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대신 과일로 하루 수입 '500만원'

[독일의 농부 7] 딸부잣집 부농 가족농, 니더탄너 과수농가

등록 2016.12.12 05:30수정 2016.12.1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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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방문하는 체험객들을 대접하기 위해 작은 농가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다. 생과일 상태로 팔 수 없는 상태의 과일은 당연히 잼이나 소스로 가공해 마저 직판한다.
"동서남북 사방 90km 안에 과수농가는 여기 말고 없어요. 유일무이한 과수원이죠."

농장은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켐텐(Kempten)시에 있다. 이른바 알고이(Allgäu) 지역의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다. 알고이 지역이란 독일 남부의 해발 700~1200m의 고지대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연평균 기온이 낮고 강우량이 많아 과일을 재배하는 데 적합하지 않은 조건이다. 게다가 토양마저 척박해 녹비작물을 재배해 토양 유기물 함량을 보충해도 좀처럼 비옥한 토양으로 개량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알고이 지역에 사는 거의 모든 농민들이 초지에 기반을 둔 낙농업에 종사한다. 소를 키우고 우유를 짜서 먹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유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저부가가치의 우유 원물의 채산성이 낮아져 수지가 맞지 않는다. 1리터에 25센트의 헐값에 팔아넘겨야 한다. 낙농에 매달리는 대부분의 농가경영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피터 니더탄너(peter niederthanner)씨의 경우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낙농업을 하다보니 어려움에 빠졌다. 딸린 아이만 아들 하나에, 딸이 넷, 모두 다섯이었다. 고민 끝에 아무도 쉽게 할 수 없는 용기있는 결단을 내렸다. '우유농사'를 과감히 포기하고 '과일농사'로 전환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역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던 일이다. '정신이 나간 미친 놈' 소리까지 들었다. 과일을 재배하기 어려운 알고이 토양과 기후에서 당연히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나 '미치면 미친다'고 했던가. 결국 '과수에 미친' 혁명적이고 창조적인 농부 니더탄너씨는 과일 농업 전향에 성공했다. 이제 최소한 연간 수억대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과수특화 농가로 지역의 명사가 됐다.

니터탄너 농장주 피터 니더탄너(peter niederthanner) 농장주(가운데)와 영농후계자 자녀들 ⓒ 정기석


80ha에 온갖 과일이, 과수원보다 '과일공원'처럼

니더탄너 농장주는 어느덧 알고이 지역에서는 하나의 성공신화가 된 듯하다. 니더탄너 가족농이 경영하는 라이자흐 유기농 과수원(reisach früchtegarten)은 사방 90km 안에 유일한 과수농가이니 말이다.


말 그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위상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만큼 여기서 생산하는 과수는 희소가치와 부가가치가 높다. 기후나 토양이나 과수재배에 부적합한 독일 남부 고원지대 알고이(Allgäu) 지역에서 최초로, 그것도 유기농으로 과일 재배에 성공한 사람에게 주어진 응분의 값진 보상인 셈이다. 

20대 중반의 외아들 마틴(martin)은 여느 독일 가족농이 그렇듯 당연히 아버지의 농장을 이어받을 영농후계자 수업을 착실히 받고 있다. 진작에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농장 이곳저곳을 트랙터로 누비고 다녔다. 지금 3년제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과수마이스터 과정을 이수하면서 과수전문 농업장인으로서 길을 성실하게 가고 있다.

네 딸도 농장 일을 직간접적으로 거들고 있다. 10살이 채 안돼 보이는 어린 막내딸까지 양계장, 직판장에서 한 일꾼 몫은 거뜬히 맡아할 정도다. 농부 현업에서 사실상 은퇴한 니더탄너씨의 아버지도 여전히 농장을 지키고 있다. 일종의 고문 역할이다. 이로써 어엿한 3대 가족농의 지속가능한 영농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라이자흐 과수농장이 위치한 곳은 해발 700m, 연평균 기온 7℃의 Allgau(고산) 평야지역이다. 총 80ha의 광활한 과수원에서 사과, 배, 자두, 버찌, 딸기, 복분자 등 온갖 제철 과일을 연중 양산, 직판한다.

