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앞에서 상소도 했는데, 청와대 행진은 왜 안 되나

[주장] 청와대 앞을 '집회 금지 장소'로 정한 현행 집시법, 전면 개정되어야

등록 2016.12.02 20:52수정 2016.12.0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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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4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 광장과 일대 도로에서 열렸다. 오후 9시가 되자 일제히 촛불을 들고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성난 민심이 대통령에게 되묻는다.

"참 나쁜 대통령, 아직도 청와대에 있어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문체부 국장과 과장은 공직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대통령은 광장에 나온 백만 국민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찰수사도 거부하면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로 검찰에 입건되었다. 검찰이 최순실씨를 기소하면서 피고인들과 공모한 박근혜 대통령을 공동정범으로 본 것이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결여된 공소장이라고 비난했다. 검사출신을 수석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앉혀놓고 검찰수사를 좌지우지하더니 검찰이 자신에게 칼끝을 겨누자 검찰수사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후안무치에 국민은 말문이 막힌다. 검찰을 믿지 못하겠으니 특검수사로 무죄를 밝힐 것이란다.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할 때와는 딴 판이다. 이제는 검찰 대면조사도 거부하면서 장기전으로 갈 태세다. 4%대의 낮은 지지율에도 믿는 구석이 있는지 최대한 버티며 시간 벌기 전략을 택한 모양이다. 시민의 분노 게이지가 96%를 넘어서고 있는 와중에도 "잠이 보약"이라며 여유롭다(후에 청와대는 이 발언이 와전됐다고 밝혔음 - 편집자 주). 그래서 광화문 밖에서 수백만 명이 모여 외쳐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모양이다.

성난 촛불은 어디서든 타오를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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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둘러싼 경찰차벽 서울행정법원이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 대규모집회를 앞두고 청와대 앞 200m 위치한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집회 행진에 대해 오후 5시 반까지 허용한 가운데, 지난 11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부터 경복궁역까지 수많은 경찰병력이 차벽을 설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 유성호


100만 촛불은 타올라라, 들불로 번져라, 나는 대통령으로서의 길을 끝까지 가겠다는 태세다. 그래서 정말 성난 목소리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말살시킨 책임자 앞에서 듣고 보고 느끼게 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다. 그런데 우리의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그렇지 않다. 청와대 바로 앞은 안 된다. 집시법 제11조는 청와대, 국회, 국무총리공관, 각급 법원 인근 100m 내를 예외 없이 집회금지장소로 규정하고 있다. 이게 민주주의인가. 이러고도 집회·시위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집회는 보일 수 있고, 들릴 수 있는 거리에서 행해져야 한다. 집회·시위란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영향을 미치거나 제압해야 할 사람이나 기관 코앞에서 해야 한다.

"청와대 1km 떨어진 곳까지만 행진" 이게 민주주의 국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집회·시위는 일정 정도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으며, 집회·시위의 민주적 기능을 위해 이런 침해를 어느 정도 참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법원은 2009년 "집회나 시위는 어느 정도의 소음이나 통행의 불편 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이는 부득이한 것이므로 일반 국민도 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고, 헌법재판소는 2003년 "개인이 집회의 자유를 집단적으로 행사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일반 대중에 대한 불편함이나 법익에 대한 위험은 보호법익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국가와 제3자에 의하여 수인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금지장소가 있으면 안 된다. 금기어가 있어도 안 된다. 어디에서든 어떤 목소리라도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청와대 턱밑까지 가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이제 코앞까지 가고 싶다. 대통령이 성난 시민의 요구를 보고 들어야 할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왕권시대에도 왕이 나랏일을 보는 편전의 앞문에서 집단적으로 상소할 수 있었다.

민주공화국에서 100m 밖에서, 아니 청와대에서 1km 떨어진 곳까지만 행진하라는 것은 반민주적이다. 다행히도 법원은 참여연대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3주 연속으로 받아들여 청와대를 향해 계속 북진할 수 있었다.

이제 청와대 200m 부근까지 접근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집회·시위이므로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집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청와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해야 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그렇다. 집시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청와대, 국회, 국무총리공관 등에서의 집회행진을 절대 금지하는 제11조와 주요 도로의 행진을 대부분 금지시키는 제12조는 폐지 또는 전면 개정되어야 한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청와대 코앞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하태훈님은 참여연대 공동대표입니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강의하고 연구하는 형법학자입니다. 참여연대 초창기부터 사법을 감시하고 개혁하는 일에 참여했고, ‘성실함이 만드는 신뢰감’이라는 이미지가 한결같도록 애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서초구에 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박근혜퇴진 #시민행진 #집회시위의자유고 #청와대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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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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