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실로 옮겼다, 호구조사 시작이다

[부모님의 뒷모습 30]

등록 2016.11.04 12:31수정 2016.11.04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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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집에 오면 할머니는?"


둘째가 커진 눈으로 묻는다. 짜식 무심한 척하더니 자기도 할머니가 걱정되긴 하나 보다.

"응 할아버지 오셨어. 좀 있으면 외삼촌이 와서 자고. 내일은 이모가 자. 다음은 엄마."

둘째 얼굴에 안심하는 빛이 보인다.

팔순 엄마가 무릎에 염증이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첫날 새벽 내내 나를 깨웠다. 혼자 힘으로 일어나 앉지도 못하니 화장실 갈 때도 물을 마실 때도 내 도움이 필요했다. 매시간 깨우는 엄마를 수발하느라 한숨을 못 자고 집에 막 들어온 길이었다. 이틀간은 언니 오빠가 밤 당번을 서기로 했으니 나는 집에서 편히 잘 수 있다. 다행이다.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땐 입원이라도 하면 남편과 함께 돌봤는데 이제 부모님이 아프시니 형제들과 함께 돌보게 된다. 아무래도 친정 부모님 일엔 남편보다는 친정 형제가 편하다. 나중에 나도 늙고 아프면 우리 집 아이 셋이 돌아가면 당번을 서 줄까? 그땐 지금과 다르겠지. 간병인을 쓰더라도 함께 의논하고 할 형제가 있으니 다행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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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빨리 회복하려면 가급적 움직이지 말고 화장실 갈 때도 휠체어를 타라 했는데 엄마가 그걸 잘 지키는지 궁금했다. ⓒ pixabay


푹 쉬고 다음 날 낮에 병원에 갔다. 의사가 빨리 회복하려면 가급적 움직이지 말고 화장실 갈 때도 휠체어를 타라 했는데 엄마가 그걸 잘 지키는지 궁금했다. 새언니가 엄마 환자복을 갈아 입혀 주고 있다. 엄마가 밝게 웃는다. 통증이 줄어든 모양이다. 그런데 병실에 휠체어가 안 보인다.

"엄마 휠체어 어디 있어?"
"휠체어 타지 말고 걸어 다니래. 그래서 지팡이 짚고 복도 두 바퀴 걸었어."
"누가 그랬어?"
"여자 의사가."

뭔가 이상하다. 어제와 말이 달라졌다. 간호사를 찾아가서 물었다.

"여자 의사 분이 저희 엄마더러 걸으라고 했다는데요. 저는 어제 걷지 말라고 들었어요. 무슨 말이 맞는 거예요?"
"여자요? 정형외과 닥터 중에 여자분은 없는데. 아하 내과 선생님이 수술 가능한지 판단하러 오셨거든요. 그분은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 주신 거고요. 어머님은 안 걷는 게 좋으세요."

알았다고 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엄마 연세가 팔순이 넘었는데 여러 의사가 찾아와서 다르게 지시하고 가면 어떻게 하나? 주치의를 만나서 자세한 걸 물어보아야겠다. 그런데 주치의를 입원한 지 사흘이 되도록 만나지를 못했다. 응급실에서도 젊은 의사만 보았을 뿐이다.

언니한테 전화하니 꼼짝 말고 병실에서 기다렸다가 주치의를 만나란다. 간호사에게 회진은 언제 오냐 물으니 의사가 너무 바빠서 회진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단다. 간호사가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어줬지만 전화를 안 받는다. 외래환자가 많으니 주치의가 바쁜 것은 알겠다. 그렇다 해도 보호자가 주치의 보자고 꼼짝 않고 병실에서 기다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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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환자가 많으니 주치의가 바쁜 것은 알겠다. 그렇다 해도 보호자가 주치의 보자고 꼼짝 않고 병실에서 기다려야 하나? ⓒ pixabay


잠깐 탕비실에 가려는데 나이든 의사가 간호사를 대동하고 엄마 병실쪽으로 간다. 주치의인가 싶어서 병실로 뛰어 들어갔다. 나이 든 의사가 우리 병실에도 들어온다. 옆에 환자에게 가서 이것저것 말을 나눈다. 엄마에게도 오려나 했는데 의사가 획 돌아서 나가 버린다. 엄마 주치의가 아니다. 이런 일을 한번 더 겪고 엄마 주치의를 만났다. 주치의 만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염증 수치가 좋아지셨어요. 가급적 움직이지 마시고요. 수요일까지 염증수치 떨어지는 거 보고 수술할지 판단할 거예요."

