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째 사내가 밥을 짓는감?" 재밌어서요!

[나는 나대로 산다] '밥짓는 사내'가 일구는 평화 살림, 시골 살림

등록 2016.11.04 19:36수정 2016.11.2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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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나게 먹어 주니 언제나 고마운 밥짓기. 봄에 누리는 쑥부침개. 당근을 워낙 좋아하니 당근을 올린 쑥부침개. ⓒ 최종규


저는 열아홉 살까지 집밥을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차리신 집밥을 먹었어요. 스무 살에는 바깥밥을 먹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며 한 해 동안 내내 바깥밥을 사다 먹습니다. 스물한 살부터는 손수 밥을 지어서 먹습니다. 이때부터 제금 나며 혼자 살았기에, 혼자 살며 밥도 마땅히 혼자 지어서 먹습니다.


짝님을 만나고 아이를 만난 뒤에는 '혼밥'을 열 몇 해 만에 내려놓고 하루 두 끼니 밥을 짓습니다. 남들은 하루 세 끼니 밥을 먹지만 우리 집에서는 하루 두 끼니만 먹기에 두 끼니 밥을 지어요. 제 나이가 마흔 줄이 넘으니 손수 밥을 지어서 먹은 지 스무 해가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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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말이를 할 적에 집 둘레에서 풀을 뜯고 김도 한 장 얹고 이것저것 갈아 넣어서 부친 뒤, 예쁘게 썰어서 꽃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립니다. 이러면서 나물도 한 접시 해서 올리랴 국을 끓이랴 부산합니다. ⓒ 최종규


아홉 살 큰아이는 아침저녁으로 물어요.

"아버지, 오늘은 무슨 밥?"

저는 이런 물음을 듣고는 뾰족이 대꾸를 못 해 줍니다.

"음, 음, 오늘은 '오늘 밥'이지."
"'오늘 밥'이 뭐야?"
"오늘 먹어서 '오늘 밥'이야."


때로는 좀 달리 대꾸해 봅니다.

"오늘은 '맛밥'이야."
"'맛밥'은 뭐야?"
"맛있는 밥이니 '맛밥'이지."

때로는 아이들이 마루에서 놀다가 저희끼리 얘기를 나누더니 부엌으로 쪼르르 달려옵니다.

"아, 맛있는 냄새. 오늘 무슨 밥이야?"
"맛있는 냄새가 난다니, 오늘은 그야말로 '맛밥'이 되겠구나."

'왜 밥은 가시내만 지어야 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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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하고 함께 찐빵 빚기. 반죽을 굴리고 속심 넣기 쉽지 않지? ⓒ 최종규


우리 식구가 아직 도시에 살던 무렵, 도시에 있는 이웃들은 우리를 보며 으레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 집은 여자가 일을 안 해? 왜 남자가 밥을 해?"하고요. 우리 식구가 시골에 사는 오늘날, 마을에 있는 이웃이나 읍내에 있는 분들은 우리를 보며 흔히 이렇게 물어요.

"저 집 가시내는 뭐 하는고? 저 집은 으째 사내가 밥을 짓는감?"

이런 말을 열 해쯤 듣고 살면서 딱히 대꾸하지 않습니다. 대꾸할 만한 말도 없고, 대꾸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니 왜? 왜? 어째서? 밥은 가시내만 지어야 하남? 사내는 가만히 팔짱 끼고 앉아서 밥상만 받으면 되남? 때가 어느 때인데 여즉 사내는 부엌 언저리도 맴돌지 말아야 하는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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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를 살짝 부쳐서 올려 본다. 김치도 하나하나 담가서 함께 밥상에 오른다. 때 맞추어 김치 담기도 바쁘다. ⓒ 최종규


저는 집에서 '밥 짓는 사내'로 삽니다. 밥을 손수 지어서 아이들한테 열 해째 먹이는 살림을 꾸리는데, 이러는 동안 늘 '밥말'을 들려줍니다. '밥말'이란 밥하고 얽힌 말이나 이름입니다. 부침개를 할 적에 '부침개'가 뭔지 알려주고, '부침(부치다)'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지짐(지지다)'를 알려줍니다. 또 '볶음(볶다)'을 알려주며, '무침(무치다)'이나 '데침(데치다)'이나 '버무림(버무리다)'을 알려주지요.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낱말을 알려줄 적에는 저 스스로 새롭게 배우기도 합니다. 고기를 삶기도 하고 볶기도 하고 끓이기도 하면서, 또 그냥 '익힐' 적하고 '데울' 적에 왜 이렇게 달리 말을 하는가를 알려주며 이때에도 저 스스로 새롭게 말을 배워요.

