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 온 여성에게 이런 말은 마세요

[공모 - 나는 나대로 산다] 세상에 수많은 유진이 그리고 여성들에게

등록 2016.11.22 16:47수정 2016.12.05 14:14
2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강남 한복판에서 "유진아!"라고 부르면 몇 명이나 뒤돌아볼까. ⓒ pixabay


강남 한복판에서 '유진아' 하고 부르면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안녕 유진아, 나도 유진이야. 너는 네 이름이 마음에 드니? 나는 내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너무 평범하잖아. 학창시절 우리 반에 유진이가 한 명인 적은 거의 없었고 나는 작은 유진이도, 큰 유진이도 해봤어. 이 글을 읽는 유진이 너도 내 말 공감하지? 이름 자체로 주목받아본 적은 없지만, 유진이들 중 하나로 존재감을 드러내 본 적은 있잖아. 뭐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이름이랄까. 지은아, 은지야, 너네도 동의하지? 나는 내 이름처럼 평범하고 흔한 삶을 살아왔어.

그러니까 나는 꽤 운이 좋았던 거지

아직도 명절 때마다 우리 강아지 왔냐며 엉덩이를 두들기는 친할머니, '짜식'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는 친할아버지, 거미가 무서워 엉엉 울던 나를 업고 잠이 들 때까지 달래주셨던 외할머니….

나는 남아선호사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친가와 외가를 다 가진, 보기 드문 행운아였어. 명절 스트레스 같은 건 겪지 않았던 엄마, 가부장적인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아빠. 훈육은 엄마의 몫이었고 베란다에서 손들고 서있던 나를 풀어준 건 퇴근한 아빠 손에 들려있던 군것질거리였어.

'어디 여자가 감히' '남자가 쪼잔하게' '여자라면 정숙하게' 따위의 발언은 내 주변에 아예 없었다고. 왼손잡이는 못 쓴다며 오른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라는 면박은 들어봤어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행동을 강요받거나 배제당한 적은 없었어. 물론 저 면박은 우리 집은 그런 거 없다며 무섭게 화를 내던 아빠 덕분에 상처로 남지도 않았지만.

나는 여대에 다니고 있어. 어느 날 수업을 듣는데, 교수님이 그러는 거야. 너희가 본격적으로 사회로 나가기 전에 남녀가 섞인 단체에 소속되는 경험을 해보는 게 참 중요하다고. 나는 이 교수님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그리고 학교에서만의 활동이 슬슬 지겨웠기 때문에 연합동아리를 가입했어. 그리고 동시에 과 동아리의 학회장을 맡았지.

뭔가 돌아가는 방식이 이상했어

a

난 망치질을 더 좋아하는데... ⓒ pixabay


그런데 좀 이상하더라고. 단체가 돌아가는 방식이 미묘하게 다르더라니까? 주점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건 체력과 몸이야. 수십 개의 테이블과 의자를 날라야 하고, 무거운 술 박스를 일일이 실어 날라야 하니까. 최대한 많은 인력이 달라붙어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체력을 써야 해. 전투적으로 짐을 나르던 기억 탓인지, 연합동아리 엠티에서 짐을 옮겨야 하는 때에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하더라고.

그런데 나보고 그러는 거야. 유진아, 너는 옮길 필요 없어. 남자들 다 이쪽으로 와. 짐 나르자.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물러나는 나를 비롯한 여자들은 우연인지 뭔지 모두 여대에 다니는 사람들이더라.

내가 학회장으로 있었던 동아리는 창작 연극 학회야. 말 그대로 '창작'이라서, 모든 걸 우리의 힘으로 해야 해. 판을 세우는 것도, 무대를 꾸미는 것도, 조명을 만지는 것도 전부 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날을 잡아 철야를 해. 톱질과 망치질로 판을 세우고, 판에 천을 짱짱하게 박아 배경을 만들고, 사다리를 타고 가서 조명을 만지는 게 그 날의 일과야.

우리의 역할 배분은 능력과 조건 그리고 선호도로 결정 돼. 망치질 해본 사람? 없어? 그럼 하고 싶은 사람이 해. 너는 키가 크니까 위에서 이것 좀 잡아주고, 너는 악력이 세니까 커터로 천 좀 박자. 사다리 타야 하는데, 고소공포증 없는 사람 있어?

