가 시작이어야 했다. 다른 말은 모두 빼고 진상 조사를 하겠다, 국민의 염려를 덜어 내겠다는 참회의 한 마디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문제는 인식되지 못했으며, 예의 입장은 다람쥐 쳇바퀴를 돌듯이 반복됐다. 왜 그럴까. 대통령이 청와대라는 갈라파고스 제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민심과 교류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의 환경에만 적응한 청와대라는 갈라파고스, 물론 그 내부 환경은 대통령에게 아부 떨기와 코드 맞추기, 대통령의 눈과 입을 가리는 데 집중돼 있다. 민심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논리가 나온다. 그 논리는 날이 갈수록 강고해진다.

1832년 에콰도르의 J. 비야밀 장군이 부하를 이끌고 갈라파고스 제도를 개척하기 시작한 때부터 이 땅에 살던 코끼리 거북 등이 멸절 상태에 이르기까지는 10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제 1년 남짓한 시기면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청와대라는 갈라파고스를 떠나야 한다. 그들은 갈라파고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민심의 거센 심판에 그들이 멸절 상태에 이르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최순실 박근혜 #최순실 #박근혜 미르재단 #박근혜 케이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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