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닮은 싱가포르, 층간소음 해결은 달랐다

[현장] 2016 서울갈등국제컨퍼런스 "주민 참여 높이고 갈등 조정 제도화해야"

등록 2016.11.11 18:59수정 2016.11.1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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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강정, 경남 밀양, 경북 성주, 이제는 갈등의 대명사가 된 지명들이다. 군사시설 건설부터 송전탑 설치까지 사안도 다양하다. 대형 국책사업부터 층간소음까지, 한국사회에 다양한 층위와 양상으로 갈등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갈등을 해결 방식은 여전히 물리적인 방법이나 혹은 사법적인 제도를 사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층간소음으로 다투다 살인까지 일어나고, 민사소송 건수는 일본의 열 배에 달한다. 사법적 해결 의존도가 높은 것은 마땅한 해결 장치가 사실상 부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2일부터 3일까지 서울시청에서 열린 '2016 서울 갈등 국제컨퍼런스'에 참가한 각국의 갈등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시민들의 참여와 숙의 과정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갈등대안적 분쟁해결 방식을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국제적 갈등해결 기관들과 공조방안을 논의해오다 국내외 갈등관리 기관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협력하기 위해 이번 컨퍼런스를 마련했다. 이 행사엔 미국·호주·프랑스·싱가포르 등 해외 갈등관리 전문가들을 비롯해 300여 명이 참석했다.

박원순 "갈등은 회피 아닌 발전 동력으로 전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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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은 인사말에서 “갈등을 억누르고, 회피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해왔지만 갈등은 전환해야 하는 대상”이라며, “사회 곳곳의 갈등의 에너지가 발전의 동력으로 전환될 때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협치의 유인이 생겨나며, 소외된 계층을 위한 제도가 마련된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은 또 “톱다운(Top-down) 방식이 아니라 수평적 관계에서의 네트워크 맺는 방식으로 갈등에 대한 원칙과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로 컨퍼런스를 시작했다. ⓒ 2016 서울갈등국제컨퍼런스


이번 컨퍼런스는 갈등의 층위를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해 진행됐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공공갈등 관리와 해결 방안을 다루고, 도시나 지자체 차원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이야기한 다음, 개인 차원의 갈등 영역인 이웃 간 분쟁으로 좁혀갔다.

첫 번째 세션에선 국제분쟁해결조사네트워크 대표인 마리아나 콘테스트 교수가 세계적 갈등해결의 흐름 및 방향을 짚었다. 이어 프랑스 국가공공토론위원회(아래 CNDP) 크리스티앙 래리 위원장은 CNDP의 기능과 역할을 설명하며 국가적 차원의 공공갈등 예방과 해결 모델을 제시했다.


CNDP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민들이 목소리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법과 규칙만으로 시민적 합의와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며 참여와 숙의 과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대형 국책 사업은 공공 토론만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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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래리 위원장은 프랑스 국가공공토론위원회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민들이 목소리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2016 서울갈등국제컨퍼런스


CNDP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대규모 국책 사업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22명의 다양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CNDP는 20여 년된 독립행정기관으로, 프랑스의 대규모국책사업을 결정할 때 개입한다. 특히 공사비가 3억 유로 이상 소요되는 철도, 도로, 수로, 공항, 항만, 원자력발전소, 송전선로 등등 건설은 의무적으로 사업자가 모든 정보를 의무적으로 발표, 공개를 하게 되고 CNDP에 안건을 회부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프로세스의 핵심은 4가지로 요약된다. ▲ 의사결정 전 토론 과정을 거치되 ▲ 그 토론 과정에는 다양한 구성원이 참석해야 하며 ▲ 그 중에는 반드시 해당 이슈에 상반된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다양한 의견을 청취토록 하고 ▲ 이후 참석자들의 공공토론을 통해 의견을 도출토록 하는 것이다.

이런 공공토론 과정은 1년 가까운 시간동안 준비되고 실행된다. 6개월 동안 공공토론을 준비하고, 4개월 동안 공공토론 및 공론조사를 거친 후 이를 토대로 2개월 동안 종합보고서를 만들고, 3개월 이내에 사업시행자에게 후속 조치가 내려진다. 특히 이동이 불편한 취약계층을 위해서는 마켓이나 기차역까지 버스나 천막 등으로 이동식 토론장을 마련한다는 부분은 CNDP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적극적인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CNDP 래리 위원장은 "결정보다 과정 즉, 절차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먼저 결론을 내려놓고 구색 맞추기용으로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으로써 토론하고 숙의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세션 마지막에는 한국행정연구원의 은재호 연구위원의 진행으로 대담이 진행됐다. 은 연구위원은 대담에서 "갈등관리는 기술이 아니라 행정과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이라며 참여와 숙의 과정의 중요성을 언급했고,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참여와 숙의 과정의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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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세션 이후에는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맨 왼쪽)의 진행으로 대담이 진행됐다. 은 연구위원은 "갈등관리는 기술이 아니고 행정과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이라며 서울시와 프랑스, 호주에서의 갈등관리 패러다임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다. ⓒ 2016 서울갈등국제컨퍼런스


"갈등해결의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제2세션은 지자체 단위의 공공갈등 관리에 초점을 두고 발표와 토론을 이어갔다. 일본 가와사키시 츠요시 쿠스미 시장 정책보좌관은 가와사키시의 분쟁해결 방안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갈등 예방 차원에서 계획책정위원회 속에 심의위원을 공모로 모집해서 참여를 시킨다든지,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공공비평(Public Comment)' 등의 형태로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한다"며 시민들과의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지방자치단체의 갈등관리 시스템도 소개됐다. 하동현 교수(안양대)는 서울시가 도입한 갈등조정제도 및 갈등관리시스템에 대해 평가하며 "서울시 조직 전반에 사전적 갈등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시켰고, 주요한 문제점 해결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말했다.

