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적자인 독일 농가, 하지만 당당한 이유

[독일의 농부 1] 문화·경관 직불금 베푸는, 독일 켐텐농업국

등록 2016.10.28 16:04수정 2016.10.2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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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직불금으로 먹고사는 독일의 농부들은 자긍심으로 충만하다. 직불금은 농업에 종사하고 농촌에 거주하는 농민으로서 응분의 보상으로 여긴다.
독일 바이에른주의 켐텐(kempten)시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독일의 농부들은 부럽다. 그리고 한국의 농부들은 불쌍하다. 전 농업국장인 조제프 히머(Joseph Hiemer) 박사의 '독일의 직불금제도' 강의를 듣고나서 든 생각이다. 바이에른주 등 독일은 물론 EU(유럽연합)에서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직불금'이 독일과 유럽의 농부들을 먹여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름부터 농업직불금이나 농가 기본소득 보전 직불금이 아니라 '문화·경관(kulturlundschaft) 직불금'이다. 독일의 직불금제도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이다. 농가마다 농업소득의 80%를 직불금으로 보전받는다. 농촌에서 농민들이 생활고에 시달려 농업과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농민의 생활을 거의 책임지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토록 강력한 직불금 정책에도 불구하고 독일 농가의 농업경영은 구조적 적자 상태에 빠져있다. 그다지도 광활하고 평탄하고 비옥한 우량농지(농가 평균 50~60ha)에도 불구하고 적자라는 게 얼핏 이해되지 않는다. 독일의 평균적인 또는 평범한 소농들은 일년 동안 "쌔가 빠지게, 또는 뼈골 빠지게" 농사를 지어 고작 3만 유로쯤의 농업소득을 벌어들인다는 것이다. 비용이나 세금을 다 공제하고 남은 순소득으로 물론 정부에서 지급하는 직불금을 포함한 금액이다.

단순하게 겉으로만 비교한다면 한국의 평균적인 농가의 농업소득(약 1100만 원)에 비해 3배가 넘는 소득이다. 하지만 농업소득의 80%를 보전하는 정부의 직불금이 없다면 오히려 평균농지 1.5ha의 한국 소농들보다 농업소득이 적은 형편이다.

농가마다 가계지출이 4만 유로가 넘는다니 결국 1만유로의 적자를 감수하면서 농촌을 지키며 농사를 짓는 셈이다. 농식품 가공, 농촌관광 등의 6차산업 농외 소득, 목수, 원예사 등 부업을 겸업하지 않는다면 빚을 내서 생활해야 하는 어려운 지경이라는 말이다. 독일 농부들의 자조적인 탄식처럼 "뼈골 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결국 농업은 수지를 맞추기 어려운 구조적 저부가가치 노동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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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머 박사 직불금을 설명하고 있는 독일 바이에른주의 켐텐(kempten)시 전 농업국장인 조제프 히머(Joseph Hiemer) 박사 ⓒ 정기석


구조적, 만성적 적자 농업의 돌파구는 '직불금'밖에

무엇보다 2년 전에는 농업소득의 50%가 직불금이었는데 이제 80%에 달한다는 사실이 걱정스럽다. 그만큼 초지에서 낙농을 주로하는 독일 농부들의 농업소득 기반이 더욱 악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 보다 싼 우유"라는 말은 단지 자조나 넋두리가 아닌 통계적 사실로 확인된다. 독일의 농부들은 초지 1ha당 우유를 7천 리터 생산해서 리터당 30센트에 판다. 그러면 고작 1ha당 2100 유로에 불과한 저소득이 돌아온다.


평균 농지 40ha의 낙농 농가일지라도 연간 농업매출은 1억 원에 불과하다. 여기에 비용과 50%가 넘는다는 이런저런 세금을 빼고나면 남는 게 없다. 그래서 낙농농가마다 만성적인 적가경영, 급기야 이농과 폐농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의 해외판로가 위축된 악영향에서 비롯된 현상이지만 근본적으로 농사라는 고노동-저수익형 산업이라는 구조적 한계와 역부족 때문이다. 그렇다고 "먹을거리로 타국의 목을 조르지 않는다"는 녹색계획의 철칙을 60년째 고수하고 있는 독일로서 해외로 물량을 밀어낼 수도 없다.