그런데 연합동아리에서 나는 일단 성별이라는 거름망으로 걸러지고 난 뒤에야 역할을 고를 수 있었어. 나는 가위질보다 망치질이 더 재밌고, 풀칠보다는 커터를 박는 게 더 자신이 있는데, 제외대상이 됐으면 됐지 애초에 고려 대상은 아예 아니었다고. 왜? 나는 여자니까. 힘쓰는 일은 남자들의 몫이니까.

그치만 여자들만 있는 상황에서 힘쓰는 일이 없을 순 없잖아. 나는 3년 동안 학회 활동을 하면서 공연도 네 번이나 올렸고, 그 말은 사다리를 네 번이나 탔다는 말인데? 성별 같은 거 없어도 충분히 합리적인 역할 배분이 가능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 있는 역할을 맡아 최상의 결과를 내면 된다는 단순한 논리인데….

그게 왜 남녀가 섞이는 순간 반쪽짜리가 되는 건지 이해가 안 가더라고. 성별 그게 뭔데 능력과 선호를 앞서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지. 여대 안에서의 나와 남녀가 섞인 사회에서의 나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어.

웃기는 건, 이런 상황에 내가 적응했다는 거야

a

박스가 눈에 거슬리더라고... 근데 안 해도 된다는 거야. 오빠가 하면 된다고... ⓒ pixabay


휴학을 하고 카페 알바를 시작했어. 나는 오전 알바였고, 12시가 되면 오후 알바를 하는 오빠가 왔어. 매일 아침 과일 박스가 배송되는데, 출근 첫날에 내가 그걸 옮기려니까 사장님이 안 해도 된다는 거야. 오후에 오빠가 옮길 거라고. 오빠가 출근하는 12시까지 그 상자를 굳이 옮기지 않고 입구에 쌓아두는 게 나는 너무 거슬렸어. 근데 오빠가 해주니까 솔직히 편하긴 하더라고. 힘쓸 일 없는 거잖아. 점점 나는 힘쓰는 일에는 슬쩍 주위를 보면서 뒤로 물러나는 버릇이 생겼어. 남자들이 해주겠지, 어차피 내가 한다고 해도 말릴 텐데 뭐.

35일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시작했어. 여행을 하면서 만난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자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여자 혼자 대단하다'는 거였어. 나는 한국에서도 혼자 잘 살아왔고, 혼밥도 잘 먹고, 혼자 보는 심야영화를 제일 좋아하는 애였는데. 장소만 변한 건데 갑자기 칭찬을 듣게 된 거지. 어느 날은 나보고 대단하다면서 남자친구가 있냐는 거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내 말에, 그 사람이 이제 알겠다는 표정으로 그러더라.

'그러니까,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려고 여행 왔구나?'

그때 나는 깨달았어. 이게 칭찬이 아니라 나를 옥죄는 프레임이었다는 걸. 여자 혼자 대단하다는 말 뒤에는, 니가 왜 여자임에도 혼자 여행을 하는지 정당한 이유를 대서 나를 납득시키라는 무언의 요구가 있었다는 것을. 나는 진짜 '그냥' 온 건데, 여자였기 때문에 내 돈 벌어서 내가 온 여행이 '도전'이 되었고 평범하지 않은 특별함이 된 거야.

내 앞에 '여자 혼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에 거부감과 거북함을 느끼게 될 무렵, 불쾌함과 불편함이 동시에 찾아왔어. 나를 둘러싼 수많은 특징 중에 고작 성별 하나가 나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가장 큰 잣대로 작용한다는 것이. 성별이 뭐길래, 내가 여자인 게 뭐 어때서. 하루는 웃으면서 받아친 적도 있어.

"저는 A형이고 국문학과인데 여기서 서양인들에게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가 영어로 말을 걸어요. 짧은 스페인어도 하고요. 제가 여자인 것 보다 이게 더 놀랍지 않아요?"

