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지쳐버렸지만 "사랑해요"는 진심이다

우리 부부의 결혼, 사랑, 섹스

등록 2016.11.20 15:10수정 2016.11.2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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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 그리고 아기. ⓒ pixabay


아기를 돌보다 보면 남편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저 이해해주기를, 조금이라도 거들어주기를, 그 와중에 나도 예뻐해주기를 바라고만 있다.

남편이 나와 결혼을 결심했을 때는 깨끗하게 정돈된 집과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를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누적된 피로에 다 죽어가고 있는 아내와 엄마한테 매달려 울고 있는 아이다.

내 인생의 완벽한 해결책은 바로 '결혼'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나는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남자친구와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현실은 친정 부모님에서 시부모님 밑으로 옮겨온 것일 따름이었고, 수많은 의무와 책임 앞에서 그 꿈꾸던 사랑은 뒷전이 되기 일쑤였다. 특히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누울 때면 "으어~"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가 섹스를 회피하는 이유는 그것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섹스가 주는 쾌락이, 그 이후에 부과될 가정생활과 일상의 까다로운 요구들을 견뎌낼 인내력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비유가 적당할 것 같다. 등반가가 산에 오르기 직전에, 혹은 마라토너가 마라톤을 시작하기 직전에, 월트 휘트먼이나 테니슨같은 시인들의 위대한 시를 읊조리며 그 최면적인 서정미에 빠져들고 싶어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 말이다." -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섹스,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 126쪽

"어른이 되는 거야"라는 남편의 말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뭘 찾아냈다. 5년 전 우리가 연애할 때 내가 남편에게 건넨 음료수병이었다. 좋아한다는 내 마음을 어떻게든 더 표현하고 싶었던 그 때, 스티커 하나라도 더 붙여주고 싶었다.

그때가 무슨 이유인지 그리워진 오후, 이번 주에는 자식 대신 남편을 많이 관찰해봤다. 여전히 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묵묵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찾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했었던 그의 모습들이, 깊은 밤 별을 볼 때처럼, 하나씩 하나씩 점점 많이 보였다. 내가 초췌해질 동안 늙지도 않고 있었군 그래.

그런데 그렇게 방심한 사이 그만 사고가 일어났다. 같이 외출할 생각으로 들떠있는 와중에 누리가 신발장에서 넘어지고만 것이다. 결국 그 작은 돌쟁이 얼굴에 철사같은 실이 두어번 왔다갔다 했다.

아기도 숨 넘어가게 울고 나도 처음 겪는 일이라 온몸이 얼어붙어버렸다. 미안한 마음에 아이만 꼭 껴안고 있는데 아이를 토닥이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른이 되는 거야."

그 순간, 나 말고 내 동료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내 옆에 있어주는 남편

사네 못 사네 난리쳐도 결국 우리를 계속 이어주는 것은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인걸까. 가족 부양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서로 감수해야 할 것과 이해해야 할 것이 많은 결혼생활. 둘이라서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둘이니까 또 살아간다.

사실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사랑은 그것이 무뎌졌을 때 외도로 이어질 수도 있으므로 위험하다고 한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에서 기꺼이 나와 함께 이 험한 길을 헤매는 당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리를 지켜주는 것,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었다. 미숙하고 부족한 아내라 실망도 많이 했을텐데 그래도 여전히 내 옆에 있어주는 남편이 참 고맙다.

상기된 두 뺨 대신, 기미 낀 얼굴로 당신을 대하지만 '사랑해요'라는 말은 여전한 나의 진심이다. '고생 많았어요'로 다시 의리를 다지는 밤.

"오빠, 쪼꼬칩(초코칩) 어딨어?"
"뭐? 젖꼭지 어딨냐고?"

편안함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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