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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금 올려줘요!" 청원한 미국 부자들, 한국도 가능할까요?

[리뷰] SBS 창사특집 <수저와 사다리>를 통해 본 기본 소득 문제

16.11.29 12:14최종업데이트16.11.2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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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수저와 사다리>의 한 장면. ⓒ SBS


광장이 뜨겁다. 한 겨울의 추위도 비바람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열기를 식히지 못한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누가 그랬지만 꺼지기는커녕, 갈수록 그 목소리는 커지고 열기는 뜨거워져 간다. '하야'로 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하지만 과연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박근혜 한 사람만 청와대에서 떠나길 바라서 모였을까. 그 사람을 비롯해 그에게 부역하고 이 사태를 방조했던 무리에 대한 울분과 분노가 가득하다고 보는 게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그 울분과 분노의 대상이 된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까? SBS 창사 특집 기획이 답한다. 바로 '수저 계급주의'라고. <최후의 제국>(2012), <최후의 권력>(2013), <바람의 학교>(2015) 등 창사 특집을 통해 신선한 다큐의 실험을 거듭한 SBS는 <수저와 사다리> 3부작을 통해 한국을 바라봤다.

걷어 차인 사다리를 논하다

제작진의 초대에 응한 김기리는 산 넘고 물 건너 자신의 발로는 도달할 수 없는 제일 싼 땅으로 향한다. 왜 이런 우스꽝스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초등학생들의 새로운 장래 희망으로 떠오른 '건물주'라는 직업(?)때문이다. 소득 상위 10%가 전체 부의 45%를 차지한 한국. 1995년 이래 가장 급격하게 불평등해진 나라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불평등한 소유로 부터 시작된다고 다큐는 말한다.

대한민국이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그 중 72명은 손바닥만 한 땅조차 없다. 땅을 가진 사람은 단 28명, 그중에서도 단 한 명에 해당하는 토지왕이 대한민국 땅의 55%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땅은 증여와 상속을 통해 부를 세습하며 세습 자본주의를 굳힌다.

SBS <수저와 사다리>의 한 장면. ⓒ SBS


어디 소유뿐일까? 일을 해서 버는 돈보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가 불평등을 더한다. 방송은 국내 최대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사장의 언더커버 보스를 통해 아라바이트생의 고생을 전하는 걸로 그 불평등을 설명하려 했다. 프랜차이즈 대표가 해마다 늘어나는 가맹점에 미소 지을 때 IMF로 회사를 나온 뒤 치킨 집을 개업한 또 다른 사장은 배달 인원을 둘 형편이 못 돼 홀로 닭을 튀기고 배달하느라 온몸이 상해 투성이다.

이렇게 1부에서 소유의 불평등, 2부에서 임금 소득으로 인한 불평등을 짚어보던 다큐는 3부 <모두의 수저>를 통해  비로소 속내들 드러낸다. 정치인, 요트회사 사장, 변호사, 철거민, 싱어 송 라이터, 강사, 학생 등 각계각층 사람 8명이 모여 각자 뽑은 수저 계급에 따라 출발선이 다른 불공정 게임으로 3부가 열린다.

1000만원짜리 10개의 땅, 500만원짜리 5개의 땅, 100만원짜리 1개의 땅으로 시작된 게임. 주사위를 굴려 나온 지역을 지날 때마다 낸 땅 주인이 거두어들인 돈은 전반전이 끝나자, 빈익빈 부익부의 우리 사회 현실과 판박이가 된다. 1, 2부에서 다큐로 설명되었던 불공정한 사회가 게임을 통해 그 운용 원리가 드러나고 참여자들의 적나라한 반응을 담았다. 100만원이라는 돈으로 의욕적으로 살아보려는 흙수저들은 주사위를 던질수록 빚이 늘어난다.

이어진 후반전에선 게임의 룰이 바뀐다. 건축비의 10%를 무조건 세금으로 걷고, 어느 정도 모여지면 그걸 골고루 나누어 주는 '기본 소득'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가진 자의 것을 뺏어서 나누어주는 것이 포퓰리즘"이라 운운하던 이준석의 반론과 달리, 게임 후에도 금수저의 재산은 줄지 않았다. 은수자 재산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흙수저는 달라졌다. 저마다 주렁주렁 목에 걸었던 빚으로 게임을 포기하려 했던 분위기가 사라졌다. 100만원을 유지했든, 조금 재산이 늘었든 조금씩은 더 행복해졌다.