주 작목은 딸기가 6~7ha 정도, 사과가 6ha 정도이다. 사과농장 가운데 2ha는 방조망으로 특별히 관리한다. 베리류(johannis berry)도 3ha를 재배한다. 버찌도 중요한 작목이었는데 올해 농사는 망쳤다. 4월초에 설해(냉해)를 크게 입은 것이다. 그만큼 과수에 적합지 않은 악조건을 극복하고 이룬 성과인 것이다.

라이자흐 과수원 사방 90km안에 유일한 과수농가, 80ha의 <라이자흐 과수원(reisach fruchtegarten)> ⓒ 정기석


2차 쐐기풀 가공, 3차 딸기 수확체험 등 독일형 6차농업 모델

농장의 주 수입원을 차지하는 주 작목은 단연 사과다. 50%는 수확하는 대로 제철에 바로 직판하고, 50% 저장해두고 연중 판매한다. 품종도 다양하다. 본격적인 수확철에는 당연히 가족 일손만으로는 감당이 안된다. 그래서 루마니아에서 품삯을 주고 일꾼들을 따로 불러 쓴다. 그런데 고작 3~4명 한 팀으로 충분히 작업이 가능하다고 한다. 작업현장을 직접 보지 못해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웠다.

아무래도 적기에 수확하려면 사람 손을 많이 빌려야 하는 딸기는 전적으로 손님 손에 맡긴다. 농장을 찾아오는 고객들이 수확체험 삼아 직접 따가도록 하는 것이다. 농장 입장에서는 따로 수확 인건비를 들이지 않아서 좋고, 고객 입장에서 직접 신선한 딸기를 직접 눈으로 보고 골라서 싸게 사갈 수 있으니 서로 이익이 되는 일이다.

한창일 때는 하루에 500~600명 소비자가 농장을 찾아 직접 수확체험을 한다. 대략 1인당 1만 원으로 치면 하루에 5백만 원 수입을 버는 셈이다. 한달에 20일 정도 진행한다고 치면 월 수입은 1억 원이다. 조생종과 만생종을 함께 재배하는 전략으로 6월에서 8월까지 8주 정도 수확체험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딸기 수확 체험이라는 3차 농촌체험프로그램 하나만으로도 연간 2~3억 원의 고소득을 올리는 셈이다.

과일 외에 16ha의 초지에는 따로 '유기농 쐐기풀'을 재배하는 것도 이채롭다. 쐐기풀은 일종의 독초다. 잎과 줄기에 포름산이 든 가시가 있어 피부에 닿으면 가렵고 따끔거린다. 쐐기나방의 애벌레인 쐐기에 물린 듯 따끔거려 쐐기풀이라 부를 정도다. 한방에서도 관절염, 빈혈 등에 약효가 있다고 알려진다. 이곳의 쐐기풀은 이뇨제 원료로 펠렛 형태로 가공해 제약회사에 납품한다. 100kg당 20만 원의 부가적인 소득을 올린다.

양조장 농가당 연간 200리터까지 면세 생산할 수 있는 과일증류주 양조장 ⓒ 정기석


'동물애호적' 이동식 컨테이너로 닭의 건강까지 챙기고

초지 한편에는 닭 800마리가 자연방사되어 마음껏 뛰놀고 있다. 유정란을 생산하려는 목적이다. 그런데 닭장의 모양과 효능이 기발하다. 이름하여 이동식 컨테이너 양계장이다. 닭이 목초지 한 곳의 풀을 다 먹으면 트랙터가 컨테이너를 끌고 다른 목초지로 이동하는 식이다. 이렇게 50%는 초지의 천연 자가사료로 충당한다.

동물도 사람처럼 신의 피조물로 여겨 '동물애호적 사육'을 해야하는 독일 농가답게 닭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단백질 공급을 위한 콩도 따로 재배한다. 닭의 사료먹이를 주는 일쯤은 농장의 어린 막내딸도 얼마든지 맡아 챙길 수 있는 일거리다. 마치 숙련된 조련사처럼 닭을 몰고 다니고 번쩍 안아 얼르고 손님에게 보여주는 자세가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생산한 유정란은 멀리 나가 팔지 않는다. 거의 지역주민들이 믿고 구매해간다. 굳이 소비자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공기관의 인증을 받거나 확인도장을 찍는 식으로 이력관리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알의 크기도 들쭉날쭉하니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신경쓰지 않는다. 크기에 상관없이 무게를 달아 판다. 1kg에 4.5유로를 받는다. 일반농가의 일반 계란은 10개에 1.5유로 정도 받으므로 대략 2.5배 정도 높은 가격에 파는 셈이다.

