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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당신이 끌렸다, 그러나 진실이 우리를 갈라 놓았다

[안 뻔한 티켓북] 사랑과 욕망 그리고 진실에 관한 이야기, "안녕, 낯선 연극" <클로저>

16.12.21 20:06최종업데이트16.12.2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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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 집착과 탐욕 그리고 소통과 진실 <클로저>는 영국의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대표작으로, 아슬아슬하게 얽힌 네 남녀의 관계와 사랑으로 인한 집착과 탐욕, 소통과 진실의 중요성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앨리스 역에 더블 캐스팅된 이지혜 배우는 앞으로를 기대할 만한 연기를 보여줬다. ⓒ 이정민


"안녕, 낯선 사람."

우리는 '낯선' 무언가에 끌린다.

익숙한 것은 진부하다.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반복적이고 지루하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를 찾는다. 낯선 상대(그것이 유무형의 무엇이든 간에)로부터 느껴지는 약간은 위험한, 그래서 더 끌리는 호기심.

앨리스에게 댄은, 댄에게 앨리스는 낯선 사람이었다. 신문에 '완곡하게' 부고 기사를 쓰는 댄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여자 앨리스. 차에 치인 앨리스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 자신을 데려다주는 댄에게 "안녕, 낯선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뒤섞이기 시작한다.

"그쪽이 죽으면 뭐라고 쓸 거예요? 완곡하게."
"그는…. 방어적이었다."
"나는요?"
"그녀는…. 누구라도 방심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낯섦'에 끌리게 된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이 사이에 래리와 안나라는 다른 인물들이 끼어들면서 복잡한 감정의 실이 타래가 되어 꼬여버릴 줄. 지난 11월 13일 막을 내린 연극 <클로저>의 이야기이다.

'낯섦'을 의도한 무대, 낯설지 않은 감정

▲ 래리와 안나의 입맞춤 의도치 않게 '큐피드' 역할을 한 댄 덕분에 래리와 안나가 이어진다. 사랑과 욕망의 경계를 우리는 무 자르듯이 구분할 수 있을까. 이 두 사람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 이정민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이지만 연극 <클로저>는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1997년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원조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2004년 영화 <클로저>는 패트릭 마버가 본인의 대본을 시나리오로 각색한 버전이다. 영화만을 기억하는 팬에게 연극 <클로저>는 전혀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에서는 인물 한 명 한 명의 감정 상태와 그 동기가 보다 명확하고 친절하게 설명됐다. 그래서 징검다리를 뛰어넘듯 시간을 뛰어넘어도 작품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상황이 급변하고 인물의 감정 관계가 뒤바뀌어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확보해둔다. 하지만 연극은 인물의 동기도 사건 간의 인과관계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 연극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시도하는 방식 자체가 낯설다. 하지만 그 감정은 어디서 본 듯 낯설지 않다. 왜일까.

▲ 서로의 진실 진실을 요구하며 꺼내놓는 건 정말 진실일까. 그 진실은 진실 자체로 목적인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위한 수단인 것일까. ⓒ 이정민


사랑이라는 감정은 숭고할지 모르지만, 그 감정이 표현되는 양상은 그다지 숭고하지 않다. 사랑의 민낯이 얼마나 추잡하고 지질할 수 있는지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매달리고 달래고 화내고 협박하는 그 모든 추한 행동들을 우리는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정당화하니까.

이 작품 속의 인물들도 그렇다. 그와 잤는지 안 잤는지, 잤으면 얼마나 좋았는지, 나랑 자는 게 더 좋았는지 그 사람과 잔 게 더 좋았는지 굳이 캐물어서 확인하려고 한다. 사랑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사랑을 증명해달라고 소리친다. 한 번만 자달라고 매달리거나, 사랑이 있으면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다.

이 작품의 묘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형식적으로 낯섦을 의도했지만, 그 감정이 실제로 낯선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고, 사랑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상처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전 애인에게 술을 마시고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버리지 못한 미련에 애써 매달려보기도 하고, 미처 기억에서 지우지 못한 SNS 주소를 기억해 들어가 보기도 하는 그런 행동들. 진실이라는 이름 아래에 상대의 사랑을 굳이 끊임없이 재확인하고자 서로의 상처를 쑤시는 발언들. 인물의 동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도, 그 폭발하는 감정과 비슷한 부류의 것들을 우리는 품어본 적이 있다.

