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이름 없는 존재들이 나를 울렸다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9] <조선상고사> 읽기 두 번째, 백만 촛불의 역사를 계승하려면

등록 2016.11.28 16:12수정 2016.12.0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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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생명울배움터는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는 생명의 교육을 일구기 위한 동력을 얻기 위해 '나' 자신부터 교육하고자 '공적 글쓰기'를 주제로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었습니다. 올해는 '한국사'를 공부합니다.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이 땅이 나아갈 길에 대해 수렴과 응집의 점을 찍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떤 걸음을 걸어왔는지, 지난 과거를 다시 돌아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가늠하려 합니다.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 '역사 - 과거 현재 미래'는 9월 24일부터 2017년 1월 21일까지 총 19회로 진행합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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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하야' 백만 시민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광화문. ⓒ 강한종


11월 12일 옛 제자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광화문에 오셨을 거 같아 연락했단다. 광장에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친구라 반갑고 놀랐다. 시위 현장에는 아기를 품에 안은 부부와 멀리 곡성, 제주 등지에서 올라 온 농민들이 있었다.

어린이와 청소년, 마로니에광장부터 행진해 온 대학생들도 보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백만의 촛불이 어둠을 밝혔다. 여기 백만 중 하나로 존재하는 이들에게 경외감이들었다. 이름 없는 존재들이 나를 울렸다.   

"얘들아 오늘 꼭 기억해 줘. 아저씨가, 87년 민주항쟁 이후로 지금 오랜만에 광장에 왔어. 너희들 생각하면서."

시청 역에서 만난 50대 아저씨의 말이 떠오른다. 열 살 남짓 남매가 엄마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는데 아저씨가 흐뭇해 하며 말했다. 우리 역사에는 이렇게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어른들이 무수했다. 정의와 평화, 민주주의를 물려주기 위해 스러져 간 이름 없는 개인들이 있었다. 오늘의 현실이 과거의 역사와 뫼비우스띠처럼 이어진다.

광화문에 갔던 하루 전 날 역사 세미나에 참석했다. 새들생명울배움터가 주관하는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에서 '역사-과거·현재·미래'란 주제로 매주 금요일 저녁에 모여 함께 공부하고 있다.


이날은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상고사>를 읽고 토론하는 두 번째 시간이었다. 세미나를 시작하며 새들생명울배움터 대표인 최봉실 선생님은 이름 없는 무수한 개인과 이름 있는 지도자의 삶이 맞물려 거대한 한 몸으로 인류 역사를 만들어 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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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실 대표는 개인의 사소한 걸음들이 역사적 사건으로 밀고 들어와 어느 순간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커다란 파도를 일으킨다고 나누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이름 없는 한 개인의 삶의 선택과, 이름 있는 유명인의 삶의 역사적 실존과 선택과 결단들이 서로 맞물려서 인류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무수한 개인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암살 위험을 받을 때 이겨낼 수 없었을 겁니다. 이름 없는 존재와 이름 있는 존재가 서로 맞물려 역동하는 한 몸입니다. 경중을 가릴 수 없는 것이지요."

고구려를 창건한 '추모(주몽)'의 어머니 '유화'는 이름 없는 존재다. 유화는 왕의 어머니이지만 그 개인의 삶은 무척이나 비극적이었다. 북부여의 왕 해모수는 유화를 사랑했으나 신분 차이를 이유로 연인을 떠나고 만다. 유화는 해모수의 아이를 임신했고 부모는 그를 죽이려 했다.

구사일생으로 동부여의 왕 해금와를 만나 부부가 되고, 해모수와의 사이에서 아들 추모를 낳는다. 추모는 다른 왕자들의 질투를 받고 따돌림 당했다. 유화는 한시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대고구려 제국은 이렇게 가련한 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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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진 학생은 대고구려의 탄생으로 유화의 비극적 삶이 조금이라도 위로 받았을지 모르듯이 이 땅의 무수한 비극의 인생들에게 위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역사는 계승해 내는 것

최봉실 선생님은 신채호 선생이 말하는 역사의 조건을 들어 역사는 결국 '계승'에 핵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내 친구가 나의 좋은 점을 본받아 계승해 낼 수도 있고 부모님이 자녀에게 김장, 배관 수리 같은 삶의 사소한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것도 계승이다.

