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지지층? 꿈보다 해몽일 뿐이다

[게릴라칼럼] 청와대여 상황을 직시하라, 지지율 반등은 없다

등록 2016.11.18 11:05수정 2016.11.1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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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엘시티 철저 수사" 범죄혐의자가 수사 지휘? ⓒ 연합뉴스 화면갈무리


청와대의 버티기

청와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저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합니다. (중략)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역공에 나선 듯하다.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갑자기 엘시티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검찰에게 지시를 내리더니,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서는 '여성의 사생활'을 운운하며 옹졸한 핑계로 계속해서 검찰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틀 연속 외교부 차관과 문체부 차관 인사를 이어나갔으며, 다음 주에는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할 수 있다는 등 대통령의 국정 재개를 언론에 흘리고 있는 중이다. 

이와 함께 새누리당 친박 국회의원들도 바빠졌다. 친박 중의 최고라는 최경환 의원은 "대다수 국민 여론은 헌정 중단은 막아야 되는 것 아니냐, 그러면서 혼란을 수습해야 된다 하는 쪽으로 모이고 있지 않나"라고 했다. 또, 이정현 대표는 "헌법에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가지고 있는 분을 여론 선동을 통해서 끌어내리겠다고 하는 것은 인민재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라면서 박 대통령 지키기에 발 벗고 나섰다.

도대체 청와대와 친박 의원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자세를 취하는 걸까? 단순히 탄핵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는 17일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지난 주말 시위에 100만 명이 모였다는 것은 허위' '과거 정권 측근 비리와 비교할 때 대통령이 물러날 만큼 악성(惡性)이 아니다' '물러나면 좌파에 정권이 넘어간다'는 등의 지지자들 요구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열성 지지층 재결집 분위기가 박 대통령에게 '힘'이 됐다는 것이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지금 촛불 집회가 거세 보이지만, 미국 대선에서처럼 이른바 샤이 트럼프(Shy Trump·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지 못했지만 트럼프를 뽑은 사람들)들도 많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드러나지 않은 '샤이 박근혜' 층이 있다는 뜻이다."


요컨대 청와대는 현 시국을 한때 지나가는 소나기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시간이 지나면 한때 콘크리트라 불렸던 지지율이 반등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11월 3주 차 리얼미터 조사는 이런 청와대의 믿음에 단비와 같은 소식을 전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대구·경북에서 소폭 올랐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 역시 10%대 초반이지만 어쨌든 최악의 지지율 앞에서 눈앞이 깜깜했던 청와대에게 이는 한줄기 빛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니 여야 교착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청와대의 믿음. 과연 그들의 생각대로 정국이 흘러갈까?

박근혜가 몸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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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 관련 대국민 담화를 마친 뒤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앞서 언급한 청와대의 믿음은 일견 합당해 보이기도 한다. 비록 전체 지지율은 더 빠지거나 그대로이지만 어쨌든 그들이 생각하는 코어, 즉 대구·경북과 60대 이상의 지지율은 조금 다른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는 청와대의 착각일 뿐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 지지율은 오르지 않는다. 왜? 이번 사태의 주범이 바로 청와대, 정확하게는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서 대통령 지지율을 가장 큰 낙차로 떨어뜨렸던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건을 복기해보자. 당시 대통령 지지율은 두 사건 이후 이전과 비교해 엄청나게 떨어졌었다. 꽃다운 300명이 죽어가는 그 말도 안 되는 사태 앞에서 무능하게 대처했던 정부를 보며, 또한 모든 국민이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는 공포 앞에서 벌벌 떨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정부를 보며 국민들이 분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대통령의 지지율은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물론 적지 않은 이들이 그 사건 이후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버렸지만 소위 콘크리트 지지층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감싸기에 바빴다. 세월호나 메르스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항변이었다. 

'세월호가 침몰된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들 똑같지 않았겠는가?' '메르스는 낙타고기가 잘못 유통되어 발생된 질병일 뿐인데, 어떻게 대통령이 그 모든 것을 챙길 수 있는가?'