밥을 짓거나 살림을 꾸리면서 이런 이름 저런 말을 그냥 쓰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제가 하는 '집밖일'은 한국말사전을 새롭게 엮는 일이에요. 우리 집에서는 고기를 잘 안 먹지만 더러 고기를 볶거나 지지는데요, 아이들이 당근을 워낙 좋아해서 '당근닭볶음'이나 '당근돼지볶음'이나 '당근소볶음'이나 '당근오리볶음'을 곧잘 합니다. 당근을 고기보다 더 많이 넣어서 볶기 때문에, '당근'이라는 낱말을 '밥이름'에 넣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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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찹쌀떡을 해 본다. 밑손질이며 이것저것 미리 챙기느라 손이 많이 가는데, 먹을 때는 한입에 끝. ⓒ 최종규


'닭도리탕'은 아직 해 본 일이 없습니다. 다만 '매운닭볶음'을 두어 번쯤 해 보았으나 '매운볶음'이 되면 아이들이 못 먹어요. 아이가 둘 있는 우리 집에서는 늘 아이 혀 맛에 맞춘 '부드럽고 여린 간'을 합니다. 카레조차 매운맛이 하나도 없이 부드럽게 해요. '밥짓는 사내'는 집에서 김치를 손수 담글 적에도 고춧가루는 되도록 적게 쓰거나 아예 안 쓰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닭도리탕'이 아닌 '매운닭볶음'이 제대로 된 이름이기는 한데, 이를 안 맵게 하자니 '맑은닭볶음'이 되는 셈일까요? 아니면 '하얀닭볶음'쯤 될까요? 아니면 '감자닭볶음'이라고만 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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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말랭이를 무쳐서 병에 옮겨 담기.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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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한철에만 누리는 찔레무침. 하나는 된장으로, 다른 하나는 고추장으로 무쳤다. 그런데 찔레무침을 하자면 먼저 찔레나무 곁에서 가시에 신나게 찔리면서 찔레싹을 훑어야 한다. 한나절 동안 훑어서 삽십 분 동안 무친다. ⓒ 최종규


늘 집에서 밥을 지으니 '집밥'을 손수 차려 먹는데, 때로는 어깨가 무거우니 바깥마실을 하며 사다가 먹습니다. 이때 우리는 모처럼 '바깥밥'을 누립니다. 바깥밥을 먹으면 설거지를 안 해도 되어 홀가분해요. 더구나 바깥밥을 먹는 동안에 '다른 집(또는 가게)에서는 밑반찬을 어떻게 차리고 간을 어떻게 하는가' 하고 살펴요. 아이들은 밥상에 올리는 대로 맛나게 먹는다면, '밥짓는 사내'인 나는 '우리 집에서도 한번 해 보자'는 생각으로 바깥밥 반찬을 한 점씩 천천히 씹으면서 간 맞춤과 밑 손질을 어림해 보곤 합니다.

요새는 인터넷을 켜서 밥짓기를 배우기도 해요. 열린 인터넷이란 온갖 밥을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손길로 짓는 모습과 몸짓을 손쉽게 지켜보면서 배우는 길을 열어 준다고 느껴요. 지난날에는 어머니 어깨너머로 밥짓기를 배워야 하거나 요리학원에 다니거나 요리책을 봐야 했어요. 지난날에는 '사내가 왜 밥짓기를 배워?' 하면서 밥짓기나 반찬하기나 김치 담그기를 배우기가 몹시 어려웠어요. 웬만하면 사내한테는 아예 안 가르치셨지요.

여성들이 짊어지던 밥상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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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뒤꼍에서 자라는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서 잼을 졸인다. 올해에는 무화과잼을 세 차례 졸였다. ⓒ 최종규


하루 두 끼니를 지으며 사이에 '샛밥'을 내놓아요. 주전부리일 수 있고 새참일 수 있어요. 가볍게 즐기는 입가심일 수도 있고요. 하루에 두 끼니를 지어서 차려도 밥짓기에 품을 많이 든다고 느껴요. 스무 해 남짓 '밥짓는 사내'로 살면서 '밥짓는 품'이란 무엇인가 하고 늘 온몸으로 느껴요.

이 나라 수많은 어머니와 할머니와 가시내는 으레 하루 세끼니를 지으시는데, 밥도 짓고 옷도 짓고 살림도 하고 수많은 집안일을 건사하는 분들은 그야말로 온 하루가 오롯이 집일이랑 집살림에 쓰인다고 할 만합니다. 저는 밥을 짓고 살림을 꾸리면서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뿐 아니라 참말 온누리 가시내가 그동안 어깨에 짊어지던 무게를 늘 느낍니다.