그래서 선진농업국 독일 등 EU조차 농업의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저소득 구조를 해결하는 근본적 해결책은 '직불금'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무엇보다 1984년부터 시행된 독일의 문화·경관 직불금 제도의 목적은 말그대로 '아름다운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전하자는 것이다. 기껏 농사 소득이나 보전하려는 농업직불금이라는 오로지 상업적이고 농업경제학적 관점에 그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착하고 정의로운 사회적 농사'를 농부들이 짓고도 얼마든지 농촌에서 먹고살 수 있도록 국가와 정부가 책임지고 나서서 지원하려는 농촌사회학적 철학, 농촌사회복지 관점의 농민생활보장 정책에 다름아니다. 결국 공익적이고 공동체적인 농업이라는 이타적, 사회적 공무에 종사하는 농부들의 기본생활을 지켜주려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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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가족농가의 막내딸 독일 켐텐시 유기농 과수 가족농가(reisach fruchtegarten)의 피터 니더탄너(peter niederthanner)농장주의 막내딸 ⓒ 정기석


농촌 문화·경관을 지키는 농부의 자부심에 대한 응분의 보상

심지어 독일은 헌법과 동등한 위상을 지니는 동물보호법에 "동물도 인간처럼 신의 피조물이니 인간이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소는 고삐에 묶이지 않고 닭은 닭장(cage)에 갇히지 않는다. 그런 독일의 정부가 '농민을 위하는 마음'이 오죽할까 싶다. 과연 사회안전망이 강건하고, 사회적자본이 충만하고, 사회민주주의로 작동되는 '사람 사는 선진국가·행복사회' 답다.

독일의 직불금 예산지원 재원은 EU 50%, 독일 정부 30%, 주정부 20%로 분담한다. 독일의 16개 연방마다 특징과 지급방식의 차이가 있지만 대개 목적과 원칙은 거의 동일하다.  "기후변화를 방지하고, 토양침식·오염을 방지하고(예 : ha당 920유로), 생태계 다양성을 유지하고(예: ha당 600유로), 문화경관을 보전하고, 동물애호적 사육을 지원한다(예  : 방목 소 1두당 50유로)"는 것이다. 특히 환경보전직불(The Green Direct Payment)을 강조, 국가별 직불금 예산의 30%를 추가 지급할 수 있다.

결국 독일의 직불금은 한국처럼 땅을 많이 가진 대농의 농외소득만 늘려 소농·영세농과 소득 양극화만 오히려 촉진·강화하는 악법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EU의 직불금예산도 넉넉하다. 2003년 CAP(Common Agricultural Policy, 공동농업정책) 개혁을 계기로 전체 농정예산의 70%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전에 농산물 생산실적에 연동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에서 생산규모와 연계되지 않는 '생산중립적 단일직불제(Single Payment Scheme, SPS)'로 전환한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직불금제도는 일단 규모도 왜소하고 운영도 형식적이고 실효성도 미미하다. 현재 운영되는 10개의 농업직불금 제도는 각각 목적, 예산, 법률, 지침, 운영기준 등이 다르다. 복잡한 시행체계로 한정된 예산을 나눠 쓰다 보니 제도당 예산규모도 작을 수밖에 없다. 독일 등 EU처럼 농업·농촌이 공공재라는 인식 하에 공익적·다원적 기능에 대한 대가로서 보상한다는 광의의 직접지불을 강조하고 시행영역을 확대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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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람사우의 방목 소떼 3개월여 고산지 자연초지에 방목하는 젖소나 육우에 대해서도 지급되는 직불금(마리당 70유로) ⓒ 정기석


독일 농부가 농사를 안 지으면 독일 농촌이 어떻게 망가질까...

직불금으로 먹고사는 독일의 농부들은 자긍심으로 충만하다. 직불금은 농업에 종사하고 농촌에 거주하는 농민으로서 응분의 보상으로 여긴다. 식량은 물론 문화, 경관, 생태를 지키는 농부들은 "우리가 아무 농사 일도 안 하면 (농촌의 문화·경관이) 어떻게 망가지나 보라"며 당당히 시위를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다만, 직불금 수혜에 따른 농부의 책무를 어기면 그만큼 가혹한 징벌이 가해진다. 즉 적당히 제초제를 뿌리다 암행감시에 걸리는 등 단 1건, 한 농부의 위반사례라도 적발되면 재기 불능의 패가망신을 각오해야 한다. 정부와 연대한 공동책임징벌로 8백만유로의 무지막지한 벌금이 부과되는 것이다.

