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대표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명령합니다

[주장] '의무'에 충실하면 되는 것... 왜 비박 '면죄부' 주려고 하는가

등록 2016.12.02 18:27수정 2016.12.0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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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 3당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한뒤 굳은 표정으로 의장실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에게 묻고 싶습니다. 박 대표님 고집대로 새누리당 비박계에게 매달려 박 대통령을 탄핵시켰다고 쳐보겠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가 달라집니까. 물론 박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긴 하겠지만, 저는 지금 이 나라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겠느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박 대표님. 부디 착각을 거두십시오.

비박계의 협력에 매달리는 방식으로 박 대통령을 탄핵시킨들 크게 바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상황이 나빠져 국민들이 5년간 더 고생할 수도 있습니다. 비박계가 박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면 그거야말로 박 대통령의 부역자들이 면죄부를 받는 것입니다. 부디 상상력이란 것을 발휘해보십시오. 2012년 박근혜 캠프에서 부역하던 비박계가 2017년 반기문에게 붙을 모습을요. 최소한 '비위'가 있다면 구역질 나지 않겠습니까.

박 대표님께서는 진흙탕에서 오래 뒹구셔서 괜찮으실지 모르지만 저는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박 대통령이 책임을 안 지고, 친박계가 책임을 안 지고, 비박계가 책임을 안 지고, '국민의당'이 책임을 안 지고, 더민주가 책임을 안 지고... 결국 시민에게 공이 돌아와 조장된 정치 혐오가 야권에까지 분산돼 '어차피 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식상한 결론으로 영원 회귀하는 것을 또 지켜보란 말입니까?

어차피 화살은 '제1야당'인 더민주가 '야당'이라는 도매금으로 맞아줄 테니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인가요? 대표님은 지난 1일 SNS에서 "탄핵은 발의가 아니라 가결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비박의 협력 없는 발의는 부결이다. 왜 발의 않느냐며 항의하시는 분들도 부결을 원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표님. 부디 결과를 통제하려 들지 마시고 이행하셔야 할 의무와 과정에 충실하십시오. 비박계가 협력하지 않는 것을 야권이 어쩌란 것입니까.

'특정 세력'이라니... 시민들을 낙인찍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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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탄핵안 상정이 목적이 아니라, 가결이 목적"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국민의당은 야권공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꼭 가결되도록 노력하겠다"며 "거듭 말씀드리지만 탄핵안은 상정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결에 목적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저 역시 탄핵이 가결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비박계에게 구차하게 '포괄적 면죄부'까지 주면서 가결되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럴 바에는 면죄부를 주지 않고 부결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는 박 대통령 한 명으로 꼬리만 자르고 몸통은 남겨두는 것이지만, 후자는 꼬리와 몸통이 함께 자연 도태되도록 시민의 평가에 맡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 도태되기 전에 빨리 쫓아내면야 좋지만 그럴 수 없다면 자연 도태시키는 게 맞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대표님 마음대로 결과를 통제하려고 들지 마시고 해야 할 의무에 충실하십시오. 야권이 탄핵을 주도해 비박계 중 양심이란 게 남아있는 인사들이 있어서 대의를 쫓아오려면 오도록 놔두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정치적 의미와 가치는 시민이 판단하도록 존중하십시오. 대표님 마음대로 미리부터 "만약 부결되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 탄핵을 추진할 수 없고, 박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답을 정해두지 마십시오.


어떤 의원들이 탄핵을 훼방 놓으려는지는 더민주 표창원 의원이 공개했습니다. 거기에 대표님의 이름 한 줄 더 추가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표님은 '국민의당' 대표이십니다. 그러니 제발 이름값을 하십시오. 야권 주도의 탄핵이 부결돼도 어차피 시민들은 이미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마음으로 탄핵했고 범죄 혐의 역시 특검이 밝혀낼 문제입니다.