이처럼 배움과 삶이 공간적으로 보편성을 확보해 내고 시간적으로 이어져 계승이 이뤄질 때 마침내 그 존재와 사건은 역사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개인의 삶에서 계승된 가치들이 모이고 모여 오늘 미국이 트럼프를, 한국이 박근혜를 선택한 것이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추구하는 바 대로 살고 있는가. 또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계승하고 있는가.

<사기>의 사마천은 권력의 강압으로 진실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하지 못하고 왕에게 불리한 역사는 왜곡했다. 김부식은 사대주의 사상에 기반해 <삼국사기>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는 축소하고 신라의 역사는 과장했다.

신채호 선생은 이전 왕조의 역사를 미워하고 질투하여 계승해야 할 것을 바로 계승하지 못한 우리 역사에 아파했다. 그는 국민들이 비추어 볼 거울로서의 역사를 전하고자 자신의 전 생을 바쳤다. 우리는 누구를 계승할 것인가. 김부식인가? 신채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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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세월호, 국정교과서, 위안부 문제 등 우리의 진실의 역사를 찾아 지켜나가야 한다고 설명하는 석현수 학생. ⓒ 새들생명울배움터


"신채호 선생님처럼 진실한 역사를 다음 세대에 잘 전하고 실천해 가고 싶습니다."(석현수 학생, 17세)

신채호 선생은 역사의 공과를 밝히는데 사사로움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투철했다. 따라서 그를 계승한다는 것은 정직한 삶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최근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정치적 선택에 대해 온 나라를 향해 참회하고 있다.

이름 없는 개인들이 역사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다. 정직하지 않으면 결코 스스로를 잘 살필 수 없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직하게 자신을 마주하고 고백하는 감동적인 역사가 오늘 여기 이 땅에서 펼쳐지고 있다.

11월 12일 민중총궐기 '만민공동회' 시간, 부산에서 올라온 60대 아주머니는 이렇게 고백했다. "국민 여러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새누리밖에 모르고 살아서 정말 죄송합니다."(관련 영상 : 김제동 시민과 대화 – 부산 가덕도 아줌마), 11월 19일 광화문 '시민 발언'에서 한 시민은 "세월호가 터졌을 때 가슴 아프게 울었건만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 다 잊고 지냈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했다(관련 영상 : 광화문 최강 스타 등장(핵 사이다)). '잊혀진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시민들은 비통과 분노를 다시 반복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을 마주하며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자고 손을 내밀고 있다.

민중이 깨어나면 역사의 흐름이 바뀐다

지난 2012년 12월, 국민 51.6%가 '박근혜'를 지지했다. 그러나 2016년 11월 4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박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5%로 추락했다. 국민들은 그동안 믿어 왔던 것들이 조작된 신화이며 허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신화 조작의 부역자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고 신화는 깨졌다.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양한 권력을 회수하고자 촛불을 들었다. 민중이 깨어나면 역사의 흐름이 바뀐다. 신채호는 삼신설의 파탄이 삼조선(고조선)의 분립과 열국시대를 열었다고 기록한다. 삼신설 파탄은 인민들의 깨달음에서 출발했다.

"일부 인민들이 신인과 영웅들의 허위를 깨닫고 왕왕 자치촌, 자치계와 같은 것을 설립하여 민중의 힘으로 민중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기를 시험하였다." <조선상고사 1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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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선 시대부터 신라 건국 때까지의 역사에 대해 모둠별로 토론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본래 샤머니즘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늘의 도움과 뜻을 구하는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본질이 계승되지 못하고 종교는 특권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사람들은 신인도 우리와 다름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신인과 영웅에 대한 회의를 품었다. 권력은 소수의 영웅에게서 다수의 인민에게로 분산되었다.