다양한 과일을 생산하니 다양한 가공품도 생산된다. 각종 과일을 원료로 한 증류주는 기본이다. 농가당 연간 200리터까지 면세로 가공해 팔 수 있으니 웬만한 농가에서는 술을 만들어 판다. 이 농장에는 1억원에 가까운 최신 증류기가 설치돼 있다.

방문하는 체험객들을 대접하기 위해 작은 농가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다. 생과일 상태로  팔 수 없는 상태의 과일은 당연히 잼이나 소스로 가공해 마저 직판한다. 귀한 농산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양계장 자연방사를 위한 이동식 컨테이너 양계장을 관리하는 막내딸 ⓒ 정기석


니더탄너 가족농의 농업경영철학은 "자연에 가까운"

피터 니더탄너 농장주의 농장 운영방침, 또는 농업경영철학은 한마디로 "자연에 가까운"이다. 수억대 고소득을 올리는 과수농가로 거듭 난 원동력이자 농사를 짓는 농부로서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농장주의 외아들은 어엿한 후계농으로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농업을 가업으로 물려받았듯 아버지에게 농사라는 가업을 이어 받고 있다. 농장에서 태어나 농장에서 자랐으니 그게 너무도 당연하고 자랑스럽다. 

독일 등 EU 국가의 정부들은 농업이 농산물 생산 외에 다원적 기능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공공재를 생산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세금을 내는 국민들에게 이해시키고 각인시키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정부의 노력과 지원에 부응해 직불금을 받는 농부들도 정부의 지원을 받는 만큼 그에 따른 녹색화 의무를 실천한다. 그래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다각화 영농을 추구하고 영구적인 초지를 유지하고 생태적인 지역환경을 보전하려고 노력한다. 니더탄너 유기농 과수농가는 그 대표적인 실천모델로서 손색이 없다.

한국에도 그런 '자연에 가까운' 유기농가가 없는 게 아니다. 부안의 이레농원은 귀농10년차인 귀농인이 고집스럽게 유기농 오디를 농사짓고 있다. 전국에서 오디 생산량의 20% 가량을 차지하는 부안군에서도 보기드물게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심지어 깨끗한 환경에서 뽕나무를 재배하고 오디를 생산하려고 노지가 아닌 하우스 안에서 농사를 지을 정도다.

이토록 철저히 유기농법을 고수하는 게 이 농장의 경쟁력이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무농약으로 칼슘과 미네랄이 풍부한 해양심층수와 EM(유용 미생물)으로 천연 영양제를 만들어 사용한다. 이레농원의 오디가 알이 유난히 굵고 병해충에 강하고 당도 높은 비결이다. 1차 농사에 그치지 않고 뽕나무 뿌리부터 열매까지 무도 가공해 상품으로 개발했다. 식초, 농축액, 뽕잎차, 뽕나무가지차, 누에가루 등이다. 버리는 것 하나 없이 가공해 판매하는 것이다.

이레농원도 가족농이다. 두 딸이 70대에 접어든 아버지, 어머니가 일군 농장을 이어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10년 동안 조경디자인을 공부한 조경디자이너인 작은 딸이 농장의 경영과 관리를 맡고 있다.

전공과 주특기를 살려 경관이 아름다운 유럽형 과수원의 모델을 설계하고 있다. 작가인 장녀는 블로그, SNS 등을 누비며 홍보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다. 독일의 니더탄너 유기농 과수 가족농가처럼 유기농 6차농업 가족농의 한국형 모델을 실천하는 생생한 현장이다.

이레농원 하우스에서 유기농 오디를 농사짓는 부안의 <이레농원> 가족농 ⓒ 정기석


덧붙이는 글 ※ ‘독일의 농부’ : 문화경관 직불금, 농업회의소, 협동조합, 가족농가, 유기농업, 사회안전망 등으로 국가와 정부의 돌봄과 보살핌을 받으며,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부의 나라’를 지키며 살아가는 독일, 오스트리아 등 EU(유럽연합)의 ‘행복한 사회적 농부’ 이야기
#독일 #부안 #과수농가 #켐텐 #가족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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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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