지면을 빌려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게 저도 참 곤혹스럽긴 합니다만, 이참에 대표님의 나쁜 말버릇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대표님은 1일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많은 국민들이 흥분해 '왜 국민의당이 (탄핵 발의에) 동참하지 않느냐. 왜 박 대통령을 보호하느냐'고 여러 의원님들 사무실에 전화가 많이 올 것이다. (중략) 하지만 이것은 곡해를 했거나, 특정 세력이 공격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표님. "특정 세력"이요?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습니까. 야당의 대표라는 분이 어떻게 생각이 다르다고 시민들에게 '낙인 찍기'부터 하실 수 있습니까. 이게 정부·여당에 반대한다고 종북이니, 친노(친문) 패권세력이니 낙인부터 찍는 행태들과 뭐가 다릅니까. 아참, 대표님은 평소에 친노(친문) 패권세력이란 말도 즐겨 쓰시지요. 물론 쓰실 수도 있습니다. 가치판단을 내리는데 야권이라고 성역을 둘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전에 해당 시민들이 곡해했다고 생각하시는 바가 있다면 명확하게 근거부터 들어 설명하셨어야죠. 정치인은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설명하지도 않고, 근거도 없이, 해당 시민들의 경향성을 명확하게 진단 내릴 수도 없으면서, 임의로 정체성을 묶어 단가를 후려치는 버릇, 그것은 권모술수에 불과합니다. 감히 시민들을 상대로 권모술수를 부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협치가 아니라 그냥 어중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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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과 안철수 전 대표가 지난달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 및 국회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대표님께서는 지난 4.13 총선이 끝난 후 새누리와의 협치를 주장하며 개헌을 주장하셨고, 지금은 개헌을 주장하는 새누리와 협력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내년 대선에서 '비박계-반기문-국민의당'이 제3지대에서 규합해 정권을 잡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우리 좀 솔직해져 볼까요. 대표께서 개헌을 시도하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 바뀌면 명분상으로는 국가 수반의 힘은 빠지지만, 이것은 실질적으로는 다수당내각·연립내각의 구성으로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던 직선제가 폐지되고 국회의원끼리 총리를 뽑고 내각을 구성하면 국민의 참정권이 더 제한되는 결과를 초래할뿐더러 정쟁은 더 심해지지요. 새누리와 더민주 사이를 어중간하게 오가는 대표님에게는 실낙원 같은 환경이 되겠군요.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 지난 4년간 무엇을 하시다가 탄핵 정국에서 비박계와 "협력"을 운운하고 급작스레 꺼낸 개헌 정국에 합을 맞추려 하고 '면죄부'를 주는 길을 가려 하십니까. 탄핵이 다 끝나고, 차기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장단점을 보완한 제도를 정착시킬 수는 없을지 시민들과 충분한 논의를 마치고 추진해도 늦지 않는 것 아닙니까.

지난 1일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습니다. 1일 오전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탄핵소추안은 2일에 통과되어야 한다"라는 뜻을 밝히자 박 대표님께서는 "오늘 의총이 열리기 전에 안철수·천정배 전 공동대표와도 협의했고 두 분께서도 의사표시를 했다. 안 대표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한 저의 해석은 비박에 대한 탄핵 동참 압박용이라는 생각이다"라고 했죠. 안 전 대표님은 여기에 반박을 하지 않더군요. 두 분의 유기적인 분업이 흥미롭습니다.

당의 브랜드인 안 전 대표는 국민에게 밉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쌓고, 정작 백 브리핑에서는 박 대표님께서 직접 진흙탕에 손을 담그시며 당의 방향을 정하고 우클릭하는 게 '국민의당' 지도부의 전술인가요? 하지만 대표님. 명확히 말씀드리죠. 그것은 협치가 아니라 그냥 어중간한 것입니다. 어중간함의 정치를 당장 관두십시오. 어중간함의 속성을 이용한 기회주의도 당장 관두십시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명령합니다. 이를 어긴다면, 저는 다음 차 촛불 집회에서는 박 대통령이 아니라 박 대표님부터 탄핵해야 한다고 외칠 것입니다.
#박지원 #국민의당 #안철수 #새누리당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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