낯섦으로 시작해 진실로 귀결되는 관계

▲ 안나의 사진전 앨리스는 안나와 댄의 관계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사진 촬영하는 날 앨리스가 흘린 눈물은 그런 감정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이 눈물이, 진실과 다르게 포장되어 전시된다. 우리가 관계에서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진실로 포장하여 전시하기 좋은 정도의 무언가가 아닐까. ⓒ 이정민


"완전 사기죠. 남의 슬픔을 아름답게 찍어놨잖아요. 진실이 어떻든."

안나의 사진전에 걸려 있는 앨리스의 사진. 앨리스는 슬픈 표정의 자기 사진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진실이 어떻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포장되느냐에 달려 있다.

낯설기 때문에 시작된 관계 속에서, 이들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진실을 요구한다. 그렇게 서로의 낯섦에 끌려 연결되었던 이들은 진실에 의해 다시 끊어지고 부서진다. 관계에서 진실은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탐닉하는 건 '진짜' 진실이 아니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확인일 뿐이다. 그러니 상대가 말해야 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 거짓된 진실이 관계를 부순다. 앨리스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묻는 래리에게 수차례 정직한 답을 하지만, 래리가 그 말을 믿지 않는 것처럼.

▲ 앨리스의 사랑 언제나 떠나는 건 앨리스였다. 사랑하지만 먼저 떠나야만 하는 관계가 힘들었던 앨리스. 그는 처음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떠나는 길을 택한다. 그 이별이 영원한 것일 줄은 아무도 몰랐으리라. ⓒ 이정민


"나, 너 사랑 안 해."

앨리스의 이 선언은 댄 탓이다. 댄을 영원히 사랑할 수도 있었던 앨리스이지만, 댄의 집착이 결국 관계의 파탄을 불러온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진실이라는 이름 앞에 그가 요구했던 건 실은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라는 답에서 나오듯, 댄이 원했던 건 그저 댄이 추측했던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함으로서, 우승열패의 감정을 재확인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앨리스가 댄을 사랑했다는 진실이 부서진다.

"내가 선택한 거야. 그 사람 가방 안에서 샌드위치를 봤을 때, 그 순간에 내 모든 걸 이 식빵 테두리를 잘라내는 귀여운 사람한테 주겠다고."

앨리스가 댄을 선택한 계기는 사실 이처럼 단순했다. 그런데 정작 댄이 샌드위치 식빵 테두리를 잘라낸 건, 본래 테두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날따라 식빵 겉이 탔을 뿐이다. 진실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그 사소한 진실을 인정하는 데서 우리의 관계는 지속 가능성을 지닌다. 낯섦으로 시작해 진실로 귀결되는 사랑의 관계가.

나에게 낯선 사람이 된 당신

▲ 소담앨리스의 호연 브라운관에서는 제 빛을 발하지 못하는 박소담이지만, 무대 연기에서는 자기가 확실히 지배하고 제어하는 공간이 있는 배우이다. 자기만의 연기 '톤'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앞으로도 무대에서 자주 보고 싶다. ⓒ 이정민


"그때 네 표정, 네 얼굴…. 정말 사랑스럽더라. 무슨 환영처럼. 널 처음 본 그때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어. 넌 완벽했어."

끝난 지 한 달이 넘은 극이 갑자기 생각이 난 건 왜일까. 오랫동안 만나던 익숙한 사람. 나는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에게서 이전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낯섦'을 마주한다. 그 낯섦에 끌려서, 그 사람을 향한 낯선 감정을 마주한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남자들은 여자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을 사랑하지. 우리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졌다. 서로가 나누는 말도, 오가는 제스처도. 내가 사랑하는 건 감정인가, 그 사람 자체인가. 나조차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미세하게 내 몸이 떨리고 있음은 확실하다. 그래서 상대에게 나는 여전히 익숙한, 원래 알던 그 사람인지 궁금하다. 그 사람에게도 나의 어느 부분이 낯설게 느껴지고 있을까. 한 발자국 내디디기 두려워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나는 지질하게 가라앉는다.

"당신한테는 나도 낯선 사람인가요?"

그래서 묻고 싶다. 나에게 낯선 사람이 된 당신에게, 나 역시 낯선 사람인지. 그러나 자기만족을 위한 진실을 집요하게 요구하다가 결국 영원히 이별하고 만 댄과 앨리스처럼, 이 질문 한마디에 결국 우리 사이가 돌이킬 수 없게 될까봐 두렵다. 그렇게 몇 번을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주저하고, 애꿎은 그의 머리만 쓰다듬고 헤어진 것이 몇 번. 우리의 관계는 이 낯섦을 통해 시작될 수 있을까.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오늘은, 그 사람에게 말할 수, 인사할 수 있을까.

"안녕, 낯선 사람."

클로저 앨리스 래리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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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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