게다가 역설적으로 박 대통령 특유의 유체이탈화법은 이런 콘크리트 지지층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켰다.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그 모든 사태의 첫 번째 책임을 안고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정부 관료들을 질책했고 지지층들은 그런 대통령의 발언에 환호했다. 대통령이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켰고 지지자들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이성이 아닌 감성, 동정심으로부터 시작된 팬심인 이상, 이성을 바탕으로 대통령에게 가해진 비판은 한낱 종북좌파의 헛소리로 치부되었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자. 이는 앞서 언급한 사건들과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위기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내부, 즉 박근혜 대통령 자신으로부터 기인했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반등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감쌀 핑계거리가 필요한데 그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대통령이 최순실을 믿고 따랐으며, 지금까지도 그 믿음에 대해 반성이 없지 않은가.

이는 지금까지 박 대통령을 지지해 왔던 이들에게 충격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불쌍해서 혹은 자신의 청춘에 대한 보상심리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것인데, 이제 와서 밝혀진 것은 대통령이 한낱 최순실이라는 일반 아줌마의 꼭두각시라는 것이다. 자신의 찬란했던 청춘이 대통령이 아니라 사이비 무당으로 추측되는 일개 개인에게 투사되어진 것이다.

그러니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재 콘크리트 지지층들의 대통령에 대한 심정은 한마디로 배신감이다.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으로서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지층들에게 모욕을 안겼기 때문이다.

100만 명이 모인 지난 12일. 나는 광화문, 서울 광장 대신 처가인 경남 산청에 내려와 있었는데 그때 목욕탕에서 마주친 촌로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자기들끼리 정리를 하고 있었다. 평생 1번만 찍어왔을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깊은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될 감정이 아니었다.

"그냥 우리보다 똑똑한 전문가의 말을 들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거야. 그런데 어떻게 우리보다 나을 게 없는 최순실 같은 사람의 말을 듣다가 이 지경까지 왔냐고. 더 이상 안 돼. 빨리 내려 와야지."

보수언론의 배신

청와대가 숨은 지지층을 찾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그들에게 불리한 언론환경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온갖 실정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일보>를 위시한 그들에게 유리한 기사만 써주었던 보수언론 덕분이었는데 현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이번 사태가 결정적으로 <조선일보>의 우병우 비판에서부터 시작했음을 상기해보자. <조선일보>는 MB정부부터 시작해서 자신들이 보수 정권을 만들어온 이상 차기 대선의 승리를 위해서는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요구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조선일보>의 송희영 주필을 날렸다. 그 뒤로부터 시작된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싸움. 이번 사태는 결국 이 두 세력의 다툼과 관련이 깊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조선일보>와 <한겨레>, '국공합작'이 이뤄졌다 하겠는가.

혹자는 이대로 가다가는 보수가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에 <조선일보>가 자세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이 낮다. <조선일보>의 입장에서 내년 봄 종편 재허가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누구던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특히 배신에 대해서는 가장 가혹한 정치인 아니던가. 

따라서 현재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언론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리한 논조를 펼 수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여기까지 사태를 몰고 온 이상 박근혜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과 함께 승리 가능성 높은 대선 주자를 부각시키는 것이 유일한 생존 방법이다. 그러니 어찌 평소 <조선일보>와 <KBS>만을 보던 노년 세대들이 다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청와대가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들의 집회를 아무리 물심양면으로 도와도 한 번 돌아선 민심을 붙잡기 어려운 이유이다.

이런 맥락에서 17일 서울대병원의 전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 백선하 교수 보직 해임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정권의 입김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정권 눈치 보는 게 당연할 수밖에 학계가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박근혜의 청와대가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아니다. 이미 그들은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이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극적이지만 청와대의 바람대로 숨은 지지층은 나타나지 않는다. 현재 곳곳에서 등장하는 내부고발자가 바로 이를 증명한다. 내부고발자들에 대해 그 어떤 사회보다 참혹한 대우를 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들이 다발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그만큼 권력의 지지율 회복이 불가능함을 나타낸다. 영화 <밀정>에서 김상옥 열사 분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기울어진 배에서는 쥐들이 먼저 빠져나간다고. 지금의 시국은 바로 그 쥐들이 청와대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며칠 전, 저 멀리 독일에서 오랫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한결같이 지지해 왔던 70대 친지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좀 그만하고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타국에서 더 이상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으니 그만 고집을 부리고 차라리 빨리 대통령이 욕심을 버리면좋겠다는 말씀.

청와대에게 고한다. 더 이상 숨은 지지율은 없다.
#최순실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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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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