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채식주의자입니까?

채식주의자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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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훈(begintalk)등록 2016.11.21 11:41

채식주의자 ⓒ 창비


당신은 채식주의자입니까?

채식주의자. 한강. 창비. 2007.

만약 이 소설이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 소설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가끔 들르는 작은 도서관에 신간 코너에 이 책이 있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내 기억에서 잊혀 졌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고 책을 빌려온 후에도 한참동안 책상 위에 방치하고 있었다. 그러다 무료한 토요일 오후 운명처럼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막을 수 없었을까
...
그 저녁, 영예의 말처럼 그들이 영영 집을 떠났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까.
그날의 가족모임에서, 아버지가 영혜의 뺨을 치기 전에 그녀가 더 세게 팔을 붙잡았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까.
육감대로 그 결혼을 그녀가 만류했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까.
그렇게 그녀는 영혜의 운명에 작용했을 변수들을 불러내는 일에 골몰할 때가 있었다. 동생의 삶에 놓인 바둑돌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헤아리는 일은 부질없었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만일 그녀가 그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192쪽

모든 가정은 현실의 부정에서 시작된다. 이미 흙탕물에 빠져 버린 운동화처럼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과거를 직면하게 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이미 우리가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되돌아 갈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멈추어 서거나 어쩔 수 없이 그냥 살던 대로 사는 것뿐이다.

정상적인 삶이 멈추어지는 순간이 있다. 마음이나 몸에 병이 드는 순간이다. 바로 그때 지금까지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멈추는 순간 우리는 일상에서 밀려나는 불편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올해 초에 급성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된 기침이 가슴통증으로 번지면서 심해졌다.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먹었지만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의사는 나에게 더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나는 며칠을 미루다가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담당 의사는 말했다. '지금 입원해 치료받지 않으면 악화되어 치료가 어려울 수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 날 병원에 입원했고 환자가 되었다.

며칠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내가 한 일은 주어진 시간에 약을 먹고 잠을 자고 소설책을 읽는 것뿐이었다. 일하지 않는 낮 시간 병원 밖 벤치에 앉아 내가 왜 폐렴에 걸렸는지 생각해 보았다. 지나치게 일을 했기 때문인지, 나쁜 공기 때문인지,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선천적인 것인지, 불규칙한 생활 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병원에 있는 시간은 멈춰진 시간처럼 비어 있었다. 병원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일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일하지 않아도 하루는 짧게 지나갔다. 나는 점점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더 앞으로 갈 수가 없다.
가고 싶지 않다.           200쪽

잘못된 길을 들어섰지만 너무 멀리 와서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계속 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그 대가는 현실에 대한 책임회피와 무의미한 일상을 견디는 무력감이다. 수많은 변수와 우연이 만들어낸 삶이 과연 내가 선택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은 묻는다. 지금 나의 삶이 내가 선택한 삶인지, 나에게 주어진 원치 않았던 삶인가를.
그리고 당신의 원치 않는 삶이라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다르게 살 수 있는가를.   

어쩌면 꿈인지 몰라.
 꿈 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221쪽
덧붙이는 글 네이버 블로그 '예술가의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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