본질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것도 그 힘을 잃고 만다. 이념도 사상도 민족도 제도도 개인도 본질을 계승하지 못하면 힘을 잃는다. 한 무제는 위만 조선을 멸망시킬 때 재물로 적을 매수했다. 위만 조선은 뇌물을 받고 자기 이익을 챙기려다 망했다.

"그 신하들은 위씨(衛氏)에 대한 충성심보다 황금에 대한 욕심이 대단히 강하였으므로, 그의 신하들은 주전(主戰)과 주화(主和) 두 파로 갈라져서 서로 다투다가, 한이 비밀리에 많은 황금을 풀자 주화파가 갑자기 많아졌다. (중략) (<사기(史記)> 조선열전의 기록은) 위씨의 멸망이 병력에 있지 않고 한의 재물을 받고 나라를 팔아먹은 간신들에게 있었음을 드러낸 것이다." - <조선상고사 189~192p>

명권영(14) 학생은 이를 안타까워하며 나라나 기업뿐 아니라 개인도 자기 욕망에 쫓기지 말고 절제해야 한다고 했다. 양의진(16) 학생은 우리가 미래의 역사책을 채울 테니 지금부터 바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본질을 잃은 것은 결국 무너지고 사라지지만 뜻을 계승하는 역사적 존재들에 의해 본질은 다시 세워지고, 새롭게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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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진 학생은 "우리가 미래의 역사책을 채울 것이니 올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이름 없는 사람들의 승리의 역사를 이어가리라

신채호 선생은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 했다. 아와 비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고, 오늘의 너는 어제의 네가 아니라는 거다. 불의가 가고 정의가 올까. 역사에서 이것은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변함없는 진리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냥 온 적은 없다. 새로운 역사적 존재들이 등장하고, 이름 없는 수많은 개인들이 정의와 진리에 힘을 모을 때만 가능했다. 희생이 따랐고 그 중심에 민(民)을 향한 사랑이 있었다. 온 존재를 다해 이름 없는 사람들의 승리의 역사를 이어가는 것, 너무도 생생하게 2016년 오늘 바로 우리 자신의 몫이 아닐 수 없다.

인류가 추구하는 세계 시민의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경계가 없는 모두 아(我)일 수 있는 마음이라야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아(我)의 확장을 꿈꾼다. 평화와 공존의 역사는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가능하다. 그 예는 역사 속에 가득하다. 창해 역사는 조선 사람으로 호랑이를 퇴치하고 만근이나 되는 종을 옮길 만큼 괴력의 사나이였다.

한(漢) 나라의 장자방이 진시황을 제거하고자 힘 센 사람을 찾다가 창해 역사를 만나 조선의 왕에게 도움을 청했고 조선은 기꺼이 창해 역사를 내주었다. 프랑코 장군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스페인내전이 발발했을 때 유럽 각지 이름 없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스페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평화와 공존을 향한 세계 시민의 마음은 우리 역사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이승철, 네버 엔딩 스토리 중)

지난 날 지키지 못했던 너를 못 지키는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우리의 꿈을 먼 미래에 두지 않을 것이다. 영화와 같은 일들이 지금 이뤄지길 바란다. 역사는 이름이 있고 없는 모든 존재들의 집단적 계승의 이야기이다. 정의도 평화도 공존도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지금 가능함을 믿는다.

때로는 이름 없는 역사적 존재로 때로는 이름 있는 자로 때에 맞는 책임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늘에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 써나갈 수 있다. 가련한 보통 사람들이 지금 애타게 그리워하는 모든 것들은 끝내 이뤄질 수 있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우주가 도와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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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따라 온 어린이들이 그림을 그리며 어울려 논다. 승리의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계승하자. ⓒ 새들생명울배움터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카페로 오시면 교육문화연구학교를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의 소감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바로가기(http://cafe.daum.net/kyungdang/coIz/200)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선상고사

신채호 지음, 박기봉 옮김,
비봉출판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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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역사를 깨우다

#광화문 촛불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조선상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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