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났다, 하루하루가 즐겁다

나의 고향 입성기

등록 2016.10.28 15:49수정 2016.10.28 15:4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3개월 전 어느 저녁 제가 전세로 살고 있던 아파트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2년의 계약기간이 임박할 무렵, 집주인은 전세 보증금 8천만 원 인상을 통보했습니다. 마침 휴직 상태라 수입도 불안정한 시점에 8천만 원이란 돈은 너무 큰 부담이었습니다.


집주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전세보증금은 그대로 두고 매월 30만 원 월세를 내는 반전세를 제안했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을 재워놓고 아내와 저는 식탁에 마주 앉았습니다. 한동안 서로 말이 없다가 아내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이제 어떡할 거야?"
"어떡하긴 뭐 어떡해. 은행에 전세자금 대출 알아봐야지."
"여보, 그냥 고향 가자. 그냥 고향 가서 자기 하고 싶은 일하고 좋아하는 활동하면서 살아."

고단했던 서울생활의 정리

5년여 서울 생활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결혼을 하고 두 딸을 얻었습니다. 지방에서 상경해 서울 생활이 낯설고 육아에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과감히 회사를 휴직했습니다.(관련 기사 : 예전엔 몰랐다, 아내가 이렇게 사는 줄...)

하루 종일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지내는 생활이 보람되기도 했지만 참 힘들었습니다. 서울 생활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고향에 대한 향수는 깊어만 갔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늙고 약해지는 부모님도 걱정되고 고향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던 정당생활, 시민단체 생활의 열정도 다시 불태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선뜻 아내에게 저의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다 알아. 인생 뭐 있어?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고, 좋은 사람들하고 함께 사는 게 제일 좋은 거지..."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내는 낯을 심하게 가리는 부산 여자입니다. 처음 이사 와서 사투리와 부끄러움을 잘 타는 성격 때문에 한참을 힘들어했습니다. 이제는 가끔 서울말도 섞어 말하고 아파트 사람들과도 친해져 가는데 또 다른 곳에서 적응해야 할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정말 기뻤습니다.

아내의 배려로 고향으로 가기로 결정

대구 혁신도시 전경 새로 이사온 대구 신서동 일대 혁신도시. 아직 편의시실, 교육시설 등이 부족하지만 깨끗하고 쾌적하다. ⓒ 조명호


집주인에게 계약 포기를 통보했습니다. 운 좋게 대구에 새로운 직장도 구했습니다. 곧바로 주말에 대구에 내려와 집을 알아봤습니다. 이곳저곳을 헤매다 혁신도시 안에 있는 아파트를 계약했습니다. 서울에 있던 집보다 5평이나 넓었지만 전세보증금은 1억 원 가까이 낮았습니다.

숨통이 확 트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울에 있는 집의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아 전세보증금을 제 날짜에 돌려받지 못할까 봐 한동안 조마조마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이사 날짜에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고 무사히 잔금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사하는 날.

새벽부터 이사업체가 짐을 정리하는 동안 아내와 저는 집 근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아이들과 놀았던 놀이터, 공원 옆 산책길, 편의점, 작은 수족관이 있어 큰 애와 자주 놀러 갔던 주민센터... 하나하나가 추억을 새록새록 돋게 했습니다. 아내가 물었습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는 서울이 좋은데... 다시 서울로 올 수 있을까?"
"당연하지.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는 서울로 다시 와야지. 돈 벌어서 다시 오자"

아내가 빙긋이 웃습니다. 아내도 지키기 힘든 약속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가구와 살림살이가 모두 빠진 빈 집을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했습니다. 첫째가 뿡뿡이카로 박치기한 곳의 벽지가 떨어져 몰래 테이프로 붙였습니다. 둘째가 크레파스로 낙서한 안방문을 손으로 대충 지웠습니다.

이사 온 새집은 참 조용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정책인 지방 혁신도시에 제가 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깨끗하게 정비된 도로와 학교 등 지역의 다른 곳에 비해 생활여건도 나쁘지 않습니다.

주민센터 공무원들의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나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무뚝뚝한 일처리는 서울에 비해 다소 불만이지만 경상도 사람들의 성격이려니 생각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현관이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웃으며 꼭 인사를 나눕니다. 서울에 있을 때는 거의 없던 일입니다. 아내는 옆집 아주머니와 벌써 친해져서 음식을 서로 나눠먹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살다

이사온 집의 애들 방 아직 정리가 덜 되어 뽀로로 매트도 펴지 못했다. ⓒ 조명호


서울이나 대구나 다 같은 사람 사는 곳입니다. 이곳에도 경쟁도 있고 힘든 일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고향 근처에 이사를 오니 하루하루가 참 좋습니다.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항상 반겨주시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전화만 하면 술 한 잔 기울일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 뜨겁게 토론하고 함께 하는 동지들도 있습니다. 역시 사람은 사람 사는 세상에 살아야 하는가 봅니다.

가끔은 아내의 삶과 생각은 고려하지 않고 너무 제 위주로 결정한 것은 아닌지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아내가 고맙습니다. 더욱더 잘 해야겠습니다. 방금 전 아내가 문자로 퇴근할 때 계란 한 판을 사 오라고 합니다. 계란 한 판에 맥주와 오징어를 함께 사서 오늘은 아내와 한 잔 해야겠습니다.
#이사 #서울생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