이처럼 독일 정부는 "농정공무원이 농민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안심하고 농민의 농산물·농식품을 구매·소비하라"고 약속하고 있다. 농민은 국가를 믿고 국민은 농민을 믿을 수밖에 없다. 직불금을 그저 농민이 불쌍하고 예뻐서 차별적, 시혜적으로 지원하는 게 아니다.

독일의 직불금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크다. 이처럼 직불금이 지켜주는 독일 농촌은 놀러오는 관광지가 아니라 '옷깃을 여미고 경건하게 쉬러오는 국민의 휴양지'이다. 농촌을 지키는 농민은' 국민의 별장지기'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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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촌의 목가적 풍경 농가당 평균 50~60ha의 농지를 경작하는 독일 농촌의 전형적인 목가적 풍광 ⓒ 정기석


한국도 '농민·농가직불금' 방식으로 바꿔야

한국은 '농업·농촌 종합대책'에서는 농식품부 예산 대비 직불사업 예산비중을 23%까지, 농가소득 대비 직불비 비중을 10%까지 확대하겠다고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2013년 실적을 보면 직불사업 예산비중은 18%, 농가소득 대비 직불금 비중은 4.3%에 그치고 있다. 특히 농가소득대비 직불금 비중은 미국 12.2%, 영국 19.5%, 일본 7.9% 등으로 오히려 선진국의 대규모 기업적 농가에 대한 직불금 지급률이 한국보다 더 높은 실정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농지 면적 기준(ha당)으로 지급되는 방식의 직불금제도는 비합리적이다. 농지를 많이 소유한 일부 대농에게 이익이 편중될 뿐이다. 농지를 많이 보유하지 못한 대다수의 소농, 임차농 등은 해당사항이 없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실제 농사를 짓지 않는 위장농민들의 직불금 부당·위장 수령의 폐해도 빈발하고 있다.

그래서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은 "농가 단위로 기본소득 직불금을 지급하자"고 제안한다. 법정 최저임금소득의 50%를 농가에 보충 지원한다고 가정하면, 농가 호당 약 월 50만 원, 연간 600만 원을 지급하면 된다. 이 기본소득을 '농가 직불금' 개념으로 전국 농가 110만호에 일괄 지급한다면 연간 총 6.6조원 정도가 소요된다. 2013년 기준 농가 평균소득의 17.4%, 또는 총 농림생산액의 24.4%에 해당하는 규모다.

최근 충남도는 벼 재배여부와 면적에 관계없이 전체농가에 균등 지급하는 '농가단위 직불금 제도'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도내 전체 쌀 농가의 65%를 차지하는 1ha미만 소농가에 대한 직불금이 평균 20만원인 반면 전체 7.6%에 불과한 3ha이상의 대농가에게는 129만 7000원이 지급되는 대농과 소농 간의 소득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정책목적이다.

또 "농업·농촌 유지·보전을 위해 주민 주도로 지역환경 및 생태개선활동을 벌이고 조건이행에 따라 생태경관직불금을 가산 지급하는 방식"의 '농업생태환경 프로그램'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유럽형 직불금 제도의 한국적 변형이다. 농가당 1년 최대 300만 원까지 보상·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기존의 직불금과는 별도다. 충남도가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한국형 농업직불금 제도를 혁신하는 물꼬를 튼 셈이다. 기본소득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농민·농가직불금' 말고 우리 농업·농촌을 구원할 효과적인 근본처방은 없다는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독일의 농부’ : 문화경관 직불금, 농업회의소, 협동조합, 사회안전망 등으로 국가와 정부의 돌봄과 보살핌을 받으며,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부의 나라’를 지키고 있는 독일, 오스트리아 등 EU(유럽연합)의 행복한 농부들 이야기
#독일 #농가 #농업 #직불금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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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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