또 "서울시의 갈등관리시스템은 한국지방자치단체에서는 처음으로 도입되어 갈등조정담당관을 책임자로 하는 부서가 신설되었고, 시행규칙이 제도적 기반으로 마련됐다"며 대구 인천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로 갈등관리시스템이 확산되는 통로가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하 교수는 "현재 서울시의 행정 시스템과 조직 체계가 신속한 대응을 어렵게 하고 정책대응에 시간차를 가져올 수 있어 '갈등관리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며 "갈등관리의 적합한 행정조직 전반의 변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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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세션은 지자체 단위의 공공갈등 관리에 초점을 두고 발표와 토론을 이어갔다. ⓒ 2016 서울갈등국제컨퍼런스



"소송은 최후의 수단, 법원이나 경찰이 분쟁조정 권고해"   


제3세션에서는 개인적 차원의 분쟁으로 논의의 폭을 좁혔다. 먼저 서울시 이웃분쟁조정센터의 모티브이기도 한 싱가포르 공동체분쟁조정센터(아래 CMC)의 임란위안이 수석조정가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체분쟁조정 프로세스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발표했다.

싱가포르 전역에 총 160명의 조정가가 활동하고 있는 CMC는 이웃 간, 혹은 가족 간의 갈등을 주로 다룬다. 설립 후 20년 동안 총 8000여 건의 갈등을 조정했고, 이는 1년 평균 500건에 달한다. 임란위원 수석조정가는 "싱가포르의 인구를 고려할 때 결코 적지 않은 숫자"라며 "8000개의 사례 중 75%가 성공적으로 중재됐다"고 말했다.

다세대 주택이 많은 싱가포르도 한국의 갈등 이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층간소음이나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분쟁이나 직장 내 분쟁 등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소송으로 가기 전 법원이나 경찰서, 시의회 등에서 대안적 분쟁해결 과정을 거치도록 권유하고 개인이 적극적으로 CMC를 찾아 갈등조정의 도움을 요청하는 등 해결 방식은 한국사회와 양상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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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공동체분쟁조정센터(이하 CMC)의 임란위안이 수석조정가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체분쟁조정 프로세스가 어떻게 자리잡았는지 발표했다. ⓒ 2016 서울갈등국제컨퍼런스



호주, 분쟁해결법 마련하고 조정서비스 제공해 


이웃분쟁조정의 교과서로 불리는 '이웃 조정 키트'(Neighbourhood Mediation Kit)를 만든 도나쿠퍼 교수(호주 퀸즐랜드공과대학교)는 호주의 이웃분쟁조정 시스템과 사례를 소개했다. 호주의 경우도 소음이나 이웃과의 울타리 문제 등이 주요 갈등 이슈로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제도적으로는 큰 차이를 보였다. 호주는 조정서비스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경우다. 1990년에 분쟁해결법이 통과되어 분쟁해결국이라는 곳을 통해 이웃분쟁조정 서비스를 제공해 시민들이 손쉽게 접근하도록 대안적 분쟁해결 과정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호주는 온라인을 통한 일종의 갈등코칭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쿠퍼 교수는 "정보 검색 툴(Tool)을 제공해 사람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법률정보나 다양한 해결책 옵션 등을 검색해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종류의 문제인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정보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을 통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니면 조정이나 중재 등의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울YMCA의 주건일 시민운동본부팀장은 한국형 주민자율조정모델 구축사례를 발표했다. 주 팀장은 "시민단체와 지자체의 건강한 거버넌스 모델"로 주민자율조정모델을 소개했다. 한국사회에 층간소음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자, 서울시와 YMCA가 결합해서 이웃 간 문제를 해결하는 주민자율조정기구를 구성한 게 시발점이 됐기 때문이다.

YMCA는 층간소음 문제를 공동체 문화의 파괴된 데서 원인을 찾았다. 주 팀장은 "주민자율조정모델을 관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중심이 되어,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한 결과 층간소음 분쟁이 절반으로 감소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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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세대, 갈등해소를 위해 제언하다'라는 주제로 청년들도 참여해 갈등관리제도 및 사례 등에 대한 의견발표와 발전방향을 제언하는 순서로 마무리했다. ⓒ 2016 서울갈등국제컨퍼런스


갈등 현장에서 시민과 청년들의 적극적 참여 필요해  


'미래 세대, 갈등해소를 위해 제언하다'라는 주제로 청년들도 참여해 갈등관리제도 및 사례 등에 대한 의견발표와 발전방향을 제언하는 순서로 마무리했다. 행정개혁시민연합의 류한별씨는 지자체에서 최초로 갈등조정담당관이 된 홍수정 과장에게 "갈등프로세스에서 청년들의 역할"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홍수정 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은 실제로 청년들이 갈등현장에서 조정자 역할을 했던 사례를 소개하며, "현장에서 때론 공무원으로서의 갈등조정관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청년들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문제해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갈등조정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적극적인 참여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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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국제적 갈등해결 기관들과 공조방안을 논의해오다 국내외 갈등관리 기관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협력하기 위해 이번 컨퍼런스를 마련했다. 미국·호주·프랑스·싱가포르 등 해외 갈등관리 전문가들을 비롯해 300여 명이 참석했다. ⓒ 2016 서울갈등국제컨퍼런스


#서울갈등국제컨퍼런스 #갈등 #갈등관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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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갈등전환센터 센터장 (서울시 이웃분쟁조정센터 조정위원, 기상청 갈등관리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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