다음날, 엄마는 3인실에서 6인실로 옮길 수 있었다. 엄마의 염증 수치도 꾸준히 떨어져서 수술은 안 하기로 결론이 났다. 의사도 나이 많은 엄마를 수술하는데 부담스러웠을 거다.

6인실은 병실비도 쌌지만, 또 하나 좋은 점이 있었다. 공동간병인을 쓴다는 점. 우리 형제는 밤에 병원에서 자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낮에만 가서 돌봐드리면 되는 상황이 된 거다. 여섯 명의 환자에 두 명의 간병인이 주야 교대로 네 분이 일을 하셨다. 환자 한 명당 4만 원을 내면 된다고 했다. 덕분에 부담이 많이 줄었다.

6인실 병실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창가 자리 환자 목소리가 제일 크다. 모든 일에 참견이다. "저기 할머니 토할려고 하네. 빨리 빨리 빨리 세워드려." 공동 간병인에게 하는 말이다. 목소리만 보면 전혀 환자가 아니다. 남자 둘이 창가 환자를 문병하고 간다. 창가 환자가 손님이 누구인지 설명한다.

"우리 큰 사위랑 외손주야. 쟤가 지금 A대 4년 장학생이야. 공부를 잘해. 내가 나이 서른에 남편을 잃고 집 장사를 해서 우리 4남매를 다 대학까지 공부시켰다니까? 지금은 시집 장가가서 다 잘 살아."
"아휴~ 대단하시네요. 혼자 힘으로."

옆에 할머니가 맞장구친다. 창가 할머니 목에 힘이 들어간다. 어디 자식 없는 사람은 명함도 못 내밀겠다. 어디 가나 노인들이 모이는 곳은 자식 자랑이 끝이 없다.

집에 돌아왔는데 오후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허리 뜨끈하게 해주는 전기벨트가 고장이 났다고 우리 집에 있는 전기벨트를 가져오란다. 전기벨트엔 육각형의 돌이 잔뜩 박혀 있어 무게가 꽤 나간다.

병실에 도착해서 벨트를 꺼내 드렸다. 병실은 오전과 달리 방문객이 없어 한산하다. 엄마 저녁 드시는 거 보고 병실에서 일어났다. 엄마 볼에 뽀뽀를 해 드렸다. 병실에 있는 분들께도 인사를 했다. 한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한다.

"어머 어쩜 그렇게 다정하게 인사를 하세요. 딸이에요?"
"네, 막내딸이요."
"딸이 할아버지랑 똑 닮았네요. 그럼 아까 온 이는?"
"둘째 딸이요."
"아들은?"

나는 병실에서 나왔는데 병실에선 우리 집 호구 조사가 시작되었다.

6인실은 병실비도 싸고 공동 간병인도 있어 좋기는 한데 할머니들의 호구조사는 피할 수 없다. 생각해 보니 노인이 되면 사회의 모든 관계가 끊기고 오직 가족과 친척 안에서만 존재를 인정받게 된다. 그러니 자식이 없으면 노인은 사회에 연결되기가 쉽지 않다.

병원에 가도 관공서에 가도. 나이 많은 노인이 나타나면 '자식 없이 왜 혼자 돌아다녀.' 그런 눈길을 보낸다. 요즘은 다양한 가족 형태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양한 노년의 삶도 있을 것이다. 자식이 없는 노인도 있는 거고 바쁜 자식을 둔 노인도 있다.

자식들도 제 앞가림하고 살기도 바빠서 여유가 없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경제 여건이 어렵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부모님께 할 도리를 못해서 죄인된 심정이 들 때가 많다. 여건이 좋았다면 더 잘해드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자식들 대다수가 이런 죄책감을 갖는다면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란 생각이 든다.

성실하게 일하면 자식도리도 다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만들어 주든가 그렇게 못 할 바에는 자식들이 죄책감 안들게 노인을 위한 공공 서비스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병원들 주치의 회진 시간 좀 정하자. 제발.

#부모님의 뒷모습 #병실 #간병인 #호구조사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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