이러한 무게를 왜 우리 사내들은 '사내보다 힘이 여리고 몸집도 작다고 하는 가시내'한테 도맡기나 싶어 아리송하곤 해요. 힘이 세고 몸집도 큰 사내라면, 기꺼이 신나게 씩씩하게 밥도 짓고 살림도 하면 참으로 좋을 텐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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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읍내에서 돼지고기를 사 와서 삶아 보았다. 마당에서 훑은 초피알하고 초피잎으로 냄새를 빼고는, 간장으로 간을 했다. ⓒ 최종규


우리는, 아니 '우리는'이라기보다 '이 나라 사내'들은 집에서 어떤 사내로 지내는가요? '밥짓는 사내'로 지내는가요, 아니면 '밥상 받는 사내'로 지내는가요?

우리는 저마다 어느 자리에 서서 어떤 삶·살림을 짓느냐에 따라 말·넋·생각이 모두 다르리라 느껴요. 밥말이란 밥을 짓던 사람들이 널리 쓰면서 이어온 말일 테고, 부엌에서 살림을 짓고 온 집안 살림을 건사하던 사람들이 두루 쓰면서 물려받은 말이에요.

어느 모로 본다면 '밥말'은 '가시내 말'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부엌일이나 집안일을 퍽 오래도록 오로지 가시내한테 떠넘겼으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한겨레 '부엌말·살림말'을 가만히 살피면 '한자를 모르고 한자를 쓸 일도 없던 수수한 사람들이 쉽고 살가이 쓰던 낱말'이로구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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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마실을 하며 얻은 달걀버섯으로 달걀버섯볶음을 했는데, 다들 맛있다며 금세 사라졌다. ⓒ 최종규


요즈음은 '셰프'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부엌지기'나 '밥지기'나 '밥짓는이'가 아닌 외국말 '셰프'하고 얽힌 말은 영어나 프랑스말 같은 외국말이 가득해요. 물고기 살점을 날로 뜨는 '날물고기살'인 '회'를 다루는 곳에서는 일본말이 가득하지요.

오늘 하루도 하루 두 끼니를 차리고 샛밥을 마련하는 '밥짓는 사내'로서 '밥말·부엌말·살림말'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제가 부엌에서 밥을 지으면서 쓰는 말은 먼먼 옛날부터 수많은 가시내가 피와 땀과 눈물을 바치면서 빚은 말마디이지 싶어요.

저는 이 밥말·부엌말·살림말을 우리 아이들한테 새롭게 물려주고 싶어요. 너무 고되거나 힘겹거나 벅찬 일에 짓눌리며 쓰는 말이 아니라,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쓰는 밥말·부엌말·살림말이 되도록 가다듬어서 물려주려는 마음이에요.

오늘도 즐겁기 위해 밥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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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를 썰어서 모과차 담기. 손목도 팔도 저린 일 가운데 하나. ⓒ 최종규


아이들하고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는 언제나 "식사를 하자"고 말하기보다는 "밥을 먹자"고 수수하게 말합니다. 밥상을 닦고 설거지하고, 비로 바닥을 쓸고 걸레로 훔치고, 설거지를 하고 개수대를 갈무리하고, 밥찌꺼기는 그릇에 담아 뒤꼍으로 가져가서 거름이 되도록 건사해요. 우리 집 부엌에서 나오는 구정물이 밭으로 돌아가도록 화학 세제는 한 방울도 안 쓰는 살림으로 가꾸고, 플라스틱 없는 부엌살림이 되도록 돌봅니다.

둘레에서 다른 분들이 앞으로도 "저 집은 으째 사내가 밥을 짓는감?" 하고 혀를 끌끌 차시면 이렇게 말씀을 여쭈려고 해요. 빙그레 웃으면서 얘기하려고요.

"저희는 저희대로 즐겁게 밥을 지으며 살림을 가꾸려 해요. 우리는 모두 밥을 먹는 사람인데, 사내도 가시내도 밥 짓기를 함께 배우고 기쁘게 살림을 짓는 길을 배워야 한다고 여겨요. 사내랑 가시내가 함께 밥을 짓고 살림을 해야 집안이 넉넉하고 나라도 평화롭게 거듭나리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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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멸치볶음. 우리 집에서는 멸치만 볶지 않고, 배추나 당근이나 버섯도 함께 넣어서 볶는다. 둘레에서 "저 집은 으째 사내가 밥을 하는감?" 하고 물으면 "재미있어요!" 하고 말씀을 올린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나는 나대로 산다> 응모글입니다.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밥짓는사내 #집안일 #부엌지기 #살림노래 #나는나대로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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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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