행복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 처음 건축비에서 10% 세금을 거두어서 당혹스러워했던 참가자들은 그것이 게임의 룰이 되자, 자연스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금을 내고, 그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게임 과정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기본 소득의 운용 원리와 그 필요성에 대해 저마다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기본소득에 대한 성찰

SBS <수저와 사다리>의 한 장면. ⓒ SBS


스위스에서 '기본 소득'에 대한 국민 투표를 한다고 하자, 우리 사회에서도 한동안 '기본 소득'에 대해 백가쟁명식의 토론이 벌어졌다. 그리고 냄비처럼 사라졌다. SBS 창사 특집은 화제에서 사라진 기본 소득을 우리 사회에 걷어차 버려진 사다리를 복구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물론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2005년 종합 부동산세는 강남에 사는 35.9%에게서 평균 2%의 세금을 거두는 부의 재분배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2008년 MB정부의 셀프 절세를 통해 거꾸로 돌려졌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담배 한 갑의 세금을 강남 9억 원짜리 집에 매긴 세금과 동일하게 매겼다.

기본 소득은 먼 나라 이야기일까. 핀란드는 내년부터 매달 70만원을 전 국민에게 나누어주는 기본 소득 실험을 할 예정이다.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알래스카는 해마다 석유를 팔아 번 돈 중 일부를 알래스카 주민들에게 배당금의 형식으로 나누어 주고 있다. 나미비아 역시 기본 소득 제공으로 실업률과 빈곤율을 0%로 만들었다. 인도에서는 아동들이 정상 체중을 회복했고, 진학률이 높아졌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이재명 시장의 성남시가 시행하고 있는 청년 수당과 이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노인 수당 등이 모두 기본 소득의 일환이다. 언제나 그렇듯 복지에는 꼬리말처럼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실제 핀란드 등에서는 풍족한 실업 수당으로 인해 장기 실업자가 생기고 있다. 맞춤형 복지냐 기본 소득이냐에 따라 비용의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없는 사람들에게 준다는 호혜성 시비를 벗어날 수 없다.

과연 그 불공평이 그리도 문제일까? 3부에 걸친 다큐는 매회 '미친 짓'같은 시도를 보여준다. 시애틀의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 회사인 그래비티 페이먼츠의 댄 프라이스 사장은 스스로 110만 달러였던 자신의 연봉을 7만 달러로 낮추고, 직원들은 오히려 높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매출은 두 배로 늘었고, 이직률은 역대 최저가 되었으며, 만 통의 우수 인력 입사 지원서가 쇄도했다. 연봉이 늘자 직원들은 너도 나도 아이를 가져 '베이비 붐'이 일어났다. 연봉만이 아니다. 디즈니의 손녀인 아비가일 디즈니는 뉴욕 상위 1%의 부호이다. 그녀는 뉴욕의 백만장자 40여 명과 함께 자신들의 세금을 올려달라는 청원을 넣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아비가일 디즈니는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답한다.

SBS <수저와 사다리>의 한 장면. ⓒ SBS


이 이상한 행위들과 함께 불공정 게임 참가자의 말을 주목해보자. 직업이 변호사인 참가자는 말한다. "민주주의도 한때 이상적인 제도였지만 지금 우리는 그 누구도 민주주의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기본 소득도 마찬가지다. 성인 남녀 1000 명을 대상으로 기본 소득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찬성과 반대의 비율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 소득을 위한 세금을 더 걷는 것에 대해 반대의 인원은 59.2%로 급격하게 늘어난다. 물론 거기엔 현실에서 보이는 '부조리'에 대한 불신도 한 몫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SBS 창사 기획이 벌인 불공정 게임의 의의가 짚어진다. 당위론으로서의 기본 소득이 아닌, 함께 실행해보고, 짚어보는 실험으로서의 기본 소득, 게임 전과 후 계급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달라졌다. 세금에 대한 거부감 대신 돌아오는 소득에 대한 환희가 빛났다. 당위가 실험을 통해 가능성으로 변화되는 것. 이번 다큐의 큰 소득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SBS 다큐멘터리 이명박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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