두 번째 배낭여행으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어. 28일 동안 약 800km를 걸었지. 내 앞에 붙는 '여자 혼자' 수식어의 힘이 더 강력해졌다는 건 이제 말 안 해도 알겠지? 대단하다, 멋있다는 칭찬에 웃을 수 없었어. 그건 나를 위한 게 아니고, 여자인 나를 향하는 말이라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저녁시간에 다 같이 식사 준비를 했음에도 남자만 가정적인 사람, 나중에 아내에게 칭찬받을 사람으로 주목을 받았어.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나중에 남편이 서운해 할 거라는 예언도 들어봤다. 나 비혼주의자인데.

그러고 보니까, 나 드럽게 운 없는 삶을 살아왔더라고

a

"여자 혼자서 대단하다" "남자친구는 있어?"... 이런 질문들... 휴우 ⓒ pixabay


한 번의 깨달음은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바꿔놨어. 결국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혼자 한 배낭여행이 대단하다는 칭송을 받게 되었고, 나의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은 국문과가 아니라 여자라서 더 돋보이는 거였어. 나노 블록과 퍼즐 맞추기를 좋아하는 것도, 달을 보는 걸 좋아하는 것도, 다 내가 여자라서 그렇다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 똑같은 디자인의 베개커버도 오빠는 파랑색, 나는 분홍색. 오빠와 아빠는 파란색과 보라색 칫솔, 나와 엄마는 분홍색과 주황색 칫솔. '그러고 보니'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불편한 거였다고. 단지 내가 운이 좋아서 몰랐던 것을 불행하게도 깨닫지 못했을 뿐.

우리는 단일민족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성별에서 기인한 고정관념이 어쩌면 인종차별만큼이나 잔인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어. 단번에 알 수 있는 외형적인 조건으로 첫인상을 결정짓고, 그 첫인상이 앞으로의 행동에 계속해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폭력성은 직접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아프더라.

그리고 내가 가장 잔인하다고 느꼈던 건, 차별이 오히려 칭찬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 자체였어.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긴 맞았는데, 얘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그걸 먹는 걸로 착각하고 넙죽 받아먹는 꼴이지. 나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모성이라는 것과 연관돼야 했고, 모성애는 위대하고 신성한 것으로 후광효과가 나야했어. 그리고 남성이라는 것과 음양의 조화를 이뤘을 때 비로소 완벽하고 또 완성될 수 있는 반쪽짜리 존재였던 거야.

사실, 내 이름은 유진이가 아니었대

아빠가 아는 분이 지어주신 이름은 이룰 성, 문학 문. 성문이었어. 그런데 혹시라도 딸내미가 놀림을 받을까봐, 이름을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했던 엄마 아빠는 성문과 획이 똑같은 부드러울 유, 보배 진. 유진으로 나를 출생신고 했다고 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유진이라는 이름으로 놀림을 받은 적은 없지만 나 사실 성문이라는 이름이 있었어'라고 하면 다들 여자애 이름이 성문이가 뭐냐며 웃더라고. 문학 쪽으로 크게 되라는 염원이 담긴 이름보다 똑같은 획을 위해 끼워 맞춰서 제대로 된 의미도 없는 유진이가 훨씬 낫대.

여자애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로 국문과에 다니면서 칼럼 쓰기를 좋아하고, 에세이를 사랑하는 나는 성문이로는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한 채 유진이로 24년을 살아왔어. 정작 나는 유진이보다 성문이가 더 마음에 드는데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나 요즘 유진이가 아니라 성문이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해. 왜냐면 나는 반쪽짜리 존재가 아니고, 여자라는 성별 하나로만 결정되는 사람도 아니거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공모 <나는 나대로 산다> 응모글입니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AD

AD

인기기사

  1. 1 골목식당 나온 그 집 말고, 옆집을 가는 이유
  2. 2 "4대강사업 덕분에" 논란, MB 비밀문건에 담긴 진실
  3. 3 을지문덕은 왜 사라졌을까... 실종 전 행적 따져보니
  4. 4 상사와 연애해서 대기업 입사... 기안84 웹툰 중지 청원 5만 돌파
  5. 5 '임차인' 발언으로 뜬, 윤희숙 의